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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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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성을 지르며 하루종일 울 수 있어 마녀사냥에서 벗어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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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유럽(500-1500/1700)에 살았던 신심 깊은 여인들은 종교적인 신비나 환시 체험에 많이 빠졌다. 이런 여인들에 대한 관심사는 대개는 두 부류인 마녀인가? 성녀인가? 에 대한 해석이었다. 어떤 해석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이들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왕래했다. 이들 중에는 마녀로 찍혔다가 성녀로 추앙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성녀로 추앙 받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마녀로 찍힌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마녀가 성녀로 추앙 받는 경우를 보자; 마녀로 고문당하거나 장작불에 처형당했던 이들이 생전이나 사후에 새로운 해석이 따르지 않았었더라면, 이들은 교회에서 영원히 마녀로 배척 받았을 것이다. 그 반대로 성녀가 마녀로 된 경우는; 이들의 비밀이 생전에 들통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교회에서 영원히 성녀로 머물렀을 거다. 이렇게 마녀냐? 성녀냐! 를 해석하는 꼭지점에는 주로 당시 교회수장들의 취향과 독선적인 판단이 작용했다. 이런 연구의 기초는 가톨릭적인 신학분석이 아니고 종교 현상학적인 연구물이다. 말하자면 1900년경부터 신학에서 떨어져 나온 종교학이라는 딸 덕택에 이런 연구의 기틀 마련이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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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영국으로 가보자. 14세기와 15세기를 걸쳐 살았던 마르게르 캠페(1373-1439)로 무역업을 하는 남편과 4명이 아닌 14명의 자식을 두었던 여인이다. 그녀의 종교적인 체험 역시 당시에 성령인지, 악령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했다. 구체적인 그녀의 생을 들여다보고 우리도 함께 판단해 보자.


아이들 키우는 것보다 종교적인 열정에 더 불탔던 이 여인! 14명의 아이를 둔 이 엄마는 성지순례를 자주 떠났다. 인근의 가까운 성지도 아니다. 교통 발달이 안 된 당시는 영국에서 유럽대륙으로 건너 간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산티아고, 노르웨이 등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그녀는 이 곳 성지순례만으로는 도저히 만족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장거리 여행이었을 예루살렘까지 성지순례 떠나는 종교적인 열성에 불탔다.


많은 자식을 두었던 그녀가 집안은 나 몰라라 하고 성지 순례만을 다니자 이웃의 입방아가 담 너머로 날아든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인데다가 그녀가 입는 옷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는 결혼한 여자가 흰 옷을 입는 것은 사회적인 상식에 어긋났다. 당시 많은 신비가들은 흰 옷을 입었는데, 이 흰옷을 통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뜻을 표명했다. 근데 결혼한 캠페가 이런 흰 옷을 입다니! 하지만 본인은 신의 은혜를 입은 처지 이기에 입어도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오만 방자한 그녀의 발언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가 어쩜 신흥종파 추종자일지 모른다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1400년경에 영국에서 생겨난 이 종파의 이름은 롤라딘(Lolladin)이다. 당시 바티칸의 비리와 부패에 역겨움을 느끼고선, 새로운 그리스도교 정신을 부르짖으면서 경건한 원시신앙으로 다시 돌아 가고자 하는 취지로 모인 신흥종교단체다. 더 나아가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부패된 가톨릭의 교계제도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근원을 성서로 규정한다. 특이하게도 이 종파의 추종자들이 금지된 흰 옷을 입었고, 스스로가 거룩한 존재라고 표명했다. 그리고 열심히 성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 종파는 바티칸의 거대한 힘에 짓눌려 늘 압박과 핍박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많은 추종자들이 붙잡혀 처형 당했다. 켐페도 흰 옷을 입는데다가, 성서지식까지 풍부하니 사람들은 그녀가 분명 이 종파에 속 할거라는 속단을 내렸다.


하지만 켐페가 이 종파의 추종자 라는 것은 섣불리 단정할 수 없었는데 그녀의 특이한 신비주의 때문이다. 첫 아이를 낳고서부터 신비스런 일이 그녀에게 터졌는데, 너무 엄격한 종교성으로 무장했던 그녀의 고해 신부 때문 이었다. 하루는 이 고해 신부가 그녀에게 지옥의 무시무시함을 들려 주자마자 그녀는 바로 이성을 잃어 버렸다. 이 때에 그녀는 영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거다. 그녀가 괴롭힘을 당한 기간은 자그마치 ‘6개월 더하기 8주 그리고 며칠 더’ 라고 기록 되었다. 이런 괴롭힘에서 구제되었는데 그 구세주는 바로 예수였다. 예수가 직접 나타나 그녀 침대 곁에 앉아서 위로 해 주었다고! 그 이후로도 그녀는 자주 현시에 빠지곤 했는데, 이런 현시 때에는 다른 신비가들이 늘 들려주는 내용들이 나온다. 예언, 방언, 신비적인 합일 등등.


이런 현시 외에도 그녀의 다른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다. 바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녀가 눈물을 흘릴 때는 그냥 눈물만 흘리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괴성까지 동반했다. 어느 그리스도 수난 날 미사 때 그녀는 성당에서 자그마치 5~6시간을 울어댔다. 어떤 날에는 그녀가 십자가 상 위에 눈물을 폭풍처럼 내리 부었다. 거의 하루 종일 우는 때가 있는 가 하면,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나누어 울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들의 매주 일요일 미사참례와 영성체(가톨릭에서 예수의 몸으로 상징 되는 얇은 밀떡)을 모시는 날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그녀를 붙들고 있어야 할 정도로 힘이 생겼다. 이런 날들이 자주 일어나자 그녀는 일반 신자들과는 분리된 다른 공간에서 영성체를 주어야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그녀가 괴성을 지르고 눈물을 철철 흘려대자 이 눈물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온다. 그녀의 이런 눈물은 바로 예수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는 자비심이라는 거다. 성서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물과 비교하면서 그녀를 우러러보는 경건심을 가지는 이들도 생겼다. 그녀의 이런 눈물이 죽은 영혼들을 구제되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는 해석까지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에 대한 의심을 품는 이들도 늘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철철 잘 울다 보니까 마녀라는 속단은 섣불리 하지 못했다. 그렇게 철철 잘 울 수 있다는 자체가 마녀 구별법의 합격선에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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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마녀인가? 성녀인가를 가르는 방법 4가지(눈물 시험, 바늘 시험, 불 시험, 물 시험)가 있었다.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물 시험은 물에 빠뜨려본다. 근데 뜬다. 그러면 마녀다. 마귀가 그녀를 뜨게 해준다는 거다. 사실 물에 가라앉으면 마녀가 아니다. 근데 물에 가라앉는데 누가 살수 있겠는가? 이래도 저래도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몸에 있는 사마귀나 반점 같은 것을 바늘로 찔렀을 때 아프다는 소리가 없으면 마녀로 간주했다. 캠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바로 눈물이다. 마녀로 의심받은 이가 잡혀온다. 일단 재판관은 잡혀온 이에게 먼저 한번 울어보라고 명한다. 그때 잡혀온 이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그러면 그녀는 당장에 마녀로 찍혔다. 예수와 마리아를 사랑하는 이는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거다. 캠페는 너무나도 잘 울었기 때문에, 아니면 잘 울 수 있기 때문에, 마녀를 판가름하는 이런 재판이 열린다 하더라도 그녀의 이런 관문 통과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좀 코믹하지만 그 유래가 있다. 사막의 은수자들이 이런 눈물 흘림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눈물 흘림을 기도예식의 한 형태로 정하기도 했는가 하면, 성 페투루스 다미아니(Peturus Damiani:+1072)는 이 눈물 흘림을 신으로부터 부여 받는 거룩한 은총이라고 단정했다. 심지어 당대 켐페의 고해신부도 죽고 난 22년 후에 요하네스(Johanes von Bridlington: +1379) 라는 성인으로 선포되었는데. 그의 여러 업적 중 하나가 눈물 흘림이다. 그가 미사를 올리는 동안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다 보니 사람들의 표현은 ‘그가 눈물로 목욕을 했을 정도’ 라고 표현했다. 이런 징표를 교회에선 신의 은총으로 기록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렇게 철철 울어대는 마누라 때문에 이젠 남편도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마누라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호소까지 해 보았지만 다 소용이 없자 이젠 마누라를 슬슬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사람들의 빗발치는 호통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남편으로서 마누라에 대한 책임을 떠 맡아야만 했다.


너무나 잘 운 덕택에 아니면 너무나 철철 잘 울 수 있었기에 그녀는 일단 마녀 재판에는 회부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그녀의 지속적인 울음소리에 사람들의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로워 졌다. 너무 지겨운 나머지 사람들은 그녀가 일단 철철 잘 우니 마녀(Hexe)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점 점 더 커지더니 결국은 그녀 안에서 사는 귀신(Teufel)의 작용일지도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그녀를 감옥에 쳐 넣자는 말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녀를 아예 불에 태우자는 말까지 했다. 이런 저런 판단 때문에 고통 받던 그녀는 결국은 법정에 불려와 주교 앞에 섰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한 여자가 왜 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차에, 사람들이 고발하던 참에 불러 들였던 거다. 이 법정에서 아차 하면 그녀도 마녀로 찍힐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법정에서 쉽게 풀려 나왔다. 그녀의 출신이 아버지가 몇 번이나 시장을 역임했던 귀족이었다 보니 주교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그녀가 주교로부터 받은 경고는 다음과 같다; 생명을 부지하고 싶으면 집에서 조용히 아이들이나 잘 돌보고, 다른 여인들처럼 집안에서 베나 짜고 살아라! 하지만 바깥 출입 금지를 당하고 집안에 감금 당했던 그녀는 이것도 아랑 곳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가 체험한 종교적인 내용들을 소리소리 질러서 이젠 창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렸다.


거짓말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이렇게 몇 년이 흐르고 난 뒤 그녀가 평범하고 조용한 생활로 돌아왔던 거다. 그녀가 울음을 멈추고 조용한 생활로 돌아왔다지만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그녀에 대한 입방아가 두 파로 나눠진다; 신이 드디어 그녀의 울음을 그치게 했다는 파와, 그녀가 눈물을 그 칠 줄 아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과거에 속임수를 썼다는 거다. 가만히 둘 수 없다며 그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이들은 그녀에게 물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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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시 그녀 얘기를 꼼꼼하게 씹어보면; 하여튼 그녀의 눈물 흘림이 그쳤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녀의 눈물이 계속 되었다면? 앞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숭베 받는 성녀였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마귀의 장난으로 판단되어 불에 타 죽었지 않았겠는가? 법정에서 눈물을 잘 흘리면 그저 신의 은총인가? 눈물을 흘리지 못하면 과연 마귀가 작용했단 말인가? 시간이 남아 돈 신이 한 여인에게 철철 눈물 흘리게 도와 주었단 말인가? 그녀가 속임수를 썼다 치자. 하지만 어찌 하루 종일 울 수가 있겠는가? 좌우지간 필자의 생각에는 제 3의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본보기를 봐도 성녀와 악녀의 구별은 사실 참으로 애매모호 하다. 인간이 한 종교적인 사상 옹메듭에 묶인 것도 참 무섭다. 그 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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