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생태·문화 국제협회 대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멈춰 서 뒤돌아보라, 우리는 진정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2003년 녹색평론사의 초청으로 첫 인연을 맺은 이래 여러 차례 한국을 찾고 있는 생태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내의 숙소에서 ‘미래 세계’의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휴일에도 회사에 나가 밤늦게 돌아온 아빠에게 어린 딸이 물었다. “아빠, 왜 그리 바쁘세요?” “응, 돈 많이 벌어야 하니까.” “돈 벌면 뭐가 좋은데요?” “응, 너랑 한적한 곳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행복하지 않겠니?” “아빠, 저는 지금 그런 시간이 필요한데요….”
히말라야 산중의 오지 라다크에서의 삶을 기록한 책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로 잘 알려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68·사진)에게 현대인의 삶은 인터넷에 흘러다니는 이 짧은 우화 그대로다. 생태·문화를 위한 국제협회(ISEC) 대표 이름으로 서울을 다시 찾은 그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오래된 미래’ 저자로 유명
“세계화·비지니스 프렌들리
지금은 단순 소비문화 세상
“근거리 식품소비·공동체 회복
지역화·다양화에 해답 있어”
노르베리호지는 며칠 전 한국 정부가 주최한 과학기술 콘퍼런스에 참가한 느낌을 실마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현 정부의 국정지표인 ‘창조경제 진흥’을 주제로 내건 콘퍼런스는 더 앞서고, 크고, 빠른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습니다. ‘그래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기술개발과 경제성장이 일자리를 더 만들어낼 것인가. 그는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좀더 깊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세요”라고 조언한다. “어떤 미래를 우리는 진심으로 원하는가?”
먼저 지금처럼 살면 마주할 미래가 있다. 세계화, 무역자유화,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거대기업과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단조로운 소비문화의 세상이다. 미디어에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만들고 싶으면 이 신을 신고 이 스마트폰을 가져야 한다’고 자극한다. 소비문화는 끊임없는 부러움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고립과 불안감을 높여줄 뿐이다.
노르베리호지의 고국인 스웨덴에서도 흰 피부, 금발, 파란 눈의 인형 같은 여인들이 더 예뻐지겠다며 목숨을 걸고 다이어트를 한다. 라다크에서 일어난 일도 마찬가지다. 문화적, 지리적으로 고립됐던 라다크는 “자부심이 강하고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을이었으나 서구의 세련된 도시문화에 노출되면서 음식, 옷, 집 그리고 언어까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살이란 말이 없던 곳이었는데 요즘은 한달에 한명꼴, 주로 청소년들이 목숨을 끊습니다.”
자본과 거대기업들이 끌고 가는 ‘익숙한 미래’는 자연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보호조처들이 무장해제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돈을 내주고 파산하는 식의 무책임이 퍼져 나갑니다. 서로 아는 것을 나누고, 누구에게 봉사해야 하는지를 느낄 때 책임감이 생깁니다. 의사건 기술자건 교사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안정성과 통합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선택해야 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노르베리호지는 지역화와 다양화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지산지소’나 로컬푸드 운동에서 보듯 근거리에서 생산된 식품을 소비하고, 손으로 직접 많은 일을 하며,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많은 경제구조를 말한다. 이는 사람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회복하는 길이다.
“개인의 탐욕에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현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첨단기술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한번 쓰고 버리는 대량소비경제 탓에 구두건 냉장고건 수리와 관련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한편에선 일자리가 늘 부족한 것도 지구에 사람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는 세계경제화에 맞서 “정부보다 기업이 강력해지는 것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의 무제한 이동을 제한해 국적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 기반한 소박한 삶이 폭주하는 세계화의 기관차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우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세요. 그들과 함께 주류 미디어와 학자들이 들려주지 않는 정보를 찾고 희망을 나누세요. 서로의 집으로 찾아가 요리하고 노래하세요. 이게 우리를 고립과 우울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복으로 이끄는 묘약입니다.”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