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은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시모니데스는 '최상의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에게 최선은 건강이고, 그 다음은 성격과 외모가 함께 아름다운 것이며, 세 번째는 정당하게 모은 재산으로 여유를 누리는 것이고, 네 번째는 친구들과 청춘을 꽃피우는 것이다."
*그리스 코스 섬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나무.
히포크라테스가 이 나무 아래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양에선 예부터 다섯 가지 복으로 장수, 부유함, 건강하고 평안함, 좋은 덕,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하는 것을 꼽았다. 부유하고 덕을 쌓는 것 말고 다섯 가지 중 세 가지 복이 건강과 관련된 것이다.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건강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상을 호령한 왕도 섭생하지 못하면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다. 우리 안방 사극에서 가장 익숙하게 보는 조선시대 왕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스물일곱 명의 왕 가운데 일흔 살을 넘긴 왕은 태조, 중종, 영조 세 명 뿐이다. 그 가운데 두 명은 이십 대에, 여덟 명이 삼십 대에 요절했다. 대부분이 병 때문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왕의 지위조차 아무 소용이 없으니, 건강보다 소중한 게 무엇이겠는가.
나는 어린 시절엔 몹시 허약한 몸이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우리 고유의 수련과 참선 등을 통해 몸이 많이 좋아졌다. 하루에 4시간만 자고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래서 건강에 대해 과신한 게 화를 불렀다. 5년 전 마음과 몸을 동시에 혹사하면서 대상포진을 앓았다.
이후 후유증으로 4~5년간 등에서 열과 통증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곤해 고통을 당했다. 양방과 한방 진료 어느 곳에서도 효험을 보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치유법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몸에 대한 이해와 치료법에 대해 좀 더 고뇌하는 계기가 되었고, 내 경우 제도권 진료보다 자석 치료, 체조, 걷기, 명상, 섭생 등이 더 효과가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도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해 오래 전부터 유기농산물을 애용하긴 했지만, 외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아픈 이후엔 외식을 가급적 자제하고 유기농 위주의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저런 노력 덕분에 후유증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우리 인체가 불, 물, 공기, 흙 등 4원소로 되어 있고, 인간의 생활은 그에 상응하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 네 가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조화가 깨질 때 병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 그대로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던 현대의학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코스 섬에 있는 히포크라테스 동상. 아픈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병이 났을 때 발생하는 열을 치유로 향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봤다. 병적 상태에서 회복해가는 것을 '피지스(physis)'라고 부르며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고 주장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피지스를 돕거나 적어나 이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약물을 투입하거나 외적인 자극을 주기보다는 자연스런 치유를 위해 명상, 맨발 걷기, 금식으로 몸의 균형과 조화를 돕는 것은 어쩌면 가장 히포크라테스적인 것일지 모른다.
4~5년간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깨달은 것은 자기 몸을 책임져줄 사람은 결국 자신이라는 상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실질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몸에 좋을지 나쁠지 모를 건강식품을 먹기보다 자신의 체질을 정확히 분석해 그에 따른 음식, 생활, 운동을 적절히 병행해 나가야 한다.
천태종의 개조인 수나라 때 고승 천태지자대사(538~597)는 참선할 때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을 강조했다. 즉 몸과 호흡과 마음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셋은 몸과 마음의 건강비법이기도 하다. 척추를 바로 세워 자세를 바로 해야 호흡이 깊어지고, 마음도 편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야 몸도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진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어야 깊고 편안한 호흡이 된다. 셋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마음의 평화는 분명 체력과 능력에 따른 일의 완급 조절과 절제, 균형과 같은 삶의 자세와 관계가 깊다. 그래서 건강이 나빠지면 내 자신을 돌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인생학교>(조현 지음, 휴) '13장 히포크라테스의 고향, 코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