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1천여쪽 12권 분량 ‘아함경’ 펴낸 학담 스님
“한국불교 종파화·관념화…실천적 삶으로 개혁해야”
학담 스님(사진)이 불교계에서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대작업을 해냈다. 석가모니 붓다의 원음이 담긴 <학담 평석 아함경>(한길사 펴냄)이란 해설집이다. 200자 원고지로 무려 4만여장, 1천여쪽 분량의 책 12권이다. 읽기는커녕 바라보기에도 버거운 두께다. 그나마 아함경의 단순한 번역도 아니다. 불교 2500년의 경·논·소를 꿰뚫어 한 줄로 꿴 통찰력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는 아함경을 2500년 전의 ‘죽은 언어’가 아니라 2500년을 관통하는 ‘활어’로 살려냈다.
“초기 경전으로 통하는 아함경
금강·화엄경보다 수준 낮지 않아
강 건넜으면 뗏목 버려야 언덕 넘어
빈자 고난 함께 짊어지고 치유를”
그는 1970년대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 중 경주 분황사로 도문 스님(현 대성사 조실)에게 출가했다. 이어 3·1운동 민족대표였던 백용성 스님의 제자인 동헌 스님을 서울 대각사에서 시봉하면서 선(禪)을 접한 뒤 상원사·해인사·봉암사·백련사 등의 선방에서 참선정진했다.
그는 이미 90년대 초 도법·지홍·현각·원행·범진·원타·정연·원명·지환·현봉·천월·수경·종광·여연·범하·영명·현응·명진·돈연·무관·인각·유광·영진 스님 등 현 조계종의 중추적 인사들과 함께 선우도량을 일구기 전부터 은둔적 불교를 실천적 불교 사상으로 해석해내는 데 탁월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까지 <아함경>은 금강경이나 화엄경 등 대승경전보다 수준이 낮은 초기 경전쯤으로 여겨졌다. 동아시아에서 꽃피운 대승불교와 비교해 초기 경전과 남방불교를 ‘소승’으로 폄하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학담 스님은 이런 분절된 사고부터 깬다. 그는 ‘제2의 붓다’로까지 존중받는, 대승보살의 화신 용수보살의 저서 <중론>부터 예로 든다.
“<중론>을 보면 전부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인연품, 사제, 12연기, 열반 모두 아함경에 대한 것이다. 중론은 아함경에 대한 기존의 왜곡된 해석에 대한 비판론이다. <대지도론>도 마찬가지다. <반야심경>도 아함경의 공과 오온, 12처, 사제, 12연기 등 불교적 핵심 사상을 중도로 해석한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그는 “부처가 처음 출현해 기존 제사종교와 고행주의에 빠져 있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모든 것은 인연으로 있으니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존재는 공하지만 법이 덩어리로 있다’고 본 게 부파불교이고, ‘인연으로 일어난 존재도 공(空·빔)하고, 인연 자체도 공하다고 본 게 반야불교”라고 했다. 천태 대사가 아함부, 반야부, 화엄경 등으로 분류해놓은 것은 각 교설의 차이점을 말한 것이므로 이를 분절적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지역이 넓어 한 경전이 들어오면 그것만 유포돼 그 경에 따라 열반종·화엄종·정토종 등이 생겨났는데, 남북조시대에서 수나라로 통일되던 시기에 천태 대사가 모든 경을 회통시켜 선으로 통일시켰으므로 동아시아 선의 조종은 달마 대사와 천태 대사 두 분으로 봐야 한다.”
새로운 주장이다. 그러나 유추가 아니다. 방대한 독서와 지식을 더한 실질적 고증이 뒷받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의 의천이 천태를 개창한 이래 조선초엽 행호 대사 등 천태 계열 스님들이 요즘의 종정에 해당되는 선종판사를 맡았다고 한다.
“이미 중국에선 송나라 말기 명나라 말기 감산덕청 우익지욱, 자백진가, 운서주굉선사 등이 교판과 종파선 비판운동을 벌여 종파화한 불교를 개혁하고자 했고,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엔 사상통합 운동을 벌어 조사선에서 ‘방(방망이질)할(고함)치는 단계에서 벗어났는데 한국 불교는 아직도 이 운동조차 전개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아직도 임제선사의 법통(족보)주의에서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활발발하고 ‘격 밖’(파격)에 있는 게 불교 정신이다. 그러나 ‘인격적 권위’(스승)를 의지하지 않는 반야(지혜)와 정법안장(법통)만을 중시하면서 불교가 관념화되고, 행위의 절제가 부족하게 됐다.”
그는 선의 정신을 바로 불교 정신이자 최고봉이라고 평한다. 그가 질타하는 것은 그런 정신이 아닌 법통과 같은 허깨비다.
“부산에 가는 표만 끊고 가지 않으면 되는가. 염라대왕 앞에서 화두를 했다는 것으론 말이 안 된다. 생사를 초탈해야 한다. 닫힌 문을 두드리기 위해 기왓장을 들었다면 문을 연 이후엔 기왓장을 버리는 게 당연하다. 스스로 물음을 통해 자기 해답을 갖고, 여래가 깨친 세계관에 복귀하는 화두선의 방법론은 훌륭하지만 화두도 공한 줄을 알아야 한다. 방법론이 교조화하고 경직되어선 안 된다. <아함경>에 나온 대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저 언덕을 넘을 수 있다.”
그는 평생 선(참선)·교(불교학)를 함께 해왔지만 잠자는 불교를 깨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실천이다. 그는 출가한 즉시 치열한 보살로서 실천적 삶을 산 <아함경> 사례를 들어준다.
“부처는 한 비구가 병든 비구를 내팽개치자 직접 가서 씻어주고 옷을 빨아주었다. 그리고 병든 이를 보살피는 게 여래를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내 복을 빈자에게 나눠주고 검소하게 사는 두타(고)행이라도 해야 한다. 부처는 탁발한 밥을 반드시 4등분해 굶는 사람과 빈자, 밥을 빌지 못하는 비구 등과 나눠 먹었다. 고난을 함께 짊어지고 치유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는 “불교적 지혜는 반드시 실천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의 ‘아함경 해석’ 12권은 행함이 없는 한국 불교계에 큰 죽비가 아닐 수 없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최초의 부처 말씀 12권에 담은 노작 불교 초기 경전인 <아함경>(阿含經, Agama-Sutra) 평석본이 새로 나왔다. 1000쪽이 넘는 책들을 포함한 총 12권에 1400여 경들을 읽고 해석해 놓은 방대한 분량이다. 경기 양평과 전남 화순의 절을 오가는 선승 학담 스님의 30년에 걸친 연찬과 4년에 걸친 집필작업 끝에 나온 노작이다. 창립 38주년 기념 기획물로 이를 출간한 한길사는 “한국 불교문화사의 획기적 업적”이라고 자평했다.
학담 평석본은 붓다의 가르침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아함경>의 예전 번역본들엔 제대로 없었던 체계를 짜서 12책마다 각각 주제어를 달고 각 장마다 해제를 넣었다. 거기에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하는 각 절마다 ‘이끄는 글’과 ‘해설’을 붙임으로써 가장 완성도 높은 종합적 번역·해설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함경>은 그동안 동아시아 대승불교 역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학담 스님은 그 까닭을 불교의 진리관과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도가적 언어관·진리관을 혼동한 “불교언어의 자기왜곡”, 그리고 아함이 반야·유식·여래장·화엄의 대승 전통과는 다른 소승의 교설로 여겨져 홀대받은 결과라며, “이는 모든 대승교설이 아함의 근본교설의 시대적 해석이라는 점을 간과한 견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초기 불교 교설의 시대적 해석이자 붓다 철학의 왜곡에 대한 비판운동이었던 대승불교의 발전되고 풍성해진 교리 이해를 통해 아함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출판사는 학담 평석본이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팔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유럽어 문헌까지 읽고 동서양 철학을 두루 섭렵한 뒤 선과 교뿐만 아니라 실천까지 아우르면서 오늘날의 새로운 눈으로 아함을 재해석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며, “원효 스님의 얘기도 많이 나온다. 한국불교의 전통까지 녹여냈다”고 덧붙였다. <아함경> 북전은 원전인 산스크리트어 경이 없어지고 그 한문 번역본만 남아 있다. 학담 스님은 중국에서 아함경이 한역된 시기와 스리랑카에서 팔리어로 니카야가 정비된 시기가 거의 같은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지금은 사라진 북전의 산스크리트어 원전 정비가 팔리어 경전 정비보다 더 앞설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팔리어 불전만이 붓다의 육성 법문”이라는 설을 물리치면서 “대승이 오히려 아함적”이라며 양쪽을 상호보완적·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