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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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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떠나니 행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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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가시지 않은 이른 3월 무렵에 봄을 앞당겨 맞이할 수 있는 여행일정이 생겼다. 두시간 비행기를 탔더니 늦은 봄나라로 데려다 주었다. 공항길의 가로수는 큼지막한 붉은 꽃을 가득 달고 서있다. 역시 빈가지의 겨울보다 꽃가지의 봄이 마음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여느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역맛살 탓에 공간이동만으로 더없이 행복했다. 봄바람에 가벼운 두루마기 자락이 기분좋게 온몸에 감겨온다.       

대만의 중태선사(中台禪寺: 台를‘대’라고 읽어야 하는지 ‘태’라고 해야 하는지 아직도 헷갈린다. 물론 중국발음은 tai다. 그동안 관례대로 중대선사로 불렀다)에 들렀다. 산(山)이라는 글자모양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본관의 널따란 로비에는 최신형 대형건물에 어울리는 현대식 조각작품인 무쇠로 만든 사천왕이 듬직하게 네 모서리를 지키며 기둥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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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시원찮은 건강 탓인지는 몰라도 사천왕과 호법선신에 대하여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는지라 그윽한 눈길로 샅샅이 부분부분 살폈다. 우람한 근육질과 부리부리한 눈매는 남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호소력있는 짙은 중저음이였다.“행복해지려거든 많이 보라”고 눈이 유난히 큰 광목(廣目)천왕이 일러 주었다. 또 곁에 있던 귀가 큰 다문(多聞)천왕은 “행복해지려거든 많이 들으라”고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낮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하긴 큰소리는 오래 듣고 있을 수 없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라야 길게 들어도 부담이 없다. 본래 덩치있는 이가 더 세심한 법이다.  

어쨋거나 많이 보고 많이 들으면 사람이 바뀐다. 세계관이 바뀌고 인생관이 달라지면 행복관 역시 좀 더 성숙되기 마련이다. 이를 중국속담은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여행하라”고 한 마디로 일렀다. 그 말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 조선선비 어유봉(魚有鳳 1672~1744)의 말이다. “산을 거니는 것은 독서와 같다(遊山如讀書)”고 하여 여행이 곧 독서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둘다 신세계를 만나는 방편이기 때문에 ‘그게 그거’라는 논리였다. 중국 민가에 대한 기행문을 쓴 윤태옥 씨는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길에서 하는 독서이다. 독서는 지식이고 여행은 사색이다. 독서로 혜안(慧眼)을 얻고 여행에서 개안(開眼)한다.”라고 했다. 수도인 대북(臺北)에서 한 시간 거리인  법고산(法鼓山)불학원에는 만권독서를 위하여 해인사에서 수학한 두 명의 젊은 학인이 유학을 와 있었다. 불원천리하고 자기를 바꾸기 위한 대장정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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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웅(高雄) 시내에 자리잡은 원조사 경정(敬定) 비구니스님은 지장보살을 만난 이후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지장성지인 본토 안휘성 구화산을 자주 찾았다. 어느 날 지장보살이 신라의 고승출신임을 알게 되었다. 김지장(법명:교각)스님을 흠모하여 고향인 경주를 찾는 만리행을 마다하지 않고 수시로 순례한다고 했다. 일천오백년 전, 만리행을 통해 성인이 된 신라왕자를 따라왔던  삽살개도 주인이 보살의 지위에 오르면서 ‘사자개(金獅狗)’가 되었다. 축생도 만리행을 통해 ‘신분상승’이 된 것이다. 오늘도 구화산 화성사(化城寺)에는 수호신 모습으로 그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사실 만리행은 그 과정자체로 행복한 길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늘 남과 비교우위에서 찾는데 익숙해진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스물스물 일어난다. 작은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끝에서 끝으로 가는 시간은 서울과 부산만큼 길었다.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나자마자 불현듯 차타는 시간이 지루해졌다. 눈치빠른 가이드 선생은 차안의 고요한 침묵을 깨고서 ‘똥가방’얘기를 꺼냈다. 갑자기 쌩뚱맞게 ‘웬 똥가방?’하며, 자고있던 일행까지 눈을 뜨고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루비통 가방을 그렇게 불렀다. 비교 속에서 행복을 느끼던 시절에는 멀리서 봐도 누구나 한 눈에 딱 알아보는 그런 류의 명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비교를 통한 행복이 주는 허상의 실체를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 가방의 판매량은 주춤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남들이 몰라줘도 내가 좋으면 그게 바로 명품이라는 개성화 시대가 이미 도래한 까닭이다. 직지사 삼성암 진입로를 따라  줄지어 걸려있던 오색깃발 속의 “비교하지 말라”는 글씨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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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산사(佛光山寺)에는 ‘곡직향전(曲直向前)’을 세련된 디자인의 글씨체로 내걸었다. 굽으면 굽은대로 곧으면 곧은대로 먼저 앞으로 나아가고 볼 일이다. 굽은 것과 곧은 것을 비교만 하다보면 가야하는 길조차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상대길은 곧은 길인데 내 길은 왜 이렇게 굽었는가를 반문하다보면  애시당초 첫걸음 조차 더뎌지면서 갈길은 더욱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설사 굽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늘 굽을 수 만 없다. 마찬가지로 곧은 길 역시 늘 곧을 수만 없다. 모든 길이란 늘 곧고 굽은 것을 함께 갖기 마련이다. 그것은 본래 길이라고 하는 것이 가진 양면성이다. 옛길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닦은 길이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느 누구의 만리행이건 곧은 길과 굽은 길을 번갈아 만나기 마련이다. 굽은 길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곧은 길을 만날 수 없다. 혹여 곧은 길이라고 마냥 안심한다면 굽은 길을 만나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지루하면 책을 읽고 심심하면 길을 떠나는 것이 내 나름의 행복비결이다. 거창하게 선인들의 표현을 빌자면 만리행과 만권독서라고나 할까.....이번 나들이는 사실 ‘템플 스치기’였지만 그것이 바로 또다른 ‘템플스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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