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파시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박광순 옮김/교양인·2만2000원
전쟁은 증오와 살생, 폭력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종교는 깨달음에 바탕한 평화와 화해를 추구한다. 이렇듯 정반대를 지향하는 듯한 전쟁과 종교는, 실제 역사 현장에서는 한몸인 경우가 많았다. 중세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이다.
<불교 파시즘>은 군국 일본 시절 전쟁(파시즘)과 종교가 어떻게 가장 끔찍하고 완벽하게 결합해 있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수많은 일본 선승들이 천황주의를 옹호했다. 뒷날 미국에 선(불교)을 전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한 조동종 선사 야스타니 하쿠운은 “대동아 공영권 확립은 세계에서 사악한 정신을 몰아내고 전 인류를 위한 영구적인 평화와 행복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파한 광적인 군국주의자였다. 하와이에 큰 사찰을 세운 임제종의 저명한 승려 오모리 소겐도 “천황폐하의 자비로운 어심이 만백성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라며 극우파 쿠데타에 가담하기도 했다.
사람만이 아니다. 속세의 가치관과 개념의 초월을 주문하는 선은, 군대에서 나를 초월해 국가에 모든 걸 바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 탈세속적인 태도로 질서 있는 생활을 하는 수행승은, 군인들 몸가짐의 살아 있는 전범이었다. 생과 사가 다른 게 아니니(생사일여), 적군을 죽이거나 내가 죽어도 별게 아니었다. 공양 그릇을 본떠 군인들의 식기가 만들어질 정도로, 불교와 군은 적극 결합했다.
그런데 전쟁과 종교의 야합이 그뿐이겠는가. 천주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고, 수천년 핍박을 받아온 유대교(이스라엘)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살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은이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신자들이 자신의 국가와 신앙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종교는 좀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