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사도 시성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독재에 저항한 ‘정의의 사도’를 성인으로 추대할 길을 열었다.
그는 18일(현지시간) 로마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로메로 대주교를 복자로 선포하는 것을 막던 교리적문제가 이미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해결됐다”면서 시복 심의 절차가 교황청 시성성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메로 대주교
그가 말한 오스카 로메로(1917~1980))가 누군가. 1993년 존 듀이건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 <로메로>를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양심의 사도’다.
남미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1980년 3월 24일 미사도중 우익 군부 하수인의 총격을 받고 숨진 인물이다. 로메로는 본래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963~65년 가톨릭 개혁을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도 마뜩치않아하는 전통주의자였고, 남미의 빈자들과 함께 한 해방신학을 ‘증오에 가득찬 그리스도론’이라고 공격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대주교가 되어 사제들로부터 처참한 농민, 빈민, 원주민들의 실상을 들은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생존권을 빼앗기면서 단말마처럼 내뱉는 호소마저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 되었다. 그는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며 교회를 침묵시키려는 군부의 음해에 굴하지 않고 군인들에게 군부지도자의 불의한 명령에 따르지 말고 양심에 따를 것을 호소했다.
*군중 속의 로메로 대주교 모습
로메로 암살의 배후는 1993년 유엔이 지명한 ‘엑살바도로의 진실에 관한 위원회’에 의해 수천명의 증언을 토대로 군부지도자들의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이 드러났다. 그 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소속인 예수회 신부 6명도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은 특수비밀부대에 의해 암살됐음을 밝혔다.
로메로는 1997년 요한바오로2세 교황이 엘살바도록 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으나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바티칸 보수화의 핵심으로 꼽히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도 16세 교황)이 로메로의 신심을 해방신학적 혹은 좌파적으로 여겨 위험시하면서 흐지부지 됐다.
그런데 교회적으로 성령의 바람이 이런 쪽으로 불었다. 베네딕도 16가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2012년 임명한 뮐러 대주교가 실은 해방신학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후 교체하지 않았고, 해방신학은 가장 보수적인 베네딕도16세가 임명한 신앙교리성 장관에 의해 복권됐다.
그러나 로메로가 순교자로 인정받으려면 ‘정치적 이유’때문이 아니라 ‘신앙 때문’이란 증거가 필요했다. 가톨릭은 제2차바티칸공의회에 의해 ‘하느님의 백성은 가톨릭신자만이 아니라 전인류이며, 선교는 개종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선 증진’이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신앙’ 자체가 수정됐지만, 여전히 구체적 항목에 있어선 걸림돌이 적지않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식에 복자가 된 순교자들처럼 종교박해 등에 따라 신앙을 고수하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 외에도 ‘사목 과정에서 죽은 경우’도 순교로 인정할 것을 검토하도록 신앙교리성에 요청했다. 교황은 이날 기내 인터뷰에서 “로메로 대주교를 시성하는 교리적 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로메로가 복자·성인이 되게 됐고, 남미에서 독재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제들이 교회 내에서 순교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에도 군부독재에 의해 암살된 사제인 카를로스 데 디오스 무리아스(1945~1976) 신부 등 3명을 성자로 추대하기 위한 시성을 교황청에 청원한 적이 있다.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태동한 게 정의구현사제단이다. 교황청이 정의구현사제단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해방신학자에 대한 대우로 이미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교황의 로메로 시성이나 세월호 추모는 교회가 교회를 위해서만 존재해선 안되고 교회 밖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자신의 기존 주장에 따른 것이다. 교황청 라디오 방송은 지난해 새 교황을 뽑기 위한 콘클라베(교황 선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회의에서 전체 추기경이 모인 가운데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교황)이 한 연설을 공개한 바 있다.
그가 <루카복음>에서 예수가 (일을 해서는 안되도록 율법에 정해져있는) 안식일에 여인의 병을 고쳐주는 구절을 인용하며, “자신만을 위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벗어나 죄악과 고통, 불의, 교회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관심을 기울여 영혼 구원을 위한 변화와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했고, 추기경들이 그를 교황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 가톨릭 신학자는 “애초 대전이나 광화문에서 봉헌된 거룩한 미사엔 정치적 상징물을 달아서도 안되고 정치적 행동을 해서는 안되게 돼 있다”며 “교황이 미사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희생자 가족을 위로한 것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목이란 의미를 담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교황은 삼위일체 같은 핵심교리는 부정할 수 없지만 교회법보다 우위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교회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며 “미사에서 추기경, 주교, 신부 등이 신자들을 넘어서 더 많은 이들의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