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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려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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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 김한민 감독 “두려움 용기로 바꾸려면 정견 필요”


<법보신문> 남수연 기자  |  namsy@beopbo.com


7월30일 영화 ‘명량’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한민 감독은 사뭇 여유로워 보였다. 일주일 앞서 개봉한 영화 ‘군도’가 개봉 당일 55만 관객 유치라는 기록을 세운데 대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영화계의 여름 흥행 흐름이 사극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만큼 ‘명량’과 ‘군도’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분명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이순신 장군’이라는 역사상 가장 크고 묵직한 캐릭터를 앞세웠기 때문인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듯 하다.


‘의도한 이순신’ 최대한 배제
난중일기 속 무인 담으려 노력
61분 전투씬 통해 현장 느끼길
승병 활약도 꼭 보여주고 싶어

‘자기 극복’이 ‘용기’로 가는 열쇠
삼법인에 대한 바른인식이 첫 발
불교의 가르침이 절실한 시대


“어떤 이순신 장군을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담백한 무인 느낌의 이순신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을 새롭게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해석하고 드러내면 그것은 자칫 잘못된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석한 이순신이든 주관적인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개몽적이고 교훈적인, 위인전이나 교과서 속 이순신의 모습도 영화에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넘게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이순신’이 아닌 ‘명량’인 것처럼 포커스를 명량해전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명량김한민.jpg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그래서 인가 영화 속 명량해전 전투 장면은 무려 61분에 달한다. 그것도 바다 위에서 격하게 흔들리는 배에서의 전투다. 침몰의 위기를 수없이 넘기는 전투 장면을 한 시간여 보고나면 그야말로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듯 한 피곤함이 느껴질 정도다.
“전투가 끝나고 난 후 판옥선 가장 아래층 격군실에서 노를 저은 격군들이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아줄까’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의 후손으로서, 관객들이 명량해전의 극한 상황을 함께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명량해전에 무게를 둔 영화의 결말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결론이 알려진 영화에 긴장감 주기. 그 역할은 이순신 주변의 인물들이 이끌고 있다. 특히 왜병의 선봉장을 맡은 구루지마는 그런 점에서 감독이 택한 히든 카드다.
“임진왜란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일반적 인식, 특히 사악함으로 대동단결한 왜군의 이미지를 벗기고 싶었습니다. 왜군 장수들 또한 다양한 출신, 다양한 야욕을 갖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것이 더 사실적인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구루지마는 본인과 동생 모두 이순신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만들어내는 이순신과의 갈등관계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왜군들에 대한 느낌을 좀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명량1.jpg

 


이순신 장군이 선봉에 선 대장선과 구루지마가 이끄는 왜군의 선대가 맞부딪치는 명량해전은 우리 영화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해전 장면이다. 더구나 어느 누구도 본적 없는 명량해전의 골격을 감독은 ‘난중일기’에서 찾았다. 무기, 선박, 배우들의 의상 등을 철저히 고증해 재현했다. 그 바탕 위에 조선 수군의 전투 습성을 결합해 객관적으로 유추 가능한 해전을 묘사하려 노력했다.
“고증이라는 부분이 자칫 공격의 쉬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개연성 위에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전투장면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기희생과 그 희생을 통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나가는 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무대가 명량해전입니다.”


감독은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 ‘명량해전을 택한 이유’에 대해 “우리 사회에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영화 ‘명량’에서 조선 수군과 백성들에게 팽배해 있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매개체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자기 극복을 해야 합니다. 불가에서 이야기하듯 아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견을 가져야 하고 정견은 세상에 끝없이 변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 즉 삼법인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삼법인에 대해 바르게 인식한다면 정견을 통한 자기극복도 가능합니다. 정견을 통해서만 자기 아상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정신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개인적인 견해이기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이런 점에서 불교적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가 공직에 나선 이후 보여준 삶의 모습과 생사관에 대한 인식은 그가 분명 자신의 아상을 극복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불교에 대한 감독의 깊은 인식 때문인지 영화 속에서는 유독 승군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특히 육군으로부터 무기와 군사를 지원받기 위한 수군의 요청에 승군들이 앞장서는 모습은 다분한 감독의 의도다.
“‘난중일기’를 보면 명량 해전을 얼마 앞두고 스님에게 승병장의 직책을 주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를 비롯해 승군에 대한 기록이 무척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는 임진왜란에서 승군의 역할에 대해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병 중 특히 승병의 활약이 돋보였음을 이번 영화에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명량2.jpg

 


감독은 스스로가 “내 근기가 불교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내면의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님들과의 교류도 적지 않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그의 질문이 불교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 ‘명량’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워낙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타성이나 본성이 깨지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고귀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들을 포착하고 싶습니다.”


명량3.jpg


벌써부터 세간에서는 다음 작품으로 ‘한산대첩’이나 ‘노량대첩’이 거론된다. 감독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한산대첩이나 노량대첩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그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어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2007년 처음 명량에 대한 영화를 구상한 이후 종종 난중일기를 읽어봤습니다. 스스로 뭔가 허하다는 느낌이 들 때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남의 일기 훔쳐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속의 이순신 장군은 바른 안목을 갖춘 무인이었습니다. 원칙과 성실에 입각해 공무를 처리하고 사람을 대했으며 본인 또한 그렇게 행동한 인물입니다. 그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 역시 그런 점에서 정말 무인다운 죽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했고 무장답게 죽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던 전쟁 ‘명량’. 그 역사를 과감히 우리 앞에 전해준 김한민 감독의 자신감이 벌써부터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단 ‘명량’ 그리고 그 속에서 ‘장군 이순신’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이 글은 법보신문(beopbo.com)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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