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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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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대한 스님과 불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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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날, 내가 부끄러운 이유

법인 스님/대흥사 일지암



얼마 전 청암사 승가대학에 올릴 글을 평소 교정을 봐주는 불자님께 보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교정 글과 함께 맑고 향기로운 안부를 보내던 불자님이 이번에는 몹시 아프고 엄중한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글을 받고 나니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슬픕니다. 하여, 참회와 경책의 마음을 담아 제 글과 불자님의 글을 올립니다. 10월 말 즈음 <청암지>에 실릴 글을 아래에서는 줄여서 먼저 싣습니다.


1. 일지암 법인의 글
풀벌레 울음소리가 산중 암자의 적막을 깨웁니다. 무심하나 유정한 마음으로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 읽습니다. 


달밤.jpg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가을 밤 산중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읽고 나니 한없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출가수행자로 충분하게 올곧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기에 부끄럽고, 세간의 이웃들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에 죄스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에 회한과 슬픔, 자책이 내 몸을 짓누릅니다. 소년 시절 초발심의 서원을 많이 잊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불교계 언론에서 대학생 불자들의 불교계에 대한 인식과 전망에 대한 기사를 읽고 저는 큰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청년들은 부처님 교리의 수승함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들의 부정부패는 너무도 부끄럽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문조사에서 절반은 불교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출가수행자를 바라보는 그들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청년불자들의 생각은 모든 불자들의 생각이고 국민대중의 생각과도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현주소는 어둡고 답답합니다. 처음 불교에 입문했을 때 설렘과 환희심으로 충만했을 청년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불교계의 안일과 부패에 젖은 맨얼굴과 속내가 조금씩 보일 때 그들이 느꼈을 의혹과 실망을 생각합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출가수행자의 추문이 회자되고 사회에 대한 불교적 역할이 보이지 않을 때 여지없이 무너졌을 청년불자의 자긍심과 참담함을 생각합니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만든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 모든 출가수행자들입니다. 그 '모든'에서 나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니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습니다. 참으로 청년불자들에게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자식에게 불교 신행을 권한 부모님들에게도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대학생 불자에 대한 설문조사 기사에 이어 한 분의 불자님이 떠오릅니다. 지금부터 7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사부대중이 모여 5일에 걸쳐 금강경을 해석하면서 불교의 미래를 모색하는 '야단법석'을 마련하였습니다. 많은 신도 대중이 호응하였고 환희하였던 토론 법석이었습니다. 회향 전날 밤 대중이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느 보살님의 발언은 그곳에 모인 출가대중들을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국립의료원에서 19년째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종교인들이 불자보다도 월등하게 많이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부처님법이 좋아서 불자임을 밝히고 나름대로 보살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정말 많이 힘들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불교계의 추문이 언론에 오르면 불자인 저는 병원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스님들! 제발 제가 불자로서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보살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불자라는 이유만으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던 그 보살님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보살님의 하소연과 얼굴은 죽비가 되어 저를 시시로 경책하고 있습니다.


거듭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출가수행자가 삶의 길을 이끄는 온전한 스승이 되지 못하고, 힘들고 지친 이웃에게 위안과 힘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오늘날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넘어 절망을 느끼는 우리들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끄러운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수경을 독송하면서 정삼업진언과 십악참회를 입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잊은 참회진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런지요.


늘 참괴심(慙愧心)을 잊지 않는 것이 수행의 주요 덕목입니다. 우리는 발심과 원력으로 살아가는 출가장부입니다. 발심과 원력을 지키고 꽃피우는 밑거름은 지금 여기의 나를 살피는 일입니다. 참다운 살핌은 본래 자리에서 벗어나 있는 부끄러운 나를 깨닫는 일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며 세속의 불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우리 스님, 자랑스러운 우리 불교가 되는 길을 생각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IMG_0175.JPG


2. 어느 불자님의 글
출근하여 찻물 끓는 소리 들으면서 창문을 여는데 시원한 바람이 한아름 몰려들어 방안을 쓸어줍니다.
가을이구나….


스님 글 읽으면서 불자인 제가 마음의 위로를 얻었습니다. 제가 가족등을 올리고 기도할 때 찾는 절에서도 참담한 일이 있었거든요. 새로 부임한 주지스님이 돈을 몇 억 들고 도망을 갔습니다. 저는 이후 딱 그 절 출입을 끊고 지금은 비구니 스님이 계신 소박한 절을 다니고 있습니다. 어쩐지 자꾸 길을 닦고 불사를 번지르르하게 하고 절에 돈냄새를 풀풀 풍기더니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길에서 번질거리는 얼굴을 하고 법복을 고급스럽게 치장하고 좋은 차를 타고 여신도를  대동하고 다니는 스님을 보게 되면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큰 길을 선택해 놓고 정작 하는 행동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보잘것 없는 길을 가는 꼴이니까요. 속가의 가치를 쫓는 우리들도 검박하고 절제되고 맑음을 추구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목사와 그 가족들의 사치에 대해 부정부패에 대해 걱정합니다. 십일조를 내는 순수한 마음에 항상 상처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가 되었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답니다. 열심히 수행자의 길을 잘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더러운 구정물이 튀지 않아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스님 글 읽고 제가 받은 상처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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