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사제단 40돌 행사 준비위원장 김인국 신부
“이 시대의 노란 리본 평생 달고 살 수밖에요”
‘교회의 사명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것. 빈자 약자들을 위해 교회 밖으로 나가라. 교회는 상처받은 약자들을 돕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삶에서 실천하는 종교인들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을 빼고 말할 수 있을까.
편한 길을 두고 굳이 고난을 자초하며 약자들 곁을 지켜온 사제단이 창립 40돌을 맞았다. 사제단은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40돌 감사 미사를 올리고, 오후 1시엔 같은 장소에서 ‘사제단 40년 평가와 전망’ 심포지엄을 연다. 명동성당은 1976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철폐를 요구하며 김대중·문익환·윤보선·함석헌 등이 ‘3·1 구국선언’을 발표한 곳이자,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을 폭로해 6월 항쟁의 불을 지핀 민주화의 성지다.
성서에서 40년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애굽(이집트)의 노예상태에서 도망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보낸 세월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가나안 땅으로 향하기보다는 거친 광야로 나가고 있다. 왜일까. 40돌 행사 준비위원장인 김인국 신부(충북 옥천성당 주임·사진)에게 그 이유를 들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저항하며 탄생
그 딸이 40년 민주화 여정 되돌려
사제단도 다시 그 자세로 가야 돼
22일 ‘40년 평가·전망’ 심포지엄
‘정치·종북 사제’로 매도 당하지만
빈자·약자 돕는 것이 교회의 사명
침묵은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것
교회쇄신은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사제단이 탄생했다.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40년 동안 국민들이 피땀으로 연 민주화 여정을 참혹한 상태로 역주행해버렸다. 사회 전반이 유신독재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사제단도 다시 그때의 자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익과 보수신문들은 사제들의 현실참여는 1970~80년대엔 저항하는 게 정당성이 있었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은 정당성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사회 갈등만 부추기느냐”며 “사제단이 역할이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김 신부는 당시에도 독재자를 옹호하고 민주화 인사들을 음해하던 그들의 공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구나 “교회 밖의 일에 그렇게 신경 쓰는 게 사제의 할 일이냐”는 논박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는가. ‘교회 밖으로 나가 빈자와 약자를 돕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는 초기 100년간은 박해시대 순교로 인해 산으로 피해 도망다니며 기진맥진해 미처 교회 밖을 돌볼 수 없었다. 그 이후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조선교구를 이끈 뮈텔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두 개의 모델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고 있다. 뮈텔 주교는 한민족을 등진 채 한국 교회를 지키는 데만 주력했다. 반면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화 여정에 동참하고 인권 피해자들을 껴안으며 세상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교황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할 것인지는 명확하다. 사제들은 교회 자신만을 위해 파견된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40살 이후에도 사회 참여를 중단하거나 수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김 신부의 주장이다. 오히려 사제에서 평신도로, 사회적 이슈에서 세상 전반으로 ‘참여’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방한한 교황께서 평신도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선사업도 좋지만, 인간 성장에 기여하라’는 주문을 했다. 교황은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했듯이, 자본에 의해 정리해고를 당하고 폐기물로 취급되는 인간들이 인간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을 요청한 것이다.”
사제단은 세상 밖으로 나올수록 ‘갈등과 분열의 주범’으로 공격받을 게 뻔하다. 최근엔 우익들과 연계된 교회 내 단체들까지 등장해 사제단을 ‘정치 사제와 종북 사제’로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교회 내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분열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주교들이 그런 분열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건 교회를 기둥부터 썩게 만드는 것이다. 눈치를 보는 대상이 누구냐. 약자들은 아니다. 결국 기득권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약자들은 이의제기도 하지않는다. 침묵은 결국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 빈자와 약자를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교회가 복음의 기둥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눈치를 살피기보다는 빈자와 약자를 돕다가 시끄러워질수록 오히려 복음다운 것이다. 그게 교회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때문에 ‘교회 쇄신’은 더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라는 게 김 신부의 생각이다. 교황의 방한 성과를 일회성으로 덮어버리지 않고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사목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도 교회 상층부부터 쇄신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당 예산의 10%는 무조건 사회복지기금으로 쓰고 그중 30%는 정의평화기금으로 쓰는 인천교구처럼 사제들이 예산 사용하는 것부터 쇄신하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쇄신은 자기다움의 회복이다. ‘보잘것없는 사람’ 보기를 ‘주님’ 보듯이 하는 특유의 시력을 되찾는 것이다. 교회가 모든 이를 비춰주고 살려주고 키워주는 태양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비춰야 할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김 신부는 “그래서 사제단은 이 시대의 노란 리본을 평생 달고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순교당한 복자 124위처럼 박해받고 고난당하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복음의 기쁨’이기에, ‘40돌’ 이후에도 고난의 십자가를 계속 지고 가겠다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