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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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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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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18호【공동선을 열며】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혼이 나셨으니…  
 

안 수녀님은 강정, 밀양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당신 아버님께 혼이 났답니다.
“다른 수녀들은 자기 자리에서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넌 왜 자꾸 그런 곳에 다니느냐? 내가 TV 볼 때 우리 수녀가 또 저기서 끌려간 건 아닌가, 매 맞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강정에 그 많은 신부님들 끌려가고 재판받아도 바뀌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니? 그런다고 거기 해군기지 안 짓니? “


들려나가는수녀.jpg

*지난해 12월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사업단 앞에서 미사를 열려는 사제와 수녀들을 경찰이 들고 나오고 있다. 서귀포/김태형 기자

※글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사진임.


수녀님도 자신이 지켜야 할 자기 자리는 어디일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러고도 열심히 여기저기 쫓아 다녔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애를 써 봐도 아버님 말씀대로 밀양이며 강정에서 눈 하나 꿈쩍 않고 공사를 밀어붙이는 걸 보며 수녀님 스스로도 너무 절망했다더군요.
‘내가 지금 미사에 함께 한들, 내가 기도를 한들, 인터넷 글에 “좋아요” 누르고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하고 다닌들 뭐가 바뀌지?’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움막 다 철거당하고 그곳에서 아예 쫓겨난 밀양 할머니들이 다시 모여 무언가 새로 시작하는 걸 보고는, ‘아,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 자리에서 만나는구나‘  생각했다는 겁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오시기 전인 지난 7월 교황청 정의평화 위원회 주교님이 선발대로 오셨습니다. 교황님은 세속과 영성을 하나로 보시는 분이시니 우리나라의 정의평화 실상을 알아보라고 미리 보내신 거였습니다.
아침 일찍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 몇 분이 주교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수녀님이 로마 주교님께 하소연을 했습니다.
“공동선을 추구해아 할 국가가 밀양에서 핵발전소 건설이나 고압 송전선에 대해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 주민들에게 마구 폭력을 행사하고, 이에 항의하는 신부 수녀들을 붙잡아가는 상황에서, 교회의 높은 분들이 모른 척하고 계시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물론 정의평화위원회 차원에서, 그리고 개별적으로 여러 평신도, 수녀, 신부들이 애를 쓰고 있지만, 교회 전체 차원에서 사회교리에 맞게 적극 대응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이 답답한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뜻에서 교황님을 대신한 로마 주교님께 하소연을 한 거였습니다.
수녀님이 꼼짝도 안하는 교회의 높은 분들을 거론하자 그 자리에는 한 가닥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로마 주교님의 답이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우리 로마에서도 그렇답니다.”
 “ … 아, 그렇군요.” 
우리 교회의 답답한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있던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일순 깨달음이 왔습니다. 밀양을 다시 찾았던 안 수녀님처럼 말입니다.  무슨 깨달음이냐고요? 로마 주교님은 이리 말씀을 이어 갔습니다.
“우리 로마에서도 정의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교회 내에서도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고 열심히 애를 써도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일이 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신자, 성직자, 수도자들 중에 이 땅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애쓰고 희생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애씀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게 여러분들의 소명입니다.”


그렇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님조차도 하시는 일에 많은 방해와 어려움이 있다는 거니까, 교황님은 로마에서, 우리는 여기 밀양에서 각자 맡은 바를 열심히 감당해 낼 뿐이지요. 교황님이라고 무슨 요술 방망이처럼 권능을 사용해 어려운 일들을 뚝딱 풀어 낼 수는 없는 거겠지요.


따지고 보면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의 한 위격이시라면 그 전지전능하신 힘으로 악인들을 물리치시고, 아니 그들의 강팍한 마음을 슬쩍 바꾸어 내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면 간단할 것을….  그 전능하신 힘으로 사자들이 풀을 뜯게 하시면 될 것을…. 당신은 어찌하여 초라하게 도둑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까?


프란체스코 교황은 한 편지에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 차례 되풀이 되는 ”이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지상의 권위와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권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타인들을 힘으로 굴복하려는 의도가 없는 권위, 오히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삶의 충만함을 부여하려는 권위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고, 몰이해와 배신과 박해를 겪고,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 위에 버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랑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서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하느님의 진정한 아들임을 깨닫기를, 그리고 그 자신 또한 하느님의 진정한 아들로서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안 수녀님은 비록 엉터리 같은 국가 공권력에 혼나고, 또 아버님께 혼나고 있지만, 수녀님 있을 자리에 잘 있는 거고, 하느님의 진정한 자녀로 잘 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혼이 나셨으니, 이 또한 우리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아닐 수 없지요.


김 형 태 / <공동선> 발행인, 법무법인 덕수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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