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
먼저 봉축법요식 봉행에 앞서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로 목숨을 잃으신 많은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묵념을 함께 했습니다. 법당 왼편 영가단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꽃과 글귀들이 적혀 있어 마음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이어서 만 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스님께서 직접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리셨고, 이어서 헌등, 헌화, 거불, 석가모니불 정근, 헌공예불, 반야심경, 청법가가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감로의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부터 2600여년전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산 기슭 카필라바스투라고 불리는 작은 나라에 왕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아기를 낳기 위해서 마야부인이 고향인 꼴리성으로 가다가 정오경에 룸비니라고 불리는 아주 아름다운 숲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가마에서 내려 꽃구경을 하던 중에 산기를 느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어머니가 길을 가다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또 부처님은 길을 따라 수행정진하시다가 도를 이루셨고, 부처님은 길을 따라 다니시면서 많은 중생들에게 교화설법을 하셨고, 부처님은 길을 가시다가 길가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길이 무엇이냐?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길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 분의 삶이 구도의 삶이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실 때의 모습을 경전에는 아주 아름답고 신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야부인이 아쇼카 숲에서도 가장 꽃이 아름답게 핀 왕자다운 꽃가지를 오른손을 들어 잡자 애기가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자 대범천이 황금그물로 애기를 받았고 또 인드라신이 일산을 펴서 햇빛을 가려주었고 용왕이 더운물과 찬물로 애기 몸을 씻기자 애기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그러자 아기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습니다. 그 걸음걸이마다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한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손으로는 땅을 가리키고 사자처럼 외쳤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존귀하네. 삼계의 중생이 다 괴로움에 빠져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인도의 네 개 계급 중에 왕족 출신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육도윤회를 벗어나서 해탈열반을 증득하신 분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 한손은 하늘 위, 한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했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어서 가장 위대한 자, 이 세상 그 누구하고도 비교할 바가 없는 자, 신과 인간들의 스승이 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또 ‘삼계개고 아당안지’ 했다는 것은 어리석음에 빠져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에게 이 무지를 깨우치는 좋은 법을 설해서 그 중생들도 부처님처럼 해탈과 열반을 성취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항상 함께 갑니다. 나와 너, 나와 우리는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남을 탓하면서 자기를 괴롭혀도 안 되고 자기만 행복해서도 안 됩니다. 세상 사람이 어떻든, 남이 어떻게 하든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나를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내 가족, 내 이웃, 이 세상 다른 사람들도 이 행복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태어나실 때 일성에서도 표현되어 있고, 대승보살의 사상에서도 표현되어 있고, 모든 불교의 가르침에 이 두 가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 둘이 함께 이뤄지지 않고 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 태어날 때 하신 말씀 중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만 기억하고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불교도 개인 윤리 즉 개인이 바르게 사는 건 비교적 괜찮은데, 사회적 책임 즉 사회 윤리 의식이 매우 부족합니다. 나와 너, 나와 우리, 개인과 사회가 늘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던 세월호 침몰 사고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했습니다.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심도 느꼈습니다. 보는 이도 이런데 직접 겪은 가족들은 그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자식을 둔 많은 부모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개인 윤리나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주가 선박을 운행하는 데 있어서 그 선박에 타는 사람들의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개인의 이익에만 치우쳤습니다. 또 공무원들이 그 안전성을 중심으로 해서 감시 감독을 잘해야 되는데 그것을 무사안일주의로 대응해서 이런 큰 사고가 일어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선박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과적을 했는데, 이런 것들은 그 선주 개인이 살생을 했느냐 도둑질을 했느냐 하는 개인 윤리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직분에 맡는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했느냐 하는 사회 윤리의 문제입니다.
또 선장이나 승무원들이 이런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가 났을 때 승객들에 대한 안전한 대피를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 또 이것을 구조할 해경이나 많은 관계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구조를 했느냐. 이런 것들을 살펴봤을 때 선주 개인의 윤리문제, 즉 그 개인이 얼마나 착한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그 직분에 대한 자기 책임을 다했느냐, 그 사람이 맡아야 할 그 직분에 제대로 역할을 했느냐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직업윤리 의식이 아주 빈약합니다. 개인 윤리의식은 굉장히 강조되는데 직업윤리 의식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를 안 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내가 어떻게 살거냐 하는 문제는 강조되는데, 내가 선생님이 될 때는 아이에게 어떤 모범이 되어야 하는지, 내가 경찰이 될 때는 질서유지를 위해서 내가 어떤 책임을 져야 되는지, 공무원이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사가 될 때는 환자를 우선으로 하는지, 이런 것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이런 각각의 직업윤리 의식, 이것이 바로 사회적 책임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사회적 책임의식,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의식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런 것들이 이런 사고를 일으키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세상을 말합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정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똑같은 사람도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집니다. 이럴 때는 사회적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인연과보’라고 말했습니다. 인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원인인 씨앗과 같은 것이고, 연이라는 것은 사회적 환경인 밭과 같습니다. 이 둘이 함께 어우러져서 그 결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회적 책임, 환경을 개선하는 문제, 정토를 만드는 것, 이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느냐를 다시 한 번 자각해야 합니다. 좋은 환경에 놓이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어른들이라면 자라나는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정토세상 만들기입니다. 우리는 우리 후손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잘 만들어줘야 합니다.
지난 세기에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헤어졌습니까. 이산가족의 아픔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재산의 손실은 또 얼마나 입었으며 원한은 뼈에 사무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통일된 한반도를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 우리 후손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자신감을 갖고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는 밝은 지혜가 필요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는 따뜻한 사랑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인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불교의 근본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가져온 국민들의 아픔들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돈 보다는 사람, 생명, 안전을 더 중시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양적으로만 성장할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우리들 모두 함께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주로 ‘전생에 업이 많아서 그렇다, 죄를 지어서 그렇다,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많이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부처님은 그런 것을 가르친 분이 아닙니다. 이런 재난을 당했을 때 내 가족이 아니라도, 내 나라 사람이 아니라도,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라, 이렇게 가르친 것이 성인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내가 믿고 있는 불법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연등불 밝힌 공덕이 여러분들 개인에게는 다생겁래의 업장이 소멸되는 그런 공덕이 되기를 바라고, 또 그 공덕을 이 세상에 회향해서 배고픈 자는 배불러지고 병든 이는 쾌차하고 또 어린 아이들은 배움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세월호 침몰 사고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 아픔을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아픔마저도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아픔까지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한 우리의 모든 인연 공덕이 그분들에게 회향되어서 희생된 분들이 다시는 이런 불행이 없는 세상에 왕생하기를 기원하고, 또 실종된 분들은 하루속히 생사가 확인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마음을 오늘 부처님오신날 함께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등 이웃종교인들과 외부 손님들을 모시고 4부 법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을 비롯하여 종교인들 모두가 앞에 나와 영가단에 헌화하고 전체 대중과 함께 세월호 추모 묵념을 하였습니다.
이어 여는 타종과 함께 내빈들의 헌화와 욕불의식이 있은 후 스님께서 인사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봄은 왔으나 마음은 겨울 같습니다. 부처님 탄생 일성에서 나타나듯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담긴 뜻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돈만 된다면 생명은 경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으로, 지위로, 인기로, 나를 삼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길줄 알아야 남도 나를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내가 나를 소중히 여겨야 남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지금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있습니다. 종교가 본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우리는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완비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추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봉축법회는 추모와 애도의 분위기로 무거움이 짙었습니다. 예년에는 다들 부처님오심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오셨는데, 이번에는 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쑥고개 성당에서 오신 글로리아 성가대는 ‘가고파’와 ‘목화밭’을 불러주셨습니다. 스님께서 성가대 분들에게 두 손 모아 깊은 감사인사를 올리니 성가대 분들은 약간 부끄러워하시는 것 같았지만 고개 숙여 답례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가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가 지향해야할 덕목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부처님오신날 기념 법문을 해주실 천도교 박남수 교령님과 박경조 주교님께 법문을 청하며 스님께서는 큰 절을 올리셨습니다. 대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스님이라는 상 없이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교만하려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천도교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과 박경조 대한성공회 주교님도 스님의 청법에 귀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박경주 주교님의 법문을 함께 나눕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탐욕의 불이 모든 것을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집단적 타살입니다. 우리 안의 탐욕과 모순이 지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이것은 석가께서 원하신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이런 것은 올바른 세상이 아니라고 비판해야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 종교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옳지 않은 시대에도 꾸짖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에 물들어가는 종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만든 데 대해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존경받고 특히 어린 생명이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 종교인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절망감과 슬픔 뒤에 작은 희망을 봅니다.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눈물을 흘리고 고개 숙이는 모습,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서로를 걱정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 바친 사람들, 그 속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보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입니다. 다시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드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관계 맺고 있는 존재로서의 소중함을 깨닫고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고 일러주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함께 노력하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법륜 스님과 정토회가 하는 고귀한 일에 하느님의 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법문 후 김은비님의 가야금 독주가 이어졌고, 박종화 목사님과 김홍신 작가님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마무리 공연으로는 저희 정토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경동교회 집사님이시며 성악가이신 김홍태 교수님의 ‘그대 있음에’와 ‘어머니의 마음’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다같이 합창을 했는데, 세월호 사고로 돌아가신 어린 학생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니 모두들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문화 공연과 법문이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4부 법회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맺음말을 해주셨습니다.
“불교인들끼리 모여서 하는 어떤 모임들보다 풍성하고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양한 것들이 모여 있으면 혼란을 가져올 것도 같은데 오늘 같은 다양함은 우리의 삶이 풍요롭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종교적, 문화적, 지역적 장벽을 조금만 허물어뜨리고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더 풍성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각 종교의 지도자 분들의 법문을 들으면서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그 종교의 본래 가르침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생명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며, 서로 갈등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나누며, 화합하라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날, 오늘 정토회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가 모여 다양한 꽃들이 모인 화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꽃밭이 더 잘 가꾸어지기를 바라며 지금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을 극복하고 이 세상이 좀 더 밝아지는데 힘을 보태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이 글은 정토회(jungto.org)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