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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분노와 냉소적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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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카인의 분노와 냉소적 항변


‘형제살인 이야기’는 우리 속에 두 모습이 있음을 암시한다. 광화문 광장과 우리 사회가 양 진영의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분노는 가정, 사회, 민족, 문명을 파괴로 이끌 수 있다. 대통령은 다음주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한다. 세계 정상들 앞에서 분노를 해소시키는 정치가로서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의 ‘존엄’을 지켜주기를 요청한다.


카인과아벨.jpg

*카인과 아벨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이 대화는 그리스도교 경전의 첫번째 책 <창세기> 제4장에 나오는 야훼 하느님과 카인의 유명한 질의응답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전해 내려오던 이 민담(民譚)을 성경학자들은 최초의 ‘형제살인 이야기’라고 부른다. 민담, 신화 등 그런 문학 형식은 삶의 모순과 역설, 그리고 생명의 심층 차원을 열어 보여주려는 것이므로 상징성을 지닌다.


설화나 신화는 개인이 짓는 창작물이 아니고 민중의 집단적 탯집 속에서 탄생한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카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카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기른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 삼아 제사드렸다”가 설화의 탯줄 흔적인 셈이다. 먼 옛날부터 입을 통해 전해오던 ‘형제살인’ 민담을 문자로 고정시켜 경전의 일부로 편집했던 이스라엘 사제들의 시대는 기원전 600년 전후다. 그 시대는 이집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신바벨론) 등 고대 제국들이 중동지역 패권을 두고 서로 다투던 때였다.


강자 카인이 약자 아벨을 살해하는 이야기를 통하여, 약소국 이스라엘을 침탈하여 인간 살육을 자행한 근동 고대제국들의 무력적 횡포와 인간의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파괴적 공격성을 비판하고 있다. 양의 피를 제물로 쓰는 유목민의 종교의례, 제주(祭主) 아벨이 죽임당하는 희생제,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죽음, 그 상징적 의미들을 융합시키면서 기원후 50년께 새로운 관점이 출현했다. 십자가 사건이 정치와 종교의 비극적 스캔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죄성을 정화속량(淨化贖良)하고, 모든 형태의 절대권력을 비신격화시키는 ‘근원적 인간해방 사건’이라고 예수 제자 공동체는 확신했다.


낡은 문명이 몰락할 때나 국가사회가 병든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하면, 사회 중심부 집단이 독점적 힘을 가지고 주변부 집단한테 불공정하거나 불의한 대우를 가하게 된다. 낡은 계급투쟁론이 아니더라도 소외되는 집단이나 개인은 억울하다는 분노감정을 축적해가는 것이고, 어떤 계기를 만나면 폭발하여 ‘형제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비극적 형제살인 사건이 왜 발생했던가를 경전의 기록에서 보면, 공정성 결여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주 하느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 차별당한 카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불공정한 차별대우는 인간 소외와 인격장애를 낳고, 그것은 분노와 생명 살해의 씨앗을 잉태한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불공정성의 원인제공자는 종교적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큰 힘들’ 곧 패권국가들의 야망, 타락한 정치권력, 기득권자들의 집단이기심, 그리고 사회 구조악인 것이다. 카인의 형제살인이 정당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해가 가고 현대판 카인들을 양산하는 보이지 않은 큰 힘들한테도 책임있다는 말이다. 카인은 도덕적 죄의식은커녕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며, 인간성과 도덕률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인면수심의 괴물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을 행사하는 권력집단들이 있다. 그들은 옛날 카인처럼 “우리가 사회의 말단 구석에서 발생한 희생자들까지 지키고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속으로는 항변한다. 지난 18개월 동안 슬프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국가정보원과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세월호 침몰과 특별법 제정 난항, 그리고 군 병영내 구타살인 사건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 모든 사건 발생의 근본원인에 정의롭지 못한 ‘불공정성’이 있고, 공통점으로는 진실을 감추고 축소하려는 ‘은폐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


힘 가진 자들의 불공정성, 불법행위에 대한 은폐심리, 선악 이분법 진영논리, 그 3가지가 우리 사회의 전진과 인간화를 가로막고 있는 핵심 걸림돌이다. 민생문제 해결하자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마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한국 경제와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책임자들이나 되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는 형국이다. 윤 일병 구타살인 사건은 병영 막사에서 주먹과 군홧발로 일어났었다. 그런데 ‘피로감 담론’을 퍼뜨리는 수구언론과 권력집단은 나치가 유대인들 가슴에 ‘다윗별’을 붙여 사회로부터 왕따시켜버린 것처럼, 여론으로 위장한 사회 막사 안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말과 글로써 구타하고 소외시키는 모양새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진 후에라야 비로소 불의를 잊지 않되 용서, 치유, 평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형제살인 이야기’는 카인과 아벨이 같은 어머니 모태에서 탄생한 형제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우리 속에 두 모습이 있음을 암시한다. 선악 이원론은 적군과 아군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강점이 있지만, 자기가 속한 집단은 선하고 경쟁관계나 적대관계의 집단은 악하다는 도덕적 오만과 자기 위선에 쉽게 빠진다. 일주일 전, 한국의 사법 재판부는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국정원의 활동이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행”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선개입 의혹은 무죄”라는 판결을 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동일한 재판부 판결을 놓고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들과 정치평론가들은 상충되는 논조를 편다. 어느 솔직한 법학교수는 “대선 결과의 공정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라고 돌직구 발언을 했다. 대통령직에 관련된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여 재판부가 ‘정치판결’을 했다는 말이다. 방송 대담자들은 최고 지성 논객들이요, 신문은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사회의 목탁이라는데, 정반대 논설을 읽고 듣는 국민 심정은 착잡하다. 그러나 정치적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은 민심은, 법원의 ‘정치판결’을 접하고, 카인의 형제살해를 방관한 이 나라 백성의 업보라고 뒤늦게 자책한다.


중국인들이 <후한서>와 <산해경> 등 그들의 고대 역사책에서 우리 민족 심성을 평가하기를 “용감하지만 착한 품성을 지녔고, 즐겨 양보하고 다투지 않는다”(强勇而謹厚, 好讓不爭)고 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본래 모습이다. 삶에 여유로움이 없고 ‘피로사회’가 된 원인은 해방 후 70년 동안 강요된 ‘평화의 부재’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빌미로 하여 반민주적 권위통치나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의 정치관여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분노감정은 불가에서 ‘탐욕, 분노, 어리석음’ 삼독(三毒)의 하나로 여길 만큼 인간성을 황폐화한다. 광화문 광장과 우리 사회가 양 진영의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분노는 가정, 사회, 민족, 문명을 파괴로 이끌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성실함 아니면 아무것도 되는 일 없다”(不誠無物)고 했다. 성실함의 첫걸음은 약속을 지키는 일이요 둘째 걸음은 진실 앞의 용기이다. 세월호 정국도 대통령이 유가족과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면 금방 풀린다. 진실 앞에 용기 있는 법조인이라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궤변 같은 법논리를 펴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약속을 안 지키고, 법조인이 진실의 용기를 잃고, 여의도가 정치력을 포기한다면, 국민의 국가신뢰는 무너지고 분노가 우리 모두를 삼킬지 모른다. 아시아 경기대회가 인천에서 열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주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신뢰받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세계 정상들 앞에서 분노를 해소시키는 정치가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자 국민의 ‘존엄’을 지켜주기를 요청한다.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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