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삶] 조선세법(朝鮮勢法) 되살린 김재일 검객
춤을 추듯 유연한 한민족 정통 검법의 경지
칼끝이 지면을 향한다. 동작이 정지된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칼끝을 지면을 향해 빙글빙글 돌리며 뒷걸음친다. 언뜻 보면 춤추는 모양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몸동작이다. 백사농풍세(白蛇弄風勢)이다. 마치 흰 뱀이 독기 오른 눈으로 머리를 곧추세우고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가볍게 좌우로 머리를 흔들고 있고, 상대는 그런 백사를 희롱하듯 어르면서 조용히 공격의 기회를 노리는 형세이다. 뒷걸음치던 검객은 곧바로 반격에 나선다. 표범 머리를 힘차게 내려치는 표두세(豹頭勢)이다.
“긴 창을 가진 상대방을 다루는 검술입니다. 창끝을 땅에서 뜨지 않게 견제하면서 제압합니다.”
설명을 들으니 칼끝을 낮추고 춤추듯 뒷걸음치는 동작이 이해된다. 검객의 코와 턱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동작은 과격하고 빠르지 않으나 품고 있는 공력은 헤아리기 힘들다.
세밀한 몸동작이 무술의 깊이를 더한다. 여선참사세(呂仙斬蛇勢). 왼손으로 허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 비스듬히 칼 허리를 잡아 공중을 향하여 한길
남짓한 높이로 던진다. 칼등이 원을 그리며 굴러떨어지면 가만히 한걸음 나가서 손으로 받아든다. 이어지는 양각조천세(羊角弔天勢). 꿇어앉아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아 칼등을 비스듬히 왼손 첫째 손가락에 기대고,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칼 머리를 튕긴다. 칼자루는 손가락을 둘러싸고 둥글게 굴러서 무명지 손가락 사이에 와서 그친다.
한민족 전통의 검술로 알려진 조선세법(朝鮮勢法)의 정밀한 동작들이다. 놀랍게도 그동안 문헌으로만 알려진 조선세법을 복원한 검객은 김재일(75)씨. 그는 62년 동안 일본이 정리한 검술인 검도를 익히며 ‘검신’(劍神)의 경지인 검도 8단에 오른 원로 검도인이다. 13살 때 대구 경찰학교에서 선배 검도인들이 검도를 하는 것을 보고, 검도에 입문한 김씨는 고등학교 시절 최초로 전국체전을 2연패 했다. 대구대(현 영남대) 검도부에 들어가 전국체전 검도부에서 우승한 그는 1967년 최초의 국가대표 검도 선수로 뽑혀 12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김씨는 경희대와 부천시청 감독을 역임하며 수십 차례 단체전과 개인전 우승을 일궈냈던 정통 검도인이다.
애마를 벤 김유신 일화에서 착안
검을 치면서 동시에 깎는 검법
고문서 뒤진 끝에 400년만에 복원
검도 8단의 고수 ‘활인 검법’ 전환
70대 나이에 눈빛만으로 상대 제압
일본의 검술인 검도의 고수가 왜 한민족 전통 검술을 복원하는 ‘반란’을 꾀했을까?
오랜 세월 검도를 하면서 그는 한가지 의문을 풀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신라 장군 김유신이 칼로 애마의 목을 잘랐다는 일화에서 출발한다. 김유신은 술에 취한 자신을 태우고 기생의 집으로 간 말을 단숨에 칼로 잘랐다고 알려졌으나 자신이 평생 수련한 검도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말의 목을 칼로 단번에 내려쳤다고 하는데, 치고(격·擊), 때리는(타·打) 현대 검도의 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한민족 정통 검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검을 치면서 동시에 깎는(삭·削) 우리 정통 검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신라 때만 해도 정통 검법이 살아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김씨는 고문서를 뒤졌다.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민족 검술의 희미한 자취를 찾아다니길 18년. 그는 마침내 중국 명나라 때의 병술가 모원의가 쓴 <무비지>(武備志)라는 병서 속에서 ‘조선세법’이라는 전통 검법을 찾아냈다. 모두 240권으로 이뤄진 <무비지>는 9권을 고대 무술에 대해 기술했는데, 여기에서 조선에서 전래한 검법으로 조선세법을 소개한다. 조선세법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는 쌍수검보라고 표현돼 있다.
조선세법에는 치고 때리는 기술 외에 올려 베고, 깎아 내리고, 점 찍듯이 꼭 찌르는 다양한 기술이 있었다.
김씨는 <무비지>를 잘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를 1995년에 만난다. 그는 중국 연변대학 무술기공학과 허일봉 교수였다. 중국동포인 허 교수는 중국 무술과 기공 전문가로 <무비지>의 조선세법을 자세히 번역하고 해석했다. 조선세법이 400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김씨는 조선세법을 되살린 공로로 2006년 대한체육상을 수상했다.
“일본 검도는 살인(殺人) 도법(刀法)입니다. 치고 들어가 상대방을 단칼에 벱니다. 그러나 복원시킨 조선세법은 활인(活人) 검법입니다. 가능하면 본인뿐 아니라 상대방도 죽이지 않고 부상 정도로 싸움을 끝냅니다. 그만큼 우리의 정통 검법은 다양한 기술을 지닌 평화·타협의 수준 높은 검법이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검도뿐 아니라 유도, 레슬링, 태권도, 펜싱, 씨름 등 다양한 운동을 접한 김씨는 검도와 조선세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느 날 집안으로 쳐들어온 늑대(일본)에게 어머니(조선세법)를 잃고 늑대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커서 자신의 어머니가 늑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아이(한국의 검도인)는 어머니 젖을 먹었으나 맛이 밋밋하고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써 어머니 젖을 외면했어요. 이제는 우리가 어머니 젖을 사랑해야 합니다.”
김씨가 복원한 조선세법은 한민족의 민족성처럼 부드럽고 유하다. 마치 춤을 추는 듯이 칼이 움직인다. 그래서 일본 검도에 비해 연해 보인다. 김씨는 “겉으로는 연해 보이지만 그 다양한 기술과 섬세한 움직임은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신비감을 더하는 세계 최고의 검술로 손색이 없어요”라고 단언한다.
김씨가 가장 선망하는 인물은 <수호지> 양산박의 주인공 송강. 이유는 덩치도 작은 송강이 수하의 무시무시한 무리를 이끌고 제압할 수 있는 이유는 송강이 지니고 있는 기위(氣位) 때문이라는 것. 평생 검도를 한 김씨는 70대 중반의 나이지만 당당한 덩치와 강한 눈빛으로 상대를 굳이 칼을 들지 않고도 제압하는 기운이 있다.
김씨는 자신이 복원한 조선세법을 전수하는 동시에 검도처럼 경기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검술을 스포츠화해 널리 알리는 동시에 누구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익힐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1천년 이상의 전통이 있는 한민족 전통 검술을 애써 외면하는 검도인이 많이 있습니다.”
검을 손에 쥐자 그가 입은 흰색 두루마기에 생명력이 넘친다. 고구려 무인의 옷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