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창] 세례와 신앙의 함수관계
호인수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 정대하 기자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다 신자인가? 교회에 등록된 신자는 다 신앙인인가? 사제가 되고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다. 달리 생각하면 작금의 그리스도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실례를 든다.
ㄱ씨: 결혼을 앞두고 내게 찾아온 젊은 남녀의 종교와 신앙 여부를 묻다가 나는 신랑이 군 복무 중에 천주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례를 받았으니 천주교 신자로서의 혼인 규정만 지키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는 세례를 받기 위한 예비신자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성당에 가본 적이 없으니 세례가 무엇인지 모르고 성체성사, 고해성사는 물론 예수의 죽음과 부활마저 생소하다는 눈치였다. 세례명도 세례 받은 날짜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일요일에 사역병 차출에 빠지고 운이 좋으면 간식이나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 그 맛에 성당에 갔다가 얼떨결에 세례를 받은 것만 확실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세례 받은 성당에 보관되어 있어야 하는 세례문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신앙심이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한국천주교회의 교세통계표 증감란에는 분명히 새 신자 +1명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ㄱ씨는 천주교 신자인가, 아닌가?
ㄴ씨: 갓난아기 때 천주교 신자이던 엄마 품에 안겨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당에 가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불행하게도 조실부모해서 천주교회와의 인연은 저절로 끊겼다. 사망이 아니라 부모가 어떤 이유로든 교회를 등졌다고(배교 또는 개종) 가정해도 결과는 마찬가지겠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야 우연히 자기가 천주교회에서 세례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새삼스럽게 신앙의 길로 접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역시 교세 통계표에는 +1로 기록된 채 천주교 신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ㄴ씨도 엄연히 세례를 받았으니 신앙은 없어도 신자는 틀림없나?
ㄷ씨: 동기야 어찌됐건 제 발로 성당에 가서 소정의 교리공부를 마치고 자신이 정한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한국 천주교 신자 합계에 1을 보탰다. 열심히 미사에 참례했고 시간 내서 성경공부도 하고 신상명세서의 종교란에는 꼭 천주교라고 썼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개인과 가족의 신상에 엄청난 변화를 겪으면서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다. 이런 경우에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잠시 교회를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교회와 단절을 선언하고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공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ㄷ씨는 후자에 속한다. 교회는 세례의 효험은 영원하다고 가르치니 ㄷ씨는 여전히 천주교 신자인가?
나는 지금 그리스도교 신자의 존재론적 정의를 내리려는 게 아니다. 진정성이나 도덕성은 눈곱만치도 안 보이면서 그럴듯한 교회나 교직을 내세우는 소위 지도층의 파렴치한들을 성토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나의 공부가 너무 모자라고 나의 삶이 한없이 부끄럽다. 다만 나는 각 종단에서 선전하는 신자 수의 허구성과 그 허수로 교세를 포장해서 부를 누리고 권력을 행사하려는 교회의 한심한 작태들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말한다.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은 교세 확장이 아니다. 종탑과 십자가가 많아지고 신자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아름다워졌나? 우리가 행복해졌나? 단연코 아니다! 하느님나라 운동은 세상개벽 운동이요, 여기에 필요한 사람은 예수의 사람, 참신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