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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스님 아프가니스탄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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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전 스님의 아프가니스탄 기행기

1편. 뜻하지 않게 파미르를 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목숨을 걸고 사막과 고산고원을 가로질러 부처님의 땅으로 발길을 이끌었던 수많은 구법승과 카라반 등, 그들이 넘었던 천산산맥의 이서(以西) 지역에 대한 동경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지난 5월 1일부터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중앙아시아의 그 실크로드를 답사하고자 길을 나섰다.

 
우선 첫발을 내디딘 곳은 우리나라와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키르기즈스탄으로, 수도 비슈켁에서 인접국인 카자크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타지크스탄의 비자를 받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5월 2일부터 시작된 노동절 연휴가 무려 열흘, 하루가 아까운 처지인데 대사관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일이 단단히 꼬이기 시작했지만 타지키스탄은 5월 2일, 딱 하루만 문을 열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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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을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한단다. 설산과 호수며 길가의 양귀비 꽃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타지크스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람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구법승과 카라반 등이 넘나들던 하이 파미르(High Pamir) 길이 있는 곳으로, 요즘은 비포장이지만 고속도로가 뚫려 세계의 사이클리스트들이 몰려드는 곳이라고 한다. 열흘 동안 비자를 기다릴 바에야 일단 타지크스탄의 수도인 두샨베까지 가서 거기서 카자크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비자를 받기로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키르기즈스탄 오쉬(Osh)에서 진종일 지프를 타고 도착한 황량한 파미르고원의 첫 동네인 무르갑(Murgab: 해발고도 3,576m)은 먼지만 폴폴 날리는 산중의 인공 취락이었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고 난 뒤 750km을 더 달려, 옥서스 강으로 더 유명한 아무다리아 강의 최상류에 위치한 파미르 하이웨이 종착지인 코록(Khorog)에 도착했다. 강변 옆에 위치한 조그만 산속 마을이지만 이곳에서는 제일 큰 ‘도시’였다.

 
지나온 곳은 옛날 현장법사나 마르코 폴로가 지나온 길이기도 했다.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지날 때의 풍경에 대해서 적기를, ‘워낙 높은 곳이라 하늘에 나는 새도 없었다.’ 고. 눈 쌓인 천산산맥의 고개를 넘고 스위스 관광 옆서 같은 설산과 얼어붙은 호수를 지날 때는 해마다 다니는 라닥 지방의 풍광이 떠올랐다. 히말라야 산중이나 파미르 고원 한가운데나 고산고원의 풍경은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 야크떼나 양떼들의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며 가끔씩 눈에 띄는 산짐승까지도.

  
이제 여기서 하루만 더 가면 타지크스탄의 수도 두샨베, 그런데 이 조그만 동네에 아프가니스탄 영사관이 있지 않는가. 의외였다. 그러면서 호기심이 일었다. 곧장 두산베 까지 다시 하루 진종일 지프를 타고 간다고 해도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크스탄 대사관이 닫혀 있을 건 확실했다.

 
실크로드의 주 노선이던 천산산맥의 이서(以西) 쪽은 완전히 포기하고 그냥 아프가니스탄이나 들어갈까? 대영제국의 식민시절에도 침략자들을 무수히 괴롭혔고 소련이 침공해도 끄떡없이 버텨냈으며 근래 9.11 이후 벌어진 사태 이후에 벌어진 민중의 참사, 이런 실태를 내 눈으로 확인해 볼까? 그 옛날 징기스칸의 원나라도 이 나라만큼은 정복하지 못했는데.

 
지난해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에서 외국인 10여명을 총살했던 탈레반의 테러가 생각났지만 그 옛날 대승불교의 유적지, 무엇보다도 바미안 대불이 있던 곳, 구미가 확 당겼다. 현지인에게 길을 물으니 코록에서 세 시간 정도 비포장 찻길로 달리면 국경을 걸어 넘는 이쉬카심(Ishkashim)이란 아프가니스탄의 관문이 나온단다. 강 하나를 두고 타지크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나뉘는데 이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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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아프가니스탄이고 오른쪽은 타지키스탄이다. 아무다리아강 하나를 두고 나라가 달라진다>

 
에라 모르겠다.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숙소인 파미르 롯지 인근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영사관으로 아침 일찍 찾아가 비자를 신청했다. 까다로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간단한 비자 접수에다가 다만 한 가지 서약서를 적어 첨부하라고 했다. 입국하여 생기는 어떤 사건이라도 책임은 본인에게 있고 모든 것을 본인이 감수해야 한다는 서약과 자필 서명이었다.

 
‘그러던 말든 불러주는 대로 적고 일단 한번 들어나 가보자.’

  
미화 100불을 내니 30분도 안 걸려 비자를 내주었다. 알고 보니 이 지역 주민들과 저쪽 아프간 주민들은 모두 페르시아인들의 후예인 타지크족으로 그들의 편리, 즉 오가는 현지주민과 장사꾼들을 위해 이런 산속 오지에 아프가니스탄 영사관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덕분에 나도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할 뜻하지 않은 행운이 생긴 셈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사서 고생할 줄은 몰랐다.)

 
이쉬카심까지 가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고 그쪽에 가는 사람을 기다리는, 즉 승객이 다 차야 차가 출발하는 식이라서 그랬다. 한나절이나 기다린 끝에 승객들이 대충 찼다. 출발하지 10분도 안 되서 강줄기를 타고 올라가는데 강 건너가 아프가니스탄 땅이었다. 같은 타지크족의 땅이라지만 강 하나를 두고 한 민족이 나누어진 셈인데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할 목적으로 위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인도를 지키기 위한 영국과 청나라가 ‘남의 땅’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나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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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카심의 이른 봄 아침 풍광이다. 저 멀리 설산은 힌두쿠시 산맥이다>


 

100여km 비포장 길을 달려, 네 시간 남짓 걸렸던 길에서 몇 번이나 검문검색을 당했다. 이쪽 타지크스탄이나 저쪽 아프가니스탄의 산동네는 평화롭고 시골 풍경이었다. 그러나 전란의 여파로 검문소가 널려 있었다. 이런 곳에 끝없는 전쟁이라니!

 
마침내 도착한 이쉬카심, 타지크스탄 국경을 넘는데 출입국 관리소에는 비자에 도장 찍어주는 직원이 없었다. 보초 서는 군인의 바디 랭귀지는 지금 점심시간이라서 밥 먹고 올 것이라고. 한참을 기다리니 영어에 능숙한 키가 큰 직원이 나와서 배낭과 손가방을 샅샅이 뒤졌다.

 
다리 하나 건너가 바로 아프가니스탄, 다른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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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크샨의 전통 모자를 쓰고 목수가 직업이라는 그쪽 산골 노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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