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 세월호 유족들 한을 풀어주소서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뉴시스>
13일 현재 31일째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사진 김태형 기자
4박5일 일정으로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약자의 인권이 짓밟히는 암울한 국내 여건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메시아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도 이에 호응해 위안부 할머니와 용산참사 피해자 가족,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피해 주민, 쌍용차 해고근로자 등을 교황이 18일 명동성당에서 집전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 미사엔 세월호 유가족들도 초청했고, 미사 후엔 단원고 학생들 10명이 교황을 만날 수 있는 자리도 주선했다.
교황은 여름 휴가 기간에 한국을 찾는다. 30~40년 전도 아니고, 세계경제개발기구 회원인 나라에서 난제를 스스로 풀지 못하고 고령의 손님에게 우리의 구원을 부탁하는 것이 것도 부끄럽다.
그러나 이 땅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은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304명의 산생명이 눈 앞에서 수장 당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진상조사를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도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광화문 시복식 행사장 안전벽 안에선 세월호 유가족들이 13일 현재 31일째 단식 농성 중이다. 단원고생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는 31일째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오고 있다. 현장과 실천의 중요성을 갈파한 교황의 가르침을 따르는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 매일 백여명씩 14일째 단식 농성에 동참 중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유족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정치 부재와 절망감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간절한 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천주교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광화문 초대형행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둬 프란치스코 교황다운 구체적 언행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교황은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적 상황을 잘 분별할 수 있다고 본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등 군부가 1976~83년 7년간 3만여명을 희생시킨 ‘더러운 전쟁’ 속에서 살았고, 양심적인 수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빨갱이로 몰려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 그이기에 하나마나한 사랑, 화해와 같은 관념적인 수사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그는 교황이 된 뒤 첫 방문지로 난민이 많은 람페두사를 택해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울음을 상실해버린 세태’를 질타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고통 받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온국민이 진정으로 함께 울도록 영적 각성을 일으켜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교황이 200년 전의 순교자를 기리는데 그치지 않고, 이 땅에서 다시는 억울한 순교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이끄는 ‘깨어있는’ 여정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