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노란리본들 아래 앉은 월토스토프 박사
자식을 잃은 경험을 토대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슬픔에 대해 말하는 월터스토프 박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얘기하지 마라. ‘괜찮다’고도 마라. 그들은 절대 괜찮치 않다. 괜찮을 수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니콜라스 월터스토프(82) 예일대 신학대학 명예교수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리본 아래서 힘줘 말했다.
이 시대 대표적인 기독교철학자인 그는 31년 전 등반사고로 아들을 잃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그 체험을 담아 쓴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습니다>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미국에서도 고통을 당할 때 고통을 빨리 털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고통을 떨쳐내버리는 게 불가능하다. 그것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엔 슬픔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이 비합리적이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전혀 아니다. 화가 나면 때리고, 두려우면 도망치면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는 사랑하는 만큼 슬플 수 밖에 없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기 때문에 그런 채로 살아가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니, 괜찮다고 얘기하지 말고 그 분들이 앉은 슬픔의 벤치에 함께 앉아 슬퍼하라”고 권했다. 그는 책도 위로도 별 도움이 안됐던, 아픈 경험을 더 들려주었다.
“서점에 가니, 슬픔을 극복하는 7단계 전략이니, 9단계 전략이니 하는 책이 많았다. 그런데 그 책들은 온통 나에 대해서만 얘기해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 죽어버린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죽은 내 아들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종교란 답을 주고, 삶의 의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것이 종교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사고 이후 어떤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며 “인간이란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도 대답 없는 질문과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자녀가 몇명이냐”는 물음에 그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시 고통스러워졌다”고 고백했다. ‘(사고 당한 아이를 빼고) 4명이라고 답해야 할지, 5명이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였단다. 그는 “사람들이 ‘자식이 4명이나 더 있지 않느냐’고 했지만 위로가 아니라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며 “자식은 가게에서 아무때나 구입할 수 있는 구슬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선교사 가운데 한 명인 언더우드가 설립한 새문안교회와 언더우드의 모교인 뉴브런스윅신학교가 공동으로 24~25일 연 언더우드국제심포지엄의 주강사로 초빙받은 그는 ‘예배’에 대해 새문안교회에서 강의했다. “교회 예배가 기쁨의 찬양 일변도로 갈 때 신자들의 삶과 연관성을 찾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며 “십자가의 고통에 대한 탄식기도와 이웃의 고통에 대한 중보기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강의에서 ‘예배의 주최는 당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의 권한이 목회자 한명에게 집중될 때 부패할 수 밖에 없다”면서 “개혁교회라면 교회의 모든 회중들이 (목사에게만 맡기지 않고) 그들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구원파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는다’는 구원관을 믿고 있다는 것과 관련해 “미국에도 이런 그룹들이 있는데,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건 심각하게 잘못된 견해다. 사회에 대한 정의와 평화 책임을 져야하는 게 기독교의 본질이다”고 밝혔다. 그는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의 저자답게 명쾌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상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보니, 개혁교회라의 간판을 달고 있어도 심각하게 왜곡돼 있었다. 칼빈은 권력을 쟁취하기보다 벗어나기를 원했다. 16세기 칼빈의 개혁교회가 추구한 것은 평등이었다.”
그는 ‘정의가 왜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와 평등 없이 자유만을 부르짓는 것은 ‘사자와 독수리에게 아무나 잡아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