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난 왜 이렇게 엄마가 많아?
글의 주인공 청소년들은 살레시오 남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마자렐로센터>와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 현재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법원에서 ‘6호처분’이라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6호 처분’이란 소년법 제32조에 의한 보호처분을 말합니다. 비행성이 다소 심화되어 재비행의 우려가 있는 청소년을 교육을 통해 개선하기 위한 법입니다. 센터에 머무는 법정기간은 6개월이며 퇴소 후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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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배를 탄다. 고기를 잡아 파는 어부다. 선장님이 없으면 직접 배를 운전도 한다. 나는 엄마가 다섯 명이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친엄마에 대해서는 자세한 거 잘 모른다. 첫 번째 새엄마는 나를 두 살까지 키워주고, 두 번째 새엄마는 네 살 때 왔는데 날 너무 싫어했다. 아빠 앞에서는 웃으며 내 머리도 빗겨주고 맛있는 것도 해주면서 우리 딸, 우리 딸 하고 불렀다. 그러나 아빠가 안 계시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 날의 기억이다. 그날 아빠는 배를 타러 나가고 엄마밖에 없었다. 나는 아침에 <어린이 집>에 갔다 끝나서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딱 열고 들어갔는데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안 했다고 대나무로 엄청 때렸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어떻게 인사를 안 해. 넌 입이 없어?”
*새엄마와 아이. 영화 <장화홍련> 중에서
나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는 엄마는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변기가 있고 그 옆에 욕조가 있었는데 네 살인 나는 키가 작아서 욕조가 그렇게 높아 보였다. 엄마는 내 머리채를 잡고 처음에는 변기에 내 머리를 박았다. 나는 “엄마, 엄마, 잘못했어.” 하면서 엄청 울었다. 그래도 화가 안 풀린 엄마는 나를 물이 가득 차 있는 욕조에 넣고선 숨을 못 쉴 정도로 내 머리를 빠뜨렸다. 그러고는 내가 죽을만하면 꺼내고 죽을만하면 꺼내길 반복을 했는데 그때 옆집 아줌마가 우리 집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그 아줌마 때문에 살았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일곱 살인 오빠한테 말했다. 바다에서 돌아온 아빠에게도 내 멍든 몸을 보여주었으나 안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날 때리는 걸 아빠가 봤다. 두 번째 엄마가 나갔다.
세 번째 새엄마가 왔다. 두 번째 새엄마가 나간 지 한 달 만에 들어온 그 엄마는 젊었으나 나이는 잘 모르겠다. 통통하고 순하고 착해 보였다. 그래서 괜찮겠지 했는데 더 심했다. 밥 맛있게 안 먹는다 때리고, 잠 안 잔다 때리고, 오빠랑 시끄럽게 얘기한다고 때렸다. 처음에는 손으로 때리더니 나중에는 대나무 긴 걸로 몸 안에만 때렸다. 더 치밀한 것은 아빠랑 목욕탕에 가는 오빠는 안 때리고 그 몫까지 날 때렸다.
신진도라는 섬에서 살았을 때다. 난 그때 다섯 살이었다. 집에는 옥상이 있었는데 가장자리가 낮은 시멘트 담이 빙 둘러있고 동그란 구멍이 담 사이사이에 뚫어져 있었다. 그날 엄마는 날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서 밧줄로 내 목을 조이더니 옥상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하늘은 빨갛게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섭고 질려서 살려달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위 눌릴 때처럼, 진짜 아무 말도 안 나오고 숨도 못 쉬는 그런 상태였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새엄마는 웃으면서 그러는 거였다. 그날 했던 그 여자의 말을 지금 다 기억할 수 없으나 행동,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동그란 담 구멍 안으로 내 머리를 넣고 한쪽 팔로는 목을 누른 다음 웃으면서
“엄마는 처음부터 니가 맘에 안 들었어. 이번 기회에 널 죽일 거야.”
아마 다섯 살 아이가 옥상에서 놀다 호기심에 구멍에 들어갔다가 그만 옥상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위장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걸 아파트 경비원이 본 것이다. 옥상 위에 널어놓은 빨래를 거두러 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세 번째 새엄마는 아동학대로 현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요즘 뜨고 있는 아동학대? 옛날부터 있었다. 내가 죽지 않고 옥상에서 내려올 때, 하늘은 깜깜해져 있었다.
세 번째 엄마가 올 때 난 너무 정신이 없었다. 누구한테 ‘엄마’라고 진짜 불러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부르는 사람마다 다 ‘엄마’이다보니 세상 여자는 다 ‘엄마’라 부르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난 궁금해서 진도에 사는 친할머니한테 전화로 물었다.
“할머니, 난 왜 엄마가 세 명이나 있어? 내 친구들은 엄마가 한 명뿐이 없잖아.” 그때 할머니가 엉엉 울었다. 그 옆에 있던 아빠도 울고 고모도 울었단다. 난 고모한테도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영화 <장화홍련> 중에서
네 번째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랑 이혼했다. 결국 오빠는 절에 보내지고 나는 6학년 때까지 진도 할머니한테 가서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왔으나 언제나 아무도 없는 집. 나는 혼자 밥을 먹고 툇마루에 우두커니 한참을 걸터앉았다. 문득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새엄마들이 날 죽이려고 했던 일도 생각나고…….
‘넌 살아있으면 안 돼. 죽어야 해.’
새엄마들한테 이런 말만 듣고 살았던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것 같았다. 불행한 아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
‘나는 왜 태어났을까.’
순간 너무 죽고 싶었다. 진도 시골 할머니 집 창고에는 농약이 있었는데 그걸 먹으면 죽는 줄 알고 있었다. ‘그래, 죽어야겠다.’ 정말 죽고 싶어서 창고에 있는 제초제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병뚜껑을 열고 마시려는데 확,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나도 모르게 병을 던져버리고 화장실에 가서 다 토했다.
밭일을 끝낸 할머니가 돌아와 제초제가 뿌려진 방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엉엉 울면서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나 진짜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내가 태어가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새엄마들 기억이 자꾸 떠올라. 죽고 싶어.”
할머니는 미안하다. 미안하다.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나와 할머니랑은 한참을 껴안고 울었다.
진도 할머니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전교생은 100여 명 정도였고 우리 반은 25명이 한 반이었다. 반에서 나만 할머니랑 살았다. 엄마와 사는 아이들은 돈이 필요하면 엄마한테 달라고 하는데 난 할머니에게 그러질 못했다. 농사짓는 할머니한테 미안해서 못했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물이 먹고 싶어 일어났는데 장롱 위에 돈이 보였다. 나는 그 돈을 내 책가방 속에 넣었다. 그때는 그게 도둑질인줄 몰랐다. 다음날이 되어도 할머니가 모르는 거였다. 괜찮네? 하면서 그 다음부터 계속했다. 처음에는 장롱 위에 것. 할머니 주머니, 찻잔 속에 담아놓은 백 원짜리……. 그러다가 삼천 원 정도 훔친 날 딱, 걸렸다. 할머니가 나를 좋게 추궁했다.
“찻잔 속에 거 네가 가져갔냐?”
“네. 가져갔어요.”
“왜 가져가?”
“뭐 먹고 싶은데……. 할머니한테 말하면 안 줄까봐서…….”
“그건, 나쁜 짓이다. 다음부터는 할머니가 줄 테니 그러지 말아라.”
그런데 나는 이제 할머니 돈은 안 훔치고 친구들 것을 하기 시작했다. 또 나를 미워하는 수학선생님 지갑도 가져갔다. 그렇게 계속 하다가 6학년 때는 잠잠했다. 할머니랑 잘 통하고 얘기도 잘 했던 기간이었다. 편안하면 안 했다. 그때 나랑 같이 훔치던 친구도 불안하면 한다고 했다.
아빠가 다섯 번째 새엄마를 데리고 올 때 나는 ‘아, 또야.’ 하는 짜증과 포기의 심정이었다. 아빠는 그 엄마랑 같이 살겠다 했다. 나는 아 그러냐고. 그럼 살아라. 나는 아빠랑은 살고 싶지만 왜 내가 그 엄마랑 살아야 해? 하면서 거부했다. 아빠랑 여러 말이 오갔다.
“엄마라고는 부르지 않아도 돼.”
“아니야. 난 할머니랑 살다 대학 다닐 때 그때 아빠랑 살 게. 그때까지는 엄마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이 엄마는 달라.”
“아빠가 어떻게 알아? 옛날 엄마가 나 때리고 죽이려고 한 거 알아?”
이렇게 거절했으나 할머니가 혼자 나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또 내가 조용히 살지도 못하고 도둑질까지 하니까. 그래서 난 아빠에게 알겠다. 곧 중학교 올라가면 그때 아줌마랑 살겠다 했다.
다섯 번째 엄마랑 살면서도 나는 또 맞을까봐, 또 죽일까봐 또 버림받을까봐 불안했다. 엄마는 진심으로 나한테 잘해주었으나 난 못 믿었다. ‘아, 또 저러다가 아빠가 없으면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이런 마음이 들면서 잘해줘도 가식처럼 느껴졌다. 잠잠했던 도벽이 또 다시 나왔다. 엄마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훔쳤다.
엄마는 거짓말을 아주 싫어했다. 나에게 훔치면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을 해 놓고도 맞을까봐 안 그랬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돈이 필요해도
“엄마, 내가 이거 필요하니까 얼마 주세요.”
하고 말을 못했다. 괜히 눈치가 보여서……. 그날도 준비물을 사야하는데
“엄마, 준비물 사야 해.”
그 말을 못하고 엄마 지갑에서 돈을 뺏다. 엄마는 달라고 하면 준다고 했는데……. 그러나 난 이 엄마에게 뭔가 잘 보여야한다는 그런 게 있었다. 내가 돈을 달라고 하면 엄마가 쟤는 왜 저럴까? 하고 생각할까봐 싫었다. 나 혼자 엄마를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니까 말하지 말자. 말하지 말자. 하고 생각을 굴리다 훔치는 것이다.
“희애야, 엄마 지갑에서 돈 꺼내갔니?”
그때 내가 정직하게 그랬다고 말하면 금방 끝나는 일인데
“아니요. 안 꺼내갔어요.”
하고 딱 잡아뗐다. 처음 몇 번은 내가 훔치는 걸 알아도 엄마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계속하니까 엄마가 지쳐갔다. 엄마는 최선을 다하는데 나는 도둑질을 계속 하고…….
나는 중2때까지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항하지 않은 채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다 중3 때 감정이 터졌다. 엄마한테 말대답을 하고 있는대로 성질을 냈다. 새엄마가 뭘 챙겨주려 해도 괜히 반항하고 삐딱하게 굴었다. ‘그래봤자 새엄마’야 하면서 모진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아빠한테 새엄마랑 빨리 헤어져라 하는 시위였다. 그러다가도 다시 엄마한테 잘 해야겠다 마음먹고 일부러 “엄마, 엄마.” 했으나 내 마음은 늘 뭔가에 쫓기듯 불안했다. 결국 나는 집을 나오고 말았다.
엄마, 아빠랑 사는 너에게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참 그리고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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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게 하소서!
남민영 수녀
엄마는
세상 폭풍우 속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집이고
엄마는
절망에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의 손이고
엄마는
내 고통을 자신의 눈물로 씻어 나를 다시 웃게 하는 사랑의 마법사다
주님,
엄마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도록 저희에게 힘을 주십시오.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희생과 사랑이 필요하지만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감탄과 환희를 선물 받는
엄마의 자리를 지킬 힘을 주소서.
집이 되고,
기적의 손이 되고,
사랑의 마법사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 ‘엄마’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