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이 사람
산재보상도 못받고 떠난 사무엘
그날 밤, 눈이 왔다. 21세기 첫날을 맞이하는 거룩한 송구영신 예배가 한창이던 우리 교회에 검은 피부에 칙칙한 몰골의 사내가 주뼛거리며 들어왔다. 마치 흑인을 처음 보는 양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날 송년회 술자리에서 신앙적 이유로 음주를 거부하다 만취한 사장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 나와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예배당 불빛에 이끌려 무작정 우리 교회로 들어왔다. 그는 그렇게 우리가 되었다.
사무엘은 공장, 폐차장,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많은 일을 했다. 당시는 마늘 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아니라 흑인 남성 노동자들이 모여 앉아 시커먼 손으로 마늘을 깐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그 후 가게에 깨끗하게 진열된 깐마늘 제품을 보고 더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놈이었다.
어느 명절날 교회 사무실 책상에 선물이 놓여 있었다. 부푼 마음에 끌러 보니 촌스러운 모양새의 싸구려 넥타이였다. 불쾌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장롱에 던져놓고 한번도 매지 않았다. 어느 날 사무엘이 수줍게 물었다, 자기 선물 잘 받았냐고. 그 넥타이는 하루 12시간 넘게 힘겹게 일해 번 돈으로 정성스레 내게 보낸 선물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노예노동을 고발하고 있는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 강창광 기자
그 후 나는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 청년들과 분식집에 모여 앉아 송별회를 했다. 한명 한명 돌아가며 내게 잘 가라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차례는 사무엘이었다.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너는 나의 유일한 한국인 친구인데 네가 가면 나는 어쩌냐….”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나는 유학을 떠났고 사무엘은 직장을 옮겼다. 어느 날 교회 제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소식 들었냐고. 무슨 소식이냐 물으니 좀처럼 답이 없었다. 한참 머뭇거리다 도착한 메시지, “사무엘이 실명되었어요.” 사무엘이 염색공장에서 일했는데 약품이 튀어 눈에 들어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대성통곡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가 놀라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사무엘이… 실명됐대….” 아내는 들고 있던 접시를 떨어뜨렸다.
결국 사무엘은 맹인이 되었다. 회사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교회 친구들이 모아준 작은 성금을 손에 쥐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나는 타국에 있어 그를 배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무엘은 내 인생의 빚이 되었다. 그리고 사무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무엘을 위하여.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