2. 있을 때 잘 해
*영화 <버터플라이>
나는 지금까지 후회 한 게 딱 한 가지 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은 죽음이다. 재작년 일 년 사이 내 곁에 있던 무려 3명이 죽었다. 한 명은 친구.
오토바이 사고였다. 또 한 사람은 아는 언니의 자살. 나머지 한 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 년에 장례식장을 세 번 가니까 나는 심한 충격으로 멘탈붕괴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죄책감마저 들어 미칠 것 같았다.
그때 당시 나는 집을 나와 있었는데 다시 들어갈까? 하다가도 또 혼날 것 같아서 그만 접고 있던 중이었다.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새 엄마와 아빠, 남동생 셋이 있다. 나랑 일곱 살 차이의 쌍둥이와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동생들은 모두 새 엄마가 들어와서 낳았다. 그 애들을 내가 엎고 키웠는데도 점점 귀찮고 옆에 와 붙는 것도 싫었다.
가출하면 나는 할머니하고만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다. 할아버지가 췌장파열로 병원에 입원한 것도 할머니가 알려줬다. 마른기침을 하며 손전화를 통해 나에게 말했다.
“다애냐? 이제 집에 들어와라. 할아버지가 너랑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어. 어서 와라.”
애원이 가득 담긴 그 목소리. 나는 아차, 잘못했구나 하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의외로 잘 계신 것이다. 나는 한 며칠 집에 있다가 다시 나왔다. 그날은 친구랑 약속이 있어 동대문을 가려고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 서 있는데 거기서 우연히 아버지랑 마주쳤다. 시장에서 의류점을 하는 고모한테 가는 중이었다.
“너, 지금 당장 병원에 가 봐라.”
아버지의 부탁이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빨리 가 봐라.”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거부하는 오기를 부렸다.
다음날이었다. 학교를 갔는데 오전 11시 쯤일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정다애, 가방 싸 가지고 교무실로 와라.”
담임은 내 손을 잡고 무슨 말을 준비 중이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표정. 나는 직감하고 반항했다.
“에이 씨발, 내가 어쩌라고, 뭐 땜에 불렀어. 잡소리 하지 말고 본론만 말하라구∼.”
나는 그대로 버엉쪄서 서울대 병원으로 달렸다. 언덕을 올라가는데 내 자신에게 갑자기 화가 났다. 병실을 모르는 거였다. 어떡하지? 할 수 없이 가출하여 처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딱딱하게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그분이 아니었다. 입에는 테이프가 함부로 막 붙어 있었다. 이게 뭐지? 죽는다는 게 이런 거야? 아빠와 삼촌, 새엄마는 무슨 일인지 의사랑 큰소리로 싸우고 할아버지는 그런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듯 한 마디 말이 없었다. 숨 쉬는 이들은 살아야 하니까 저렇게 아귀다툼이구나.
나는 할아버지 염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다. 얼굴에서부터 가슴, 팔, 손을 알코올로 구석구석 닦아낸다. 양쪽 발톱도 깎고 버선을 신긴다. 수의를 입힌다. 손은 배 위에 모으고 발을 묶었다. 또 할아버지의 몸 여기저기를 꽁꽁 동여맸다. 잔인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묶이었다. 저항 없는 할아버지 시신은 관속에 넣어지고 그 관마저 또 묶였다. 염할 때까지도 나는 현실이 아니라고 이게 무슨 장난인가 이런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슬픈데…… 에이, 설마…… 꿈이길 바랐다.
나는 할아버지가 화장되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여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할아버지 자전거였다. 그 때가 오후 3시 쯤이었다. 이 시간에 자전거가 왜 저기 있지? 할아버지는 오후 4시 30분 넘어서 퇴근하잖아? 그제야 나는 자전거 주인인 할아버지가 이제 없다는 게 실감났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할아버지는 아파트 수위로 일하셨는데 그 건물이 우리 학교 맞은편에 있어서 나를 내려놓고 할아버지는 다시 길을 건너갔다.
나는 그 자전거 옆을 지나 마루에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 허한 공간. 보일러는 때지 않아 싸늘한 기운. 구석에는 할아버지가 덮었던 이불이 싹 개켜져 있었다. 방에도 할아버지가 없구나. 참았던 눈물이 그때 왈칵 터졌다. 난 할아버지에게 막 시비를 걸었다.
“나랑 밥 먹고 싶어 했잖아. 밥 먹으러 가자구. 나 지금 집에 들어왔어. 당장 갈 수 있어. 같이 가잔 말이야.”
주인 없는 방에서는 할아버지가 하루 걸러 틀어 놓았던 <회심곡>노래가 흘렀다. 가수처럼 할아버지는 그 노래를 따라했었다.
“못다 먹고 못다 쓰고 / 두 손 모아 배 위에 얹고 / 시름없이 가는 인생 / 한심하고 가련하다 /…… 한번 아차 죽어지면 / 싹이 나느냐 움이 날까
/ 이내 일심망극하다 /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마라 / 명년 삼월 봄이 오면 / 너는 다시 피련마는 / 우리 인생 한번 가면 / 어느 시절 다시 오나.”
아, 정말 구질구질했던 그 노래 가사를 내가 무슨 암기천재 마냥 줄줄 외우고 있다니 신기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석 달 뒤의 일이다. 집에서 약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은 학교를 가지 않는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그날도 나는 친구들이랑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었다. 나는 춤을 되게 좋아했다.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떠있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정말 죄송하고 왜 그때 할아버지 옆에 있어주지 못 했나 또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숨기고 태연했다.
하늘을 향해 속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거기 좋아요? 내가 지금 학교 관두고 여기 있는데 보고 있어요? 만약 보고 계시면 할아버지, 저 구름을 없애줘요.’
구름 없이 파란 하늘이 더 좋은 나는 안 될 걸 알면서도 거듭 ‘자아, 할아버지 한 번 보여줘요’라고 부탁 하고선 다시 춤을 열심히 추었다. 그러다 하늘을 봤다. 구름이 전부 사라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러고선 벤치 쪽으로 가서 선글라스를 집어 쓰고 미치도록 몸을 비틀며 춤을 추었다. 아이들이 보지 않도록 막 울면서.
친구에게
친구들아!
“있을 때 잘 해라.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솔직히 지금도 아직 잘 안 되고 있지만 이것이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이야. 곁에 있을 때 잘 해. 그분이 아빠든, 엄마든,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동생이든 친구든 상관없어. 평소에 네가 좋아하는 그들이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거. 나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허무하게 갈 줄 몰랐어. 죽음은 갑자기 할아버지를 데리고 갔어.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어. 한 번만 보고 싶어도 절대 보지 못해.
난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 그 분들이 날 키워주셨거든. 할아버지 돌아가시니까 할머니에게라도 잘 해야지 했는데 참, 그것도 마음처럼 행동이 잘 따르지 않고 있어.
할머니는 아파서 걸음 걷기도 힘들어. 그런데도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러 다녀. 가끔 아버지가 “너,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래, 응?”라고 말하면 나는 대들듯 말해. “왜 그런 소릴 해. 지금 내 옆에 있는데.”
안 그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마저 없으면 난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이 슬슬 들기 때문이야. 내가 결혼할 때까지 할머니가 살아 있길 바라는 것. 이것이 나의 희망사항이야.
나는 그 일 년 동안 죽음이라는 걸 완전히 깨달았어.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됐어.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 진짜 너무 허무하겠다. 가끔 날 기억이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잊혀지는 게 싫거든?
여기 센터에 들어와 살면서 은근히 걱정되는 것은 가족과 친구들이 날 잊을까 하는 것이야. 그리고 참 이상한 것은 나에게 상처만 줬다고 생각한 식구들에게 이제는 미안하다 것과 그렇게 싫었던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야. 참 또 하나 있어.
할아버지 자전거를 탈 때, 나는 양팔에 힘을 꽉 주어 할아버지 허리를 감쌌어. 오른쪽 볼을 할아버지 등에 대면 내 코에 전달되는 게 있어. 약간 퀴퀴하나 오래된 종이냄새 같은 세월 냄새. 할아버지 냄새가 그리워.
마지막으로 내 결심 하나 말할 게. 센터를 퇴소하면 학교에 복학이 안 돼. 집에 가면 타이밍을 잘 짜서 일을 할 거야. 의류 가게를 하는 고모 일을 도울 거야. 돈이 생기면 할머니 선물 하나를 사드릴 거야. 앙꼬가 많이 든 단팥빵. 그 빵 우리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거든.
가족 때론 너로 인해 너무 아프다 너로 인해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네가 없었다면 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아파도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진실을 몰랐을 것이다. 神(하느님)께서 내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단 하나 허락하지 않으신 영역 나의 가족...... 그래서 가족은 神(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다. 주님, 우리는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무조건 내 등을 두드려주며 ‘괜찮다, 괜찮다......’말해 줄 가족이 필요합니다. 가족의 품을 떠나 거리를 방황하는 또 다른 다애, 다애, 다애.......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그 품에서 위로받고, 사랑하고, 성장하며, 함께이게 하소서! 주님, 사랑은...... 너로 인해 아파도 그게 너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선물인가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