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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동학도'표영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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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이 사람
‘걸어다니는 동학’ 표영삼


당신 세대가 떠나면 ‘동학은 사라질 것’이란 말씀을 신앙인이 아닌 나로선 부인할 수도 없었다. ‘동학의 정신이라도 이 땅에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팔순의 선생에게 그 깊은 정신이 쉬 사라질 수는 없을 거라고 힘없게 답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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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영삼 선생


삼암장 표영삼 선생은 1925년 나셔서 2008년 돌아가셨다. 조부로부터 3대에 걸쳐 천도교를 신앙했다. 평북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단신으로 남하해 천도교청년회 재건에 노력했고, 1977년 이후에는 신인간사 주간, 교화관장, 상주선도사로 일하며 동학 연구에 전념했다. 그는 제도권 학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학자들이 그에게 사사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선생의 연구는 깊었다. ‘모심과 살림 연구소’에서 선생을 모셔 강의를 듣고, 경주 용담과 우금치 등 현장 답사를 하며 선생의 연구가 사료에 뿌리를 두면서도 발로 뛴 살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선생은 가파른 산으로 안내하면서도 노구에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동학의 역사를 담았다.


동학은 사람이 하늘처럼 대접받는(事人如天) 세상을 만드는 실천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선생은 “사람은 저마다 가슴속에 하늘을 모시고 있다. 그 하늘님은 이 세상과 별개의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와 분리된 존재도 아니고, 내 안에 모셔져 있는 온 천지 생명체계의 씨앗이다”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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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식사를 차려주고, 아내와 평등하게 지냈던 표영삼 선생의 모습. 김종수 기자


선생은 ‘걸어다니는 동학’이라 불렸다. 일상의 삶 속에서도 동학의 정신을 실천했다. 가족에게 존대했고, 돌아가기 전까지 삼십년을 부인에게 식사를 공양했다. 그게 뭐 대수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에 대한 공경을 가까운 곳부터 말뿐이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1961년 이후 10여년 동안 노동현장에 투신해 체신노조, 와이에이치노조 설립 등을 지도하며 일제 때부터 이어져온 천도교의 사회실천을 계승했다.


“이 세상 저세상이 따로 없어요. 동학은 사후세계를 부정하지요. 오로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게 동학의 꿈이에요. 육신이 죽으면 그걸로 끝인데, 마지막 가는 길에 몸뚱이라도 좋은 데 써야지요.” 선생의 뜻에 따라 부음을 세상에 알리지도 않고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했다.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사라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사라지려는 것을 평생 부여잡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고 또 눈물겹다. 선생의 뒷모습이 동학의 마지막 발자취가 아니기를 바란다. 그래야 하늘은커녕 돈이 사람보다 귀하게 취급받는 오늘과 또다른 내일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윤형근 성남 한살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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