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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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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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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궂은 노인 특유의 표정으로 변한 공 노인이 혜관을 빤히 쳐다본다.

"허 참, 소승이 뭘 잘못했기에 노인장께서 이리 역정이시오?"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고,"

"…… "

"세월이 가는 것이 안타까운데 해는 또 왜 이리 긴지 모르겠소."

"그러니 저울대 한복판에서 기울지 않고 사는 게요. 그게 못견딜 노릇이지요. 세월 가는 것이 안타까운데 해는 길고, 자식이 있어 걱정, 없어도 걱정, 너무 사랑해도 외롭고 사랑이 없어 외롭고, 재물이 많으면 세상이 좁고, 재물이 없어도 세상이 좁고, 인간 고해 허우적거리긴 매한가지 아니겠소? 해가 길면 극락왕생을 빌어야지요."

"대사 말씀이 맞기는 맞소. 빈 손으로 세상 밖에 나왔다가 빈 손으로 갈 곳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데 소리치고 했다는 일도 지나놓고 보면 티끌이고 세월이 잡아묵고 가버리면 그만인 기라. 악하면 얼마나 악하고 선하면 또 얼마나 선할꼬? 또 극락은 어디 있으며 지옥은 어디 있는 기든고? 일장춘몽, 다 덧없는 일이오."

눈빛이 흐릿해진다.


<토지 12/3부 4권>(박경리 지음, 나남출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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