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발생 50일 째인 지난 6월 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공주 동학사 스님들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불교평론> 15돌 심포지엄
세월호 침몰 사건은 승객 안전을 도외시한 노후 선박, 개조, 과적, 관(정)-경 유착, 엉터리 안전관리와 구조 등 자본주의 문제투성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간을 소모품이나 폐기품으로 취급하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한 주장을 여실히 증명해준 대참사였다. 그런데 재발 방지와 안전대책으로 가는 첫 단계인 진상규명을 위해 한 발도 떼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선 ‘이제 그만’이란 반론이 제기된다. 다시 경제 논리다. 세월호가 경제를 살리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현 정권의 선창에 불교계에서도 복창하는 이들이 있다. 불교계도 자본주의의 폐해에 깊게 물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평론>(주간 홍사성)이 창간 15돌을 맞아 ‘불교의 눈으로 자본주의를 말한다’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1~6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였다. <불교평론>은 시인·독립운동가·승려인 만해 한용운의 사상을 기리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발간하는 계간지다. 200여명의 청중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 심포지엄에선 7명의 발표자와 청중이 ‘돈이 부처와 신을 대신한 시대에, 불교인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하나’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무소유와 금욕이 강조되는 불교는 과연 자유시장과 탐욕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와 상극인가. 이 점에서 김광수 한양여대 교수는 출가수행자라면 모르지만, 재가자(신자)에겐 경제활동을 권장하는 게 불교라는 사실을 초기 경전 <니까야>를 들어 설명했다. 불교 경전에선 재산 소유, 관리, 분배 등의 경제행위를 모두 인정하는데, 다만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취득하고, 근면을 통해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않는 검소한 소비생활을 권장한다는 것이다.
또 불교 경전에서 제시한 ‘재화(돈)를 버는 이유’는 △가솔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친구와 동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환란에 대비하고 상속하기 위해 △왕과 대신에 대한 의무를 위해 △성자들을 공양하기 위해서 등 5가지다. 돈을 버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위한 이런 도리를 다하고 이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과)는 “불교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불교는 탐욕을 없애고 이타심과 동체대비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 반해 자본주의는 탐욕을 키워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고 인간 소외를 심화시키기 때문에 반불교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중석에 있던 이해숙 금강대 객원교수는 “그렇다면 불교인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무척 고통을 받았어야 하는데 말없이 공존해온 내연관계였느냐”며 “불교가 너무 이념적이거나 우리가 불교도가 아니었던 것이냐”고 반문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민경국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경제에 대한 불교관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교 경제학은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며, 이것이 환경위기와 경제위기를 야기한다고 주장하는데, 불교의 사회철학은 인간의 탐욕을 다루는 방법이 틀렸음을 보여준다”며 “인간의 탐욕 또는 이기심이 무제한적이면 그것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는 재산권 규칙, 계약과 관련된 규칙, 책임 규칙 등의 장치를 두고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경쟁을 통해 비싼 값으로 파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므로 경쟁이야말로 인간의 탐욕을 가장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므로 국가는 자유경쟁에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또 “탐욕은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고칠 수 없는 요소이므로 건설적인 담론은 탐욕과 이기심을 사실로 인정하고, 이것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 위해 필요한 게임 규칙이 무엇인가를 규명해야 하는데, 불교의 사회철학은 탐욕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병폐의 원인으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는 자본주의가 자유경쟁에 의해서만 굴러간다는 민 교수의 논리를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비판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이 주로 자본과 기업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유정길 전 에코붓다 대표는 ‘자본주의가 무엇보다 지속될 수 없기에 치명적’이란 점을 지적했다. 과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이끄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나라에 사는 세계 인구의 20%가 전세계 화석연료의 82%를 소비하는데, 만약 13억 중국과 12억 인도와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들이 자본주의 방식대로 이렇게 소비한다면 지구는 곧 결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포교사회학)는 일본에서 인격 연마를 경영과 연결지어 3대 경영의 신으로 꼽힐 만큼 기업가로 성공을 거둔 뒤 불가에 입문해 승려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나모리즘을 ‘자본주의 불교의 만남’의 사례로 제시했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자본주의 독을 해독하는 ‘관조’라는 장치를 불교가 갖고 있지 않느냐”며 물질적 풍요로움만이 아니라 정신적 풍요로움에 눈을 뜨는 불교적 수행을 대안으로 보았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