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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사람들이 원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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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경기도 화성 봉담 더불어숲동산교회


‘마을 사람들이 붙드는 교회’ 목표로 

작은교회, 큰 마당 만든 이도영 목사 


세든 빌딩 10층 입구 들어서면 

카페이자 도서관이고 공부방 


예배당도 금세 ‘흔적’ 사라지고 

공연장과 강연장으로 변신


“교회는 목사 것도, 성도 것도 아닌 

모두가 쓸 수 있는 공동재”


‘페어라이프’ 이끄는 부인 임영신씨 

삶 속의 ‘공정무역’ 전파 전도사 


천연세제, 밑반찬 등 함께 만들고 

헌책 모아 팔아 평화 기금으로


q1.jpg» 더불어숲동산교회 이도영 목사와 부인 임영신씨. 남편은 목회에 더 집중하고, 부인 임씨는 엔지오 출신답게 공정무역교실 등 페어라이프센터를 가꾸는데 주력해 사실상 공동사역을 하고 있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만약 자기 동네에 있던 교회가 사라지면 마을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소음과 교통체증이 사라졌다고 시원해할까 아니면 아쉬워할까. 더불어숲동산교회는 8년 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동화길 85번지 이원타워빌딩 건물 한쪽에 개척하면서 ‘마을사람들이 붙드는 교회’를 목표로 삼았다. 그건 마을사람들을 모두 선교해 자기 교회에 나오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도영(49) 목사는 “교회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목사가 개척했다고 목사 것도, 성도들이 헌금해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만의 것도 아니므로 모두가 쓸 수 있는 공공재로 활용해 마을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회에는 이제 어른·아이 250여명이 출석한다. 처음 15명으로 출발한 것에 비하면 장족의 성장이지만 여전히 단독 건물 없이 건물 10층에 세들어 있는 작은 교회다. ‘아름다운커피’ 협약 맺은 1호점 지난 8일 이 건물 10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통상적인 ‘교회’가 아니었다. 입구는 카페인데, 2층 천장까지 책이 빼곡히 들어찬 도서관이다. 2층 다락방들을 비롯한 곳곳의 세미나실들을 봐서는 공부방이다. 이곳이 바로 마을사랑방 ‘페어라이프센터’다. 센터와 연결된 예배당도 마찬가지다. 단 5분이면 십자가가 가려지고 강대상이 치워져 교회라는 느낌 없이 마을사람들이 연극을 하거나 강연을 들을 수 있게 변한다.


 애초 이 건물 3층에서 좁게 시작한 교회는 3년 전 10층으로 확장 이전하며 마을사랑방으로 재탄생했다.  이 센터의 의미는 사람들이 알 턱 없는 보통의 건물 10층으로 마을사람들을 끌어들였다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하느냐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이란 의미를 담은 ‘페어라이프’란 이름이 ‘지향점’을 말해준다. 이 카페에서는 공정무역 커피와 먹거리를 판다. 6개월 과정의 공정무역 교실에서는 한 기당 20명 안팎씩 3기를 양성했고 그들이 벌써 공정무역 강사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제3세계 커피노동자 등을 착취하고 이윤 대부분이 중개무역상과 다국적기업에 돌아가는 부당한 무역에 맞서는 공정무역 교실은 단지 커피만 생산자와 직접 계약해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소비 등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교실을 시작한 것은 이 목사의 부인 임영신(47)씨다. 임씨는 녹색연합과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초기 간사로 활동하고,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인간방패로 활동했던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카페는 아름다운재단에서 출발한 공정무역커피점 ‘아름다운커피’와 협약을 맺은 1호점이다. 이곳에서 공정무역 교실과 ‘가치삶마을학교’도 함께 열어 화성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와 세월호 유가족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어 화성시와 함께 인근 협성대에서 공정무역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아이들 공동으로 세월호 노래 만들어 이를 계기로 더불어숲동산교회와 교제하는 화성시내 4개 교회가 공정무역 운동에 동참하는 공정무역 교회로 거듭났다. 화성시를 비롯한 경기도 5개 도시도 ‘공정무역 도시’를 선포하기로 했다. 조례를 제정해 도시 차원의 공정무역 지원을 본격화하는 경기도의 공무원들은 이날 이곳에서 임씨에게서 공정무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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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jpg» 예배당은 5분내 십자가가 가려지고 강대상이 치워져 교회란 느낌 없는 강연장이나 공연장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공정무역’은 이곳에서 일상적 삶으로 파급된다. 마을사람들은 이곳에서 천연세제나 머그컵 등을 직접 만들 뿐 아니라 도시에서 버려지는 현수막을 수거해 쇼핑백을 만든다. 또 헌책을 수거해 팔아 수익금을 분쟁지역에 평화도서관 건립기금으로 보내고, 크리스마스 직전엔 벼룩시장을 열어 수익금으로 애육원 아이들이 희망하는 옷과 신발 등을 사서 그곳 트리 아래 놓아두는 깜짝 이벤트도 연다.  마을사람들은 재료비만 식구 수대로 내고 물김치나 밑반찬을 함께 만들어 가져가기도 한다. 또 브런치 카페를 해보고 싶은 마을주민은 가게를 얻기 전에 이곳에서 브런치를 만들어 팔아 반응을 보기도 한다. 


 인근 과천이나 수원에 비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아이들도 이 센터에서 날개를 단다. ‘학교 밖 학교’인 ‘화성으로 가는 스쿨버스’에 참여한 아이들은 목장과 도예원 등으로 ‘숨은 고수’들을 찾아 인생강의를 듣고, 실습도 하며 새로운 ‘화성지도’를 만들고, 자기들의 ‘희망지도’를 그린다. 또 ‘토토토 예술학교’에선 글쓰기, 노래, 춤추기를 배운다. 20여명의 아이들 중 3분의 2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지역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1년간 이 과정을 마치고 함께 <네모를 찾아서>란 뮤지컬을 만들었다. 또 함께 ‘공정여행’에 나서 제주 강정마을도 다녀왔다. 이 아이들이 청계천에서 열린 세월호 국민대회 때 무대에 올라 부른 ‘기억할게 0416’도 자기들이 공동으로 작사·작곡한 것이다. 이 곡은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노란리본극단의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의 엔딩곡이 됐다. 이 아이들은 오는 12월10일 노란리본극단과 함께 예배당에서 그 연극을 공연한다. 

 이 교회는 예수교장로회합동교단 소속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 중 하나다. 더구나 봉담 지역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교인이 많다. 그래서 이 목사는 지인들한테서 이런 목회를 하려면 ‘개념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서울에서 할 것이지 왜 봉담 같은 곳에서 이러고 있느냐는 핀잔도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목사는 “이런 지역이기에 마을을 살리는 게 더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다. 이런 곳이기에 ‘서로 돕고 함께하는 마을’ 사랑방이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우리 수준에서 우리 속도대로 대안” 이 목사가 처음 세월호에 대해 설교했을 때 핵심 세 가정이 떠나겠다고 했다. 이 목사는 “우선 생존의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성도들로선 개인적 위로와 성령 치유에 갈급해 타인과 세상에까지 시선을 돌리기 어렵기에, 교회가 타인과 세상을 위해 있다는 존재 이유를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저도 눈물을 많이 쏟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목사는 “우리들 수준에서 우리의 속도로 대안을 만들어왔다”고 했다. 그 덕에 이곳은 이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될 ‘봉담사랑방’이 되어가고 있다.




조언은 많을수록 훈수는 적을수록

당신이 바로 한울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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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 한명이 바로 한울님입니다. 그런데 그 한울님을 함부로 죽이는 세상입니다. 자기 자식까지 죽이니 말입니다. 그건 단지 살인이 아니라 한울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이정희 교령(72)은 15일 서울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죽임에서 살림으로 전환’을 위해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한울임)’사상이 다시 절실해졌다”고 했다. 지난 4월 교령에 취임한 그는 “사람 대하기를 한울님 대하듯 해야하는 섬김과 모심의 정신은 천도교인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두 필요한 것”고 말했다. 종교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인간이라면 ‘인간 존중’을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최고의 자살율을 보일만큼 만연한 자살 풍조에 대해 “자살은 한울님을 죽이는 것이란 점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해월신사(천도교 2대 교주)께서는 ‘어린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라면서 폭력도 금하게했는데 아이를 죽이기까지 하니 어찌 된 일이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어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계와 인터넷, 로봇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때다.”


 따라서 천도교가 1926년 선구적으로 잡지 <신인간>을 발행할만큼 그 시대부터 새시대의 인간을 탐구해왔는데, 그 연구가 지금에 와서 더욱 더 진척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령은 “어린시절 전북 부안의 고향마을 60호 가운데 50호가 천도교인이었고, 어려운 이웃들과 상부상조하는 궁을계와 대동계에 다 속해있어서 천도교인이 아니면 농사를 짓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천도교인들이 그 이후 많이 떠났다”면서 “인내천사상을 중심으로 천도를 중흥하기 위한 비전들을 하나하나 실천해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해가겠다”고 밝혔다.


 인내천운동연합은 오는 24일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출범식을 연다.


피난중에도 노래와 웃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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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다른 세상에 대해 꿈을 꾸게 해준 것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편집된 그 6권의 ‘천일야화’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책 속의 삽화들은 무채색이었지만, 저는 온갖 환상적인 색깔을 입히며 미지의 세계로 떠나곤 했습니다. 독일까지 들고 온 남은 4권은 50년의 세월에 누래지고 너덜너덜 해졌지만, 모험과 지혜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제 기억 속에서 생생합니다. 정작 그 미지의 세계는 독일이라는 엉뚱한 곳으로 되었지만, 제게는 그 동화의 세계에서 온 아들이 하나 생겼답니다. 저를 MamaLee라고 부르는 시리아에서 온 모하메드입니다. (그러니 정말 꿈은 함부로 꾸면 안됩니다. 좀 다른 모양새로라도 진짜 이루어지거든요.)

 

 모하메드(26)는 2년여 전, 이미 군징집을 피해 17살에 혼자 터어키로 피난 보내진 남동생 압둘라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도 감옥을 두번이나 갔다왔지요. 다마스커스에서 레바논을 경유해 터어키에서 동생을 찾아, 그리이스-발칸국가들-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의 북쪽 함부르크에 당도하기까지 그는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피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 딸이 속해있던 청소년연극단의 두 연출가는 난민인 젊은이들과 독일의 젊은이들이 함께하는 연극을 구상해서 세 작품이나 무대에 올렸는데, 거기서 모하메드를 알게 되었지요. 그는, 다른 독일인 부모들에게와는 달리 제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마마라고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시리아에서도 한국에서 처럼 어른에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친구의 어머니도 어머니라 부른다네요. 유럽과는 아주 다른 문화인거죠. (시리아에도 한국의 드라마가 많이 소개되었대요.) 저는, 너의 엄마는 다마스커스에 살아계시고, 너를 얼마나 그리워하실텐데, 어떻게 내가 네 엄마라 불릴 수 있냐면서, 대신 mamaLee가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만족한 그 뿐만이 아니라 같이 연극을 하는 아프카니스탄 녀석들도 저를 mamaLee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시리아 아들을 둔 한국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직 망명이 인정되지 못한 불안한 상태에서, 더러는 캠프에서 살고, 더러는 시골 구석의 외진 공동숙소에서 독일정부에서 주는 아주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풍성한 먹거리와 음악과 웃음이 넘칩니다. 함부르크의 연출가의 집은 그동안 그들의 안식처이며 ‘아지트’가 되었는데, 그들은 거기서 빵을 굽고 음식을 만들어, 저희같은 독일의 친구들 뿐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친구들까지 초대합니다. 거기엔 우드라는 현악기와 탬버린 비슷하게 생긴 타악기, 그리고 기타를 갖고 나타나는 녀석들이 꼭 있어서, 악기에 맞춰 밤늦도록 노래를 하며 웃음으로 왁자지껄합니다. 물론 다 아랍의 노래들인데, 그들은 한국사람들 만큼이나 노래를 좋아하고 다들 참 구성지게 잘 부릅니다. 어떨 때는 황천길을 보내는 노래인 마냥 구슬프고, 어떨 때는 마치 영남 농악을 듣는 듯 신이 납니다.  

 

 어느 여름 밤, 그 연출가의 집 발코니에서 또 그렇게 떠들썩 노는데 - 신기하게도 이웃 독일 사람들이 한번도 시끄럽다고 경찰에 신고한 적이 없어요 - 멀리 놀이공원에서 폭죽이 터졌습니다. 순간 모두들 움찔하더니, 갑자기 한꺼번에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다마스커스에서도 폭탄 소리 속에서 노래했는데 그거랑 똑 같다는 거였어요. 그들은 웃었지만 저는 울었습니다. 아직도 폭탄이 터지는 속에 살고 있을 그들의 가족들, 그야말로 부모가 집팔고 땅팔아 피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돈을 난민을 상대로 하는 조직배들에게 다 떼이기도 하고, 밀입국 알선자들의 횡포로 망가진 고무보트로 바다를 건너며 부모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세지를 보내고, 환기창없는 트럭에 실려서도 질식하지 않고 살아남아 독일 땅을 밟게 된 이 ‘혼자’들이 ‘함께‘ 나누는 생명력 - 공포의 순간을 웃음으로 날려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아프고, 너무도 고마왔어요.

 

 모하메드와 저는 시리아와 한국의 많은 공통점 중에 노래와 웃음을 꼽았습니다. 화나는 얘길 하면서도 웃고, 슬픈 얘길하다가도 웃고, 의미심장한 토론을 하다가도 참 많이 웃는다는 거지요. 제게 심리치유를 하러 오던 한국인 내담자 한 분의 마음이 깊고 슬픈 잠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과 저는 마음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웃고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촛불집회의 얼굴들은 웃고 있었습니다. 많은 ‘혼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박장대소하는 촛불집회의 소식들은 지쳐가는 모하메드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었습니다. 시리아에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고요.


마귀 속에서 천사를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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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평화.jpg» 북아일랜드 해변에 있는 코리밀라에서 평화교육에 참가한 사람들


코리밀라 대표 코린 크레이그 인터뷰


코리밀라--.jpg» 코리밀라 대표 코린 크레이그


 서양 분쟁지역 평화교육자가 동양 분쟁지역 한국을 찾았다. 연 6만여명이 찾아 평화교육을 받는 북아일랜드 ‘코리밀라’의 대표 코린 크레이그(63)다. (사)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가 주최하는 평화교육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온  그를 15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2길7 창비서교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분쟁지역에서 평화는 쉽지않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따라서 ‘북한 핵을 둘러싼 남북한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분쟁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꼬이고 꼬여있는데다가 상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조성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지도자들로 인해 늘 적대감이 재생산되기에 이런 ‘네가티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평화의 관건이다”고 말했다.

 

 영국령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역은 9개 주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많은 3개 주를 떼어내고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이던 6개 주만 1922년 ‘북아일랜드’가 되면서 남·북 갈등을 빚어온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그곳에선 신(개신)·구(가톨릭)교 신자들이 서로 말도 섞지않고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 정보’만 들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코리밀라는 2차대전에 참전해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목회했던 레이 데이비라는 목사가 젊은이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며 1965년부터 평화운동을 펼치며 시작됐다. 크레이그는 데이비 목사와 달리 소수파인 가톨릭 배경에서 자랐다.

 

 코리밀라는 신·교간의 폭력 사태로 3천여 명이 숨진 70, 80년대엔 정치적인 봉합이 어려웠기에 우선 폭력으로 상처입은 이들을 위로하면서, 폭력을 좀 줄여보기 위한 평화교육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편견이 굳을대로 굳은 어른들보다 먼저 어린아이들부터 서로 만나 ‘상대를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1980년 코레이그는 ‘모험을 통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신·구교의 아이들이 함께 캠핑을 하면서 동일한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해가게 했지요. 또 그림이나 드라마, 인형극 등 예술활동을 함께 하면서 같이 상상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이것도 쉽지않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데,  교사들이 ‘열린 아이들 모습’을 보고 패닉에 빠져 더 이상의 소통을 용인하려들지않는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개신교쪽의 민주연합당과 가톨릭의 신페인당 양쪽 극단주의 정당이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극단주의가 여전히 득세하는 것은 시민들이 그들의 가치를 지지해서라기보다는, 네거티브에 물들어왔기에 상대 종교 쪽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반대표만 던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코리밀라는 매스컴에선 강경 발언만 쏟아내는 정치지도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도록 주선해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도록 힘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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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키로 하면서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기를 원하는 북아일랜드에 또 다른 갈등이 우려된다”고 했다. 유럽연합 등장 이후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하지않고도 관광이나 문화·체육 교류를 통해 통합을 진전시키고 럭비 단일팀까지 구성하기도 했는데, 브렉시트로 남북간 경계가 강화되고 분단이 고착화될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지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코리밀라를 중도이면서도 전진하는 진보라고 했다.

 

 그는 “남한도 자기들 이익을 챙기려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려움이 크겠지만, 미국에 끌려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어떻게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낮은 수준이라도 남북 교류 협력사업들을 만들어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화되고 발전된 남한보다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고, 체제 위기감이 강한 북한이 남보다 훨씬 두려움이 큰 상황이기에 어떻게 그 위기감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체제 개방 방식을 찾아내느냐가 평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수용하려들지않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아 변화하는 젊은 세대에 주목했다.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가톨릭국가인데도 평소엔 선거율이 낮던 젊은이들이 동성 간 결혼 허용 법안 투표엔 압도적으로 나서 통과시켰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젊은이들이 같은 일을 벌인 예에서 보듯 젊은이들은 기존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이미 고정된 것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미래를 보고 일한다”고 ‘희망을 열것’을 제안했다.


뒷간에서 황금알보다 귀한걸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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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누리가 홍천 터전에 살게 된 걸 감사하는 잔칫날, 모두 집에서 오줌을 한 통씩 받아 와 한데 모았다. 우리 각자 몸속에 담아두고 있던 것들이 그렇게 해서 하나가 되었다. 그 감격스러운 잔칫날, 좀 더 멋스러운 예식도 있을 텐데, 오줌이라니! 황당해하는 방문객들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재밌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똥오줌에 질겁할 것 같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삶’에 늘 앞서간다. 사람들에게 이 예식 얘기를 들려주면 의외로 많은 이들이 뜻깊고 멋있다고 한다. 똥오줌이 우리 삶에 들어오니 멋에 대한 관념도 달라진다.


 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농촌에 와서 처음 한 일은 뒷간을 만든 거였다. 뒷간엔 수세식 변기를 두지 않고, 똥은 똥대로, 오줌은 오줌대로 모은다. 똥은 왕겨와 톱밥과 재에 섞어 묵혔다가 거름으로 쓴다. 왕겨를 뿌려 똥을 담은 똥통이 차면 마지막 채운 이가 퇴비 모으는 곳으로 옮긴다. 수세식 변기에서 똥오줌을 다시 볼 일 없이 수세식으로 쏟아지는 물에 씻어 내려버리면 깨끗할 텐데, 이렇게 부삽으로 떠서 섞는 작업까지 해야 하니 지저분하고 번거롭게 여길 법하다. 하지만 수세식에서 사용되는 그 많은 물과 똥오줌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라도 습관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 학생들도 처음에는 뒷간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졌다. 오랫동안 고생하던 변비까지 고친 아이도 있다. 똥오줌은 여전히 다시 보기 부담스러운 놈이긴 하지만, 내 몸 오장육부 상태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똥오줌을 다시 만나 치울 때마다 뭘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된다. 뒷간에서 근심을 풀고, 스스로 건강진단도 하고, 명상과 성찰도 하니 참 거룩하고 재밌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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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는 분들 중에는 수세식 변기가 없고 뒷간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해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뒷간을 기대하고 오는 분도 많다. 방문자들이 밝은누리가 만들어가는 생태적 삶을 기억할 때 꼭 나오는 얘기가 있다. 토박이 씨앗, 흙집과 나무집, 마을 터, 그리고 단연 으뜸이 뒷간이다.


 “생태적 삶과 유기농사의 핵심은 똥오줌이에요. 우리나라 유기농업에서 이게 참 아쉬웠는데, 여기 와서 뒷간을 보니 너무 반가워요.” 농림부 장관과 대학 총장 하시며 우리나라 유기농업을 지키고 확산하는 일에 한평생 힘써 오신 김성훈 선생님이 삼일학림 여는 잔치에 오셨다가 하신 말이다.

 

우리는 밥상 부산물도 거름으로 쓴다. 서울 인수마을 밥상에서 나오는 부산물도 홍천으로 가지고 와 밭에 뿌린다. 이제 똥오줌, 밥상 부산물은 이곳에선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더럽다고 여기는 그것들이 하늘땅 무수한 미생물과 씨앗들과 만나 우리를 살리는 영양 좋은 밥상이 되는 것이다. 쓰레기를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삶과 문명은 지속 불가능하다. 뒷간에서 우리가 낳는 건 황금알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명을 살리는 밑거름이니 귀하고 귀하다.

불행은 상황을 저항하는데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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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으면 좋아요. 

젊을 때 마음공부를 배워서

청춘의 힘으로 수행정진 하리라. 


늙으면 좋아요. 

지식도 경험도 많고 

젊었을 때 없었던

노하우와 삶의 지혜로 

더 순조롭게 평화롭게 사리라. 


돈이 많으면 좋아요. 

가난한 사람을 돕고 

보시를 하고 공덕을 쌓으리라. 


돈이 없으면 좋아요. 

돈이 없으면 장애도 원수도 없어서 

소박한 삶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리리라. 


명성이 있으면 좋아요.

명성의 힘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남을 크게 도우리라. 


명성이 없으면 좋아요.

대중의 간섭없이 

익명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리라. 


불행은 상황 때문에 있는 것보다는 

상황을 저항에서 있는 것이다. 

행복은 상황 때문에 있는 것보다는

상황을 감사하게, 만족하게 누려서 있는 것이다. 


상황이 좋아도 안 좋아도 

어제밤의 꿈처럼 

지나가는 환영인 줄 알고 

늘 있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리라. 


뚱뚱하면 좋아요. 

뚱뚱한 스님은 복도 웃음도 많고

마음껏 피자를 누리리라.

인생노트를 적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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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음을 의식하는 당신에게

 

 나이 먹음은 지나간 나와 이별

   행복불감증은 리셋 능력 부재 탓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의 나

  싫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다

 

-손1.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9월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일까요? 꼭두새벽부터 스마트폰으로 감동받은 글이라며 달콤한 잠을 깨우는 분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20가지’ ‘50살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들’ 같은 글들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분들인 듯싶습니다. 나이와 관련된 얘기도 많이 듣습니다. 독자의 전자우편이 그렇습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의 매듭을 짓겠다고 했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보내고 말았습니다. 아쉬움이 무척 크네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늘 쫓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방법을 찾다가 가겠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사는 게 더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40대 후반의 남성입니다.”

 

 “여자 나이 마흔, 그 단어가 이렇게 숨 막히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기도 하고 전성기가 다가온다지만, 여자는 다릅니다. 친구들 앞에서 안 마시던 술도 홀짝거리고 주책없이 주절주절 떠들게 됩니다. 놓쳐버린 기회와 지나간 사람들이 너무나 그립고, 그러면 그럴수록 내게 없는 것을 애타게 찾아나서게 되는군요. 유명하다는 교양 강좌에 참석해보지만 그다음날이면 심드렁해집니다. 서른아홉 신드롬일까요?”

 

 

 이처럼 사람들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집착이 더 큰 듯합니다. ‘나도 한때는 잘나갔어!’라는, 스스로에 대한 심리적인 방어벽일까요? 10년 주기로 그 아쉬움의 파도는 큰 파장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스무살이 나의 전성기였어. 얼마나 피부도 탱탱하고 꿈은 화려했던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참으로 많았었다. 나는 왜 대학 졸업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을까?…”

 

 “서른, 진정한 전성기였어. 대학도 졸업하고 군대도 제대했으며 직장도 있고 결혼도 안 했으니, 의무는 없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때 아니었던가? 그런데 나는 사회초년병의 풋풋함을 누리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무척 아쉽다.”

 

 “마흔, 생각해보니 이때야말로 전성기 아니었던가? 직장에서나 집안에서 비중이 제법 커지고, 아직 체력적으로도 별문제가 없었으니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전에는 결혼하면 인생 종착역이라 믿었다. 왜 그것을 몰랐을까?” 

 

 이렇듯 40, 50, 60이란 나이테는 심한 정서적 몸살과 심리적인 몸부림을 동반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이별을 의미합니다. 이별은 누구나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는 것은 모두 견디기 힘듭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젊음을 잃고, 전성기에서 멀어져간다는 본능적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60의 나이가 되어서는 50을 그리워할 겁니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퇴직하던 날 익숙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다시 ‘세상에 던져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50대 초의 나이였습니다. 

 

 일정한 사회적 지위에 오르고 경험도 충분하면, 시간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느긋해질 줄 알았습니다. 차이와 낯섦에 관대해지고, 포용력이 늘고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름답게 나이 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알 수 없는 분노였습니다. 그 분노는 공정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특정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시간 앞에, 세상 앞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세상에 필요 없는 잉여적 존재라는 자의식입니다. 주변에서는 ‘당신은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 마!’라고 위로해주었지만, 그 위로마저 고맙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에 뭔지 모를 독가스가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노를 이기려면 몸과 정신에서 독소가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오랜 조직생활에서 오는 몸의 혹사, 피로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미지의 앞날에 대한 긴장으로 정신은 더욱 날카로워진 상태입니다. 이럴 때는 정신적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최고의 해독제는 수첩이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메모해두었던 수첩을 꼼꼼히 다시 읽어내려갔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이 물론 적지 않았지만, 희열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순간에는 제 인생에 각박한 점수를 주었고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시간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현재와 다가오는 시간에는 인색한 평점을 줍니다.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는 이유입니다.

 

 인생노트 쓰기를 권합니다. 형식이 어떻든 내 인생과 새롭게 만나고, 새롭게 사귈 필요가 있습니다. 쓰다 보면 어색한 자기 자신이 거기에 서 있을 겁니다. 새로운 사람만 사귀지 말고, 지나온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인생도 리셋이 됩니다. 마치 컴퓨터를 다시 세팅하듯,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행복불감증의 상당 부분은 리셋 능력이 없는 데서 옵니다. 지나온 나의 얼굴에서 미래의 내가 보입니다.

 

 봄을 선호한다고 해서 가을과 겨울을 기피할 수 없습니다. 그 계절만의 매력도 있습니다. 50, 60이라는 수치는 물론 반갑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지금의 제 나이가 그리 싫지는 않습니다. 더더욱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다리 없는 테리 폭스의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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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폭스는 2004년 캐나다 방송협회에서 
두 번째로 선정한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이다.
캐나다 곳곳에는 만 22년간 살다가 테리 폭스의 동상이 있다. 
카나다 2달러짜리 주화에도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농구를 좋아하던 테리 폭스는 대학 1학년 때, 
오른쪽 다리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악성골육종 판정을 받고 
무릎 위 15cm까지 다리를 잘라야 했다. 
16개월간의 항암치료와 재활훈련 후 의족이 차고 일어선 그는 
의미 있는 계획을 세운다. 
마라톤을 통해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목표액은 2,400만 캐나다 국민 1인당 1달러, 
총 2,400만 캐나다달러였다.
캐나다 동쪽 대서양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에서 출발하여 
매일 마라톤 완주거리를 달려 서쪽 끝 
빅토리아의 태평양에 닿겠다는 것이다. 
1980년 4월 12일 부모와 친구들이 극구 말렸지만
테리는 희망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가 퀘백에 도착했을 때, 미국 시애틀방송이 인터뷰를 했다. 
그 이후 방송마다 테리의 마라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때 테리는 말했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닙니다.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자신이 죽는다 해도 기금으로 
암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무리한 달리기 탓에 절단된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염증으로 고통이 가중되었다. 
결국 143일째 1980년 9월 1일 온타리오주 선더베이를 지나던 
테리는 쓰러지고 말았다.
기침으로 숨이 너무 가빠서였다. 
진단 결과 폐암이었다. 
그 후 마라톤은 중단되었지만 그간 캐리가 달린 거리는 
무려 5,373Km였다.
테리는 그로부터 9개월 뒤인 1981년 6월28일에 
22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달리기를 중단했을 때 170만 달러였던 모금액은 죽었을 때는 2,400만 달러를 넘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지금도 암으로 투병하는 이들의 
가슴을 흔든다.. 
"저는 몽상가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 마라톤이 암에 대한 어떠한 정확한 답이나 치료법을 가져다 줄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기적을 믿어요. 그래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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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1980년 9월 1일 143일간 5,375km를 달린 테리의 마라톤’은 끝났지만 그의 뜻을 잇는 세계인들의 희망의 마라톤은 출발했습니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향해 달린 테리 폭스는 희망을 가슴에 품은 이들 속에서 지금도 달리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사는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면 삶은 너무도 숭고하며 고귀한 일입니다.

내 맘같지않은 중년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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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비루한 중년의 현실에 일단 푹 젖어보세요

내 삶의 주인 되기 취업·퇴직을 반복하는 40대 워킹맘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반복되는 패턴 차분히 들여다봐야

이상화된 원칙에 사로잡힐 수도

복잡한 생각 접고 현실에 매진하길 



Q 40대 워킹맘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걸까요? 아이 낳고 키울 때는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서 어렵사리 취업을 했고, 취업한 후에는 또 아이들이 걱정되고 보고 싶고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 같아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 하는 일 자체가 워낙 어려운 전문 분야이기도 하고, 지금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기존 경력과 완전히 다른 일에 도전해보려고 시작한 일이어서 배우며 따라가기도 벅찬데, 회사에서는 다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솔직히 지금 제 업무는 제가 꼭 해보고 싶어서 도전한 분야는 아닙니다. 지난 회사 팀장의 전문 분야였는데 어찌나 저를 견제하고 정보를 차단하던지 화가 나서 그만두고 이직한 터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꿈을 좇아오다가 방향감각을 잃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입사와 퇴사를 계속 반복하면서, 아이를 돌봐주신 시어머니도 이번 직장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고 금세 그만두고, 그래왔습니다. 머릿속에 늘 ‘이렇게 살아야 한다’만 있었지 ‘어떻게 뭘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깊게 해보지 못했네요.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만족스럽고 자유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요? 



A 직업에 대한 의미나 확신을 찾지 못하셨군요. 당신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직업 환경이 급변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 등이 극에 달한 상태니까요.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멋진 말을 따라 살고 싶지만 가슴 뛰게 만드는 직업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고, 사실 가슴 뛰는 것 같은 거추장스럽고도 비효율적인 증상은 이미 학창 시절에 없애버렸습니다.


세상을 탐지하는 감성과 직관의 안테나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 지표는 오로지 타인의 성공,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성공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직업의 세계에서 길을 잃었다 해도 당신 탓만은 아닙니다.


다만 당신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직장에 마음 붙이기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 하셨는데, 어떤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하며, 퇴사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직장마다 입사와 퇴사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목록으로 정리해보면 당신만의 어떤 반복적인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직장에서는 팀장과의 심리적 경쟁과 견제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부러움이나 경쟁심 또는 질투 같은 감정을 자주 느끼시나요? 불건강한 감정이라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모든 감정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무엇보다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입사와 퇴사에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왜 그러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저런 직장을 수없이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이직을 꼭 한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직장 문화의 불합리나 경제적 문제도 있을 것이고, 그 외에 관계에서의 심리적 역동, 전문가가 되는 길에 대한 불안, 자기 재능에 대한 불신,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정에 대한 혐오, 버림받거나 불행한 결말을 맺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타당한 이유도 있지만 잘못된 신념에서 기인한 이유도 꽤 있지요. 그러니 직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상화된 원칙이 당신의 현실을 더욱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멋진 삶,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어떤 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겐 나 자신, 그리고 내 현실의 불만족스러움을 이상화된 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떨어질 때 더 몽환적인 꿈을 꿉니다.


그런데 이상이 아무리 높더라도 현실은 누추하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상 속에선 모든 성공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의도하고 뜻한 대로 성공적인 결과가 산출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지루함이나 번거로움, 재미없음을 견뎌야 하고, 수많은 변수가 내 뜻과 노력을 배신하지요. 이처럼 꿈꾸기와 꿈을 실현하기는 전혀 다른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엔 큰 꿈을 권하기도 하지만 중년 이후엔 현실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살아온 현실을 기준으로 꿈과 이상의 조정이 필요하지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잠시 내려놓고 현실이 전개되는 방식을 경험하세요. 지루함, 무능감, 무력감 등의 통로를 통과해보세요. 재미없음의 시간을 견뎌보세요. 현실에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굳건하게 발을 딛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이상, 판단 등)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상황에 푹 젖어드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지루하고 의미 없는 것들 가운데서 섬세한 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재미는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안목으로 그 일의 매력을 찾아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요. 그러면 그다음 단계를 꿈꾸고 욕심내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가슴이 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좇다가 방향감각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자기 줏대가 없는 사람을 보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친구 따라간 강남에서 운명적인 일을 만난 경우도 현실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일랑 접어두시고 지금의 일에 한동안 매진해보세요. 그 일에 숙달될 때까지요. 중년의 이상은 그렇게 현실과 만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현실에서 싹튼 이상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예수님, 한동네서 이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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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성당에 계세요?

가좌동 성당인데요.

, 그 동네 재개발하지 않나요?

그렇지요.

아하, 신부님은 욕망의 중심부에 사시는군요. 힘드시겠어요.

……?  


가좌동 성당(, 가재울 성당) 주변은 재개발로 인한 철거작업으로 마치 폭격을 당한 곳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신자들은 불안해하고, 하나둘 이사를 떠나 미사에 참례하는 인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철거업체가 빈 집들을 불도저로 밀어서 무너뜨려버립니다. 용역들은 무너진 집의 유리창을 깨어 부수어서 여기 저기 뿌리고 돌아다닙니다. 빈 집에 불을 놓기도 하고 쓰레기들도 산더미처럼 쌓아놓습니다. 이사 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 제 발로 나가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사는 곳이 쓰레기더미가 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게 마련입니다.

흩어진 유리조각이며, 불에 탄 집이며, 산더미 같은 쓰레기며 난장판이 된 동네에서 나는 열심히 청소를 합니다. 매일 아침 본당 주변을 깨끗이 비질하고 마당의 꽃도 정성 들여 가꿉니다. 깨끗한 곳, 잘 정돈된 곳, 아름다운 곳에는 힘이 있습니다. 청소를 하면서 청소도 투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사제관 주변의 집들이 모두 헐려서 창밖을 내다보면 동네가 훤합니다. 매일 불도저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시야는 탁 트여서 아주 시원합니다. 낮에는 훤해도 밤이면 유령 마을처럼 을씨년스러워지지요. 어느 밤인가는 술에 취해 인적이라곤 없는 골목길을 올라오면서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하필 접니까?

대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다시 한 번 외쳤습니다.

왜 하필 가좌동 성당입니까?


하늘에 삿대질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얼마나 그러고 서 있었을까요. 문득 언덕 위에 서 있는 사제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제관 주변의 집들이 거의 다 헐려서 아랫동네에서도 이제는 훤히 보이는 사제관. 공포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건물 몇 채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운데 건물이 사제관인데, 불 꺼진 사제관은 마치 폐가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사제관에 불을 켜둡니다. 바닷가의 등대처럼 밤길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라고 말이지요.

본당에도 불을 켜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자들이 새벽에 기도하러 올 때 무섭다고 해서 켜둘 참이었지요. 그랬더니 어느 신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신부님, 요즘 동네 사람들이 성당이 고맙다고 합니다.

왜요?

세든 사람들이 다들 이사를 가서 4층 집에 부부만 달랑 사는 세대가 있어요. 그 집 부부가 말하길 사방이 컴컴해서 너무 무서웠는데 성당에서 밤새도록 불을 켜두어,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 같다고 합니다.

이후로 전기요금 많이 나올 각오를 하고 더 열심히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당을 보면서 무서움을 달랜 사람들이 언젠가는 주님을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새벽, 잠결에도 밖에서 성당의 철문을 흔드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새벽 기도 오신 할머니인가 하고 빠끔히 내다보니 웬 아저씨가 술이 떡이 된 채 문을 잡고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아니 저 자식이!하고 내려가려는데 그 아저씨가 하는 말에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 한동네 사람끼리 이러지 맙시다.

성당 마당에 서 있는 예수님 상을 보고 주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기도하는 소리로 들리던지. 모르는 척, 그냥 잤습니다.

 

 

 

소금과 삶

브루더호프 한국인소년의 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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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해 방문했던 미국 브루더호프 메이폴리치 마을에 사는 한국인 박성훈씨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브루더호프 아이들의 소식은 주로 스포츠와 농사, 캠핑 등 몸과 관련한 이야기들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이라면 주로 학교, 학원, 핸드폰, 인터넷, 게인, 아이들 이런 이야기들일텐데요.

 

그의 아들 하빈이가 요즘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을 다닌다는 소식 흥미롭습니다. 야생 매를 잡아 훈련을 시켜서 그 매를 이용해 사냥을 한다는군요.

 

한국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브루더호프 아이들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의 아이들도 이렇게 산과 들을 누비며 뛰놀며 호연지기를 기르기를 소망해봅니다.

 

다음은 박성훈씨의 편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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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2-.jpg» 매와 함께 사냥 가는 하빈이



벌써 12월이 코앞에 있네요.

 

이곳은 11월이 되도 날씨가 따뜻하다가 갑자기 2주전부터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샛노랐던 은행나무잎이 기온이 영하로 내려 가면서 하루아침에 모두 떨어져 버렸어요.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이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을 모아 더미를 만들어 그 속에 숨고 뛰어노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네요.

 

그동안 광화문 네거리와 저희 처가 집 앞에 은행나무가 있었어도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면 은행나무잎이 한순간에 떨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지냈었는데 이곳에 오니 그냥 스쳐갔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네요.

 

지난주에는 저희 마운트 고등학교 축구팀이 뉴욕주 준 결승전에 올라 하빈과 유빈이와 응원차 구경하고 왔습니다.

날씨가 영상1-2도 정도 되는 추운 날씨라 뜨거운 코코아를 보온병에 넣고 점심에 먹을 쏘세지를 호일로 싸고 수건까지 덮어 갔는데 날씨가 워낙 추워 쏘세지는 아주 차가워 버렸네요. 그래도 코코아는 따뜻해 그것으로 몸을 데우고 축구경기를 관람했습니다.

 

저도 말로 들어봤지 우리 아이들이 하는 축구경기는 처음 관람하는 거였는데 아이들이 상대방을 피해 공을 이리 저리 패스 해서 정확하게 골대를 향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조직력이 어찌나 탄탄하든지.

 

한국에서 온 guest 분하고 같이 갔는데 이건 고등학교 축구경기가 아니라 어느 슈퍼 리그를 보는 것 같다며 놀라워 하더군요.. 결국 6-0으로 이겨 결승전에 올라갔습니다.

결승전에는 다음날 열렸는데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여기저기 공동체에서 응원차 온 형제, 자매들로 열기가 가득했습니다. 이번 팀은 만만치 않아 1-1로 동점이 되어 2번의 연장전까지 갔지만 결국 동점이 되어 상대방 팀과 함께 공동으로 뉴욕 참피온이 되었습니다. 몸은 꽁꽁 얼어 추웠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주 뜨거웠어요..

 

오는 길에 마운트 고등하교 육상팀이 뉴욕주 참피온이 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흐믓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축구감독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드크레스트에 있던 변호사인 존 훌리엣과 그의 아버지 톰이 맡았는데, 존의 아들 톰(할아버지와 이름이 똑같아요)이 얼마나 공을 잘 다루던지

 

요즈음 하빈이는 Redtail Hawk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매로 1년된 어린 놈을 덫으로 잡아다가 하빈이가 먹이를 주며 길들이는 거예요. 하빈이가 매사냥을 위해 재 작년부터 공부해서 hunting license를 딴 후 매가 살 수 있는 큰 집을 지은 후 작년에 매 한 마리를 잡아 훈련했어요. 그런데 훈련 도중 몇 주 후에 문이 열리자 이놈이 문을 박차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

 

하빈3-.jpg» 자기가 잡아 훈련시킨 매와 함께 한 하빈이


그때가 1월이었는에 이곳은 9월에서 1월까지만 매 사냥이 허락되기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매를 잡을 수 없어 모두 안타까워하며 다음 해를 기약해야만 했지요. 올해 9월이 되자 다시 시도해 몇 주 후에 1년된 암 컷을 잡았습니다. 이름은 판도라로 작년 것 보다 더 크고 품위가 당당한 아름다운 매예요. 발 톱이 날카롭기 때문에 하빈이는 손에 가죽으로 된 장갑을 끼고 매를 올려 놓으면 하빈이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면서 길들여집니다.

 

이제는 제가 등을 쓰다듬어도 물지 않아요. 손에서 먹이 먹는 것이 점점 익숙해 지면 매 발목에 줄을 매서 멀리 놓게 되는데 점점 먼 거리에서 하빈이 손으로 날아와 먹어요. 2주가 넘자 줄이 없이도 달아나지 않고 하빈이에게 날라와 먹었습니다. (사실 엄청 빠르게 진행된 것지요.) 이제는 하빈이를 쫓아 가며 이 나무, 저 나무로 날라 다닙니다. 날면서 땅에 있는 쥐나, 다람쥐, 청솔모를 사냥해서 먹어요.

 

요즈음 하빈이는 매일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한시간씩 매를 데리고 숲으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냥하지요. 참고로 이곳에 쥐, 다람쥐, 청솔모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자연의 균형을 위해 매사냥을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얼마전 저희 공동체 한국어 웹사트가 오픈되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보실 수 있구요, 블로그를 클릭하시면 형제, 자매들이 쓴 번역 글들이 있습니다.

https://www.bruderhof.com/ko

 

환절기에 감기조심하세요.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메이폴릿지에서 박성훈 드림

 

불행과 행복은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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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으로 티벳불교의 정수를 전하는 라마글렌 이야기


티벳불교의 마음훈련인 로종법문을 따를때 우리의 자아는 줄어들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친구가 된다.


티벳 사람들은 어려서는 공부하고 젊을때는 수행하고 나이 들면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수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여긴다.

라마 글렌은 캐나다인이지만 티벳인들의 이상적인 삶을 살았다.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인도로 날아왔다.70년대초에 달라이라마의 전생 스승들을 모시고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티벳의 스승들을 모시고 교학을 연찬하고 티벳의 역사를 배웠다.종파를 초월하여 40여분의 티벳스승들에게 탄트라 수행을 전수받았다. 14분의 역대 달라이라마의 전기를 연구하여 14분의 위대한 지도자 달라이라마를 민족사에서 출판하기도 하였다.


티벳불교를 소개하는 라마 글렌의 저서는 40권이 넘는다.아마존의 명상서적 분야 베스트 작가이다.그는 티벳불교의 대학자이며 탄트라 명상지도자로 미국과 세계의 주요도시를 다니며 불법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불법 수행의 정수는 중생의 마음을 보살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티벳에서는 마음을 훈련시키는 기술을 천년이상 발전시켜 왔다.그 기술을 로종 Lo jong 이라고 한다.


로종은 마음을 변형시킨다는 뜻이다.즉 로종수행은 마음을 닦는 7가지 요체이다.로종수행의 두가지 목표는 마음을 자유롭고 자비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로종수행은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두가지 요소를 없애고 친절과 사랑.지혜와 자비를 키워나가는 마음훈련이다.자기만을 소중히 여기고 나에게 집착하는 태도가 수행자의 두가지 장애다.마음의 장애를 제거하여 사랑과 자비의 관습적 보리심과 공성의 지혜라는 궁극적 보리심 발현이 로종수행의 목표이다.


람림과 로종은 인도의 위대한 스승 아티샤가 티벳에 전한 가르침이다.로종에 대한 핵심법문은 랑리땅파의 수심팔훈 修心八訓 똑메 쌍뽀의 보살의 37행 그리고 싼티데바의 입보리행론 더욱 자세한 것은 룽첸빠의 안심법요 安心法要이다.


티벳 불교의 마음훈련인 로종법문을 따를때 우리의 자아는 줄어들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친구가 된다.


다음은 로종법문을 요약한 글이다.

글렌1.jpg글렌2.jpg글렌3.jpg글렌4.jpg


내가 만나는 모든 이웃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항상 자존감을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을 더 높이 존중하게 하소서


다른 이가 질투심에서 나를 모욕하거나 비방하여도 손해는 모두 내가 가지고 이익은 모두 그들에게 주게 하소서


나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을 바로 보고 그것을 선으로 만들게 하소서

나를 배신하는 사람들을 성스러운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타인으로 인해 내가 상처를 입었을때 부당함과 싸우면서도 보복을 삼가게 하소서

모든 존재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의 고통을 은밀히 떠맡게 하소서


나와 더불어 모든 이웃들이 이익과 손해 칭찬과 비방이라는 자아의 관심사로 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로종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최고의 감로이다.

로종은 마음의 가난을 모두 없애고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않는 최고의 보물이다.

로종은 사람들의 마음의 고민과 몸의 질병을 치유해주는 최고의 영약이다.

로종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지친 길잃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환히 밝혀주는 보름달이다.


거지가 쓰레기 더미속에서 보석을 찾은 것처럼 로종수행을 통하여 최고의 보물을 얻고 마음의 둥근달 담아 가기를..바란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온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돕는 이타행에서 온다.

가난해지라는 교육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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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남 산청 민들레공동체



인절미먹이기2--.JPG» 학생들이 직접 만든 인절미를 가져와 먹여주자 받아먹는 김인수 교장선생님


경남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에 ‘민들레공동체’가 있다.  ‘칡밭’(갈전)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길 끝나는 골짜기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비인가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중·고 과정생 43명과 교사 7명 등과 교사네  다섯가정으로 이뤄져있다. 


 27일부터 4일간은 민들레공동체 에너지자립기간이다. 이 때는 전기와 가스, 수도도 끊고 외부에서 먹거리조차 차단한다. 그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살아낸다. 전기가 차단되니, 산에서 땔감을 주워와 흙스토브나 태양열 조리기로 밥을 하고 음식을 조리한다. 자전거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것쯤은 이곳 아이들한테는 기본이다. 수돗물도 없으니 계곡물을 떠와 아이들이 만든 정수기로 물을 정수해 사용한다. 심지어 라이터나 성냥조차 쓰지않아 돌을 마찰하거나 돋보기로 태양열을 가열시켜 불을 만들어 낸다. 외부 부식도 반입이 중단되니, 밭에서 이미 눈·서리에 앉은 배추들을 솎아오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와서 국을 끓인다. 이 과정에서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동원된다. 어떤 아이들은 뱀과 개구리를 잡아와 먹기도 한다. 그야말로 겨울산에 고립되어 목숨을 부지했던 빨치산식 삶의 현장이다.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삶에서 활용되는지 화학·생물·과학의 원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과학집중학습 기간이기도 하다.


공동체이유---.JPG


가위바위보3--.JPG» 요리실습을 하고 설거지를 누가 할것인지 정하는 가위보를 함께 하는 김인수 교장(뒤 오른쪽)과 부인 원근숙 선생님


 이런 생존력이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민들레학교 아이들은 오전수업 뒤 오후엔 주로 ‘현장’에서 공부한다. 밭농사 3천평, 논농사 2천평에 농사를 짓고, 양계장, 양돈장, 양봉 50상자 등을 아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직접 돌본다. 공동체 내 대안기술센터에서는 자전거발전기 등으로 에너지나 새로운 농기계·시설을 만들어내고 고치는 방법을 배운다.  센터안엔 빵을 만드는 제빵식, 자기 옷정도는 자기가 만들어서 입을 수 있는 양재실까지 있다. 아이들은 농사부, 양재부, 대안기술부, 건축부, 목공예부 등 중에서 선택해 ‘삶의 기술’을 배운다. 지난 9월 인근 지역민이나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연 ‘장터’에 내놓은 옷이나 농산물들도 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거나 키운 것들이다. 


 핸드폰이 개인노트북까지 맡겨두고 이렇게 강도 높은 노동을 해내는 이곳 아이들도 태생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3만 빼놓고 중고등 5학년생과 교사 모두가 매년 4월 함께하는 10일간의 국토순례를 처음 참가하는 아이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온종일 걷다보면 게거품을 물기 십상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더는 못가겠다”고 드러눕기도 하고, 교사와 자기 부모에게 악에 바쳐 막가파식 욕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면 교사나 도우미들이 뒤쳐진 그를 곁에서 지켜준다. 그러나 배낭을 대신 들어주지도 포기하도록 내버려두지도않는다. 그렇게 울면서 일행을 뒤따르던 아이는 3일, 4일이 지나 근력이 생기고, 골인지점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자신감을 갖는다. 이들이 행군을 마치고 민들레학교에 돌아오면 대형펼침막으로 환영하고 성대한 잔치를 벌이며 스스로 힘으로 해낸 성취를 적극 고무 찬양해준다. 그러면 처음 입이 댓자나 나와있던 아이도 자신감으로 볼이 터질 듯해지며 함박 웃음을 짓다.


국순1--.jpg» 10일간의 국토순례중인 민들레학교 아이들



천왕봉--.jpg»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민들레학교 아이들과 외국인 자원봉사자들. 외국인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와 1년씩 살며 봉사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메노나이트 사람들이다.


 민들레학교 김인수(57) 교장은 지난 2007년 이 학교를 열 때부터 입학생들에게 “대학 갈 생각도 부자로 살 생각도 말라”고 했다. 자식이 명문대학 가서 부자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복장을 뒤집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학교에서도 강연에서도 늘 세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도시에 있지 말고 농촌에 와라. 흙속에서 살아야 사람 된다. 둘째, 자식 대학 보내려고 하지마라, 대학 가봐야 별 볼일 없다. 셋째, 취직 당하지마라. 교육은 직업에 목매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서 직업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세 아이 중 첫째 셋째 아이를 초등학교만 졸업시켰다. 그래도 두 아들은 스스로 공부해 자기 삶을 개척했다. 둘째 딸은 고교에 졸업하자, 민들레가 돕는 히말라야 지역에 국내대학보다 학비가 10분1밖에 안되는 곳이 있어서 그곳에서 공부하고 와 민들레학교 교사로 함께 하고 있다. 정규학교는 초등학교만 다녔던 막내아들도 독학을 해 민들레학교 교사로 있다. 


 김 교장 자신도 ‘가난’을 선택했다. 대학 때 고신교단의 선교단체인 ‘에스에프시’에서 활동한 김 교장은 대학 졸업 뒤 10여년간 지리산 일대에 교회조차 없는 가난 가난만 찾아 살았다. 그는 오지 빈촌의 폐가를 구해 고쳐살며 마을이웃들에게 자신의 전공인 농업을 살려 유기농법을 가르쳐주며,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부인  원근숙(56)씨와 동역자들과 함 가난한 마을에 무려 20여곳의 교회를 개척하는 전설을 만들어냈다. 부인 원씨의 거창고 은사인 도재원 선생은 “성공이란 자신의 삶을 어디에 바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해 돈 많이 벌고, 출세하고, 유명해졌다고 해도 ‘정의와 자유, 평등, 사랑’을 건설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삶을 살지않았다면 결코 성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부가 민들레학교를 설립한 것은 ‘진짜 성공한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기 위함이었다.


모내기-손모심기--.jpg밭노작 마늘밭--.jpg풀베기1--.JPG



 스승의 말은 김 교장 부부에게 교육의 모토가 됐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해외이동학습에서 더해진다. 중2학년생들은 매년 8~10월 3개월간 인도와 네팔, 캄보다이아 등에서 이동학습을 한다. 민들레공동체원들이 10여년부터 파견돼 농촌살리기에 나서고 있던 이 지역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오지에 있다. 그래서 지난번 인도 실리구리에 들어갈 때는 홍수로 길이 끊겨 애 먹었다. 아이들은 오지마을에서 장애인들에게 봉사도 하고, 가난한 친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가난한 삶 속으로 들어가 가난한 친구들을 사귄다. 아이들은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풍족함을 누리면서도 늘 불평불만을 하곤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해외학습의 대미는 기아체험이다. 직접 24시간동안 굶어보면서 먹을 것이 벗어서 굶을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친구들의 처지가 되어보는 것이다. 그런 체험 뒤 추첨에 의해 어떤 아이는 진수성찬을 마주하고, 어떤 아이는 500리터 생수 하나로 하루를 더 버티는 생생한 빈부차이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 체험 후 여러 아이가 “굶주린 아이들과 내가 바꿔 태어났을 수도 있었다”면서 “그런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고2학년생’들은 미국으로 떠나 제3세계의 삶을 개선하는 적정기술과 창의력캠프에 참석하고, 브루더호프나 아미쉬, 후터라이트 등의 공동체를 방문해 배운다. 이들이 고3이 되면 한우, 목조건축 등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정해 대학졸업반 못지않은 논문을 써낸다. 더구나 책상물림이 아니라 삶의 터득한 전공에 대해서 말이다. 3고 아이들은 3개월간 자기분야 회사 등에 인턴십을 가는데, 요즘 아이들답지않게 부지런하고, 인간관계도 원활한데다 무엇보다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 ‘대학 안나와도 되니, 제발 우리 회사로 보내달라’는 청이 적지않다고 한다.


강당마당-.JPG고백-.JPG고해이공동체-.jpg교무실교실-.JPG교실청소-.JPG국순밤나눔-.jpg국순텐트-.jpg깍두기야-.jpg남자기숙사-.JPG농구1-.JPG농구김인수-.JPG닭들2-.JPG도마도먹이기1-.JPG독서수업-.JPG돼지들-.JPG마음지키라-.JPG모내기-.jpg밭-.JPG밭노작 삼각대세우기-.jpg밭만들기-.jpg배식1-.JPG배식준비-.JPG


 독특한 교육철학으로 이 학교를 이끄는 김 교장은 전형적인 책상물림처럼 허약하지보이지만 그는 논밭에서 일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 그는 “노동을 하다보면 깊은 기도를 할 때처럼 마음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이곳 학생중 가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인근 다른 공동체로 귀양을 보내 ‘다른 삶’을 경험하게도하지만, 김 교장은 그런 골칫덩이를 자기 옆에 두고 온종일 함께 일하기를 좋아한다. 골치를 썩이는 아이들은 친구들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아 심통이 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교장 선생님이 자기와 온종일 함께 해주며 같은 노동을 하고, 뭔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해낸데 대해 칭찬을 아끼지않으면 아이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지는 사례가 적지않다고 한다.그는 개신교 중에서도 ‘골수 복음주의자’에 속했지만, 그는 신앙의 잣대로 아이들을 옥죄는 것을 경계한다. 아이들이 욕구를 분출하기도 하고, 그 본성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신앙적으로만 해결하려다보면 욕구를 분출해본 적도 없던 아이는 위선적이 되고 이중적이 되기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좁은 울타리에 아이들을 가두지 말고, 스스로 생각과 삶을 일치하도록 도와야한다는 것이다.


배추꽃식사-.jpg설거지2-.JPG쉬는시간 도서실-.jpg식사1-.JPG식사6-.JPG아침체조-.JPG앙상블팀-.jpg어린왕자1-.JPG의류-.JPG자전거발전기-.JPG지리산천왕봉-.jpg채소밭더큰것-.jpg추수잔치노래-.jpg축구 우리도-.JPG축구1-.JPG퇴비나르기-.jpg포옹2-.JPG하우스안-.JPG해이 이런표정-.jpg해이 풍물(문화교류)-.jpg해이장풍-.jpg해이째미뉴-.jpg해이출발전-.JPG


 “10미터씩도 훨훨 날아다녀도 부족한 닭을 양계장의 비좁은 케이지에 가두면 화가 나서 독을 품고 병들게 마련이지요. 아이들도 마찬기지. 작은 울타리에 가두려들지말고 어지간하면 울타리를 크게 해줘야해요.”


 민들레의 돈사와 양계장이 다른 농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은 것도 그 때문일까. 이처럼 넓은 마음으로 살게 하니, 이곳 아이들의 호연지기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이곳에서도 주일이면 식당 겸 강당에서 예배를 본다. 신학대학원을 마친 전도사이기도 김 교장이 예배를 인도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교회란 장소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터전과 하늘과 땅, 즉 사랑과 나눔이 있는 삶의 현장은 모두 이들에게 교회다. 이들은 식사 때마다 단 한소절 노래를 함께 부름으로써 그런 마음을 나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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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에서 일하는 겨울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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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배추씻기-.jpg» 김장 배추 절임 작업을 하는 법인 스님(사진 왼쪽)


올겨울 해인사 선원에서 지낼 동안거 참선수행을 접었다. 겨우내 암자를 지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내 나름에 맞는 새로운 수행을 해보고 싶어서다. 대중처소에서 정진하는 일은 대체로 만사가 순조롭다. 정성스러운 외호 덕분에 잠자고 먹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화두에 전념하면 된다.


 나의 동안거는 이미 십여 일 전부터 시작했다. 아침 9시까지 산 너머 농장으로 출근한다. 내년 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절임배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은 좌선과 독서 시간이다. 참선과 노동의 일치라거나 노동선 같은 거창한 명분은 없다. 다만 몸 살림을 통하여 마음을 깨우고 싶고, 구체적인 현장에서 이치를 증험하고 싶고, 내면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산중귀족 근성을 말끔히 걷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수월한 김장을 위해 절임배추가 유행이다. 먼저 올 9월에 손수 심은 수천 평의 밭에서 토실토실 자란 배추를 트럭에 실었다. 이 일이 가장 힘들다. 주문에 따라 어떤 날은 무려 1800포기를 뽑는다. 허리가 아프고 근육이 욱신거린다. 이른 새벽에 농장의 바깥양반은 바닷물을 길어 온다. 청정한 물에 절반으로 가른 배추를 열두 시간 담근다. 이어 걸러낸 배추에 소금을 알맞게 절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하수에 두 번 정도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포장과 택배 발송. 이 과정에서 허리와 어깨가 온전할 리는 없다. 20㎏ 한 상자는 대략 칠팔 포기의 배추가 담긴다. 운송비 포함 3만5천원이다.


법인스님-.jpg» 전남 해남 배추밭에서 김장 배추를 나르는 법인 스님(맨오른쪽)


 상자에 담긴 절임배추를 보노라니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엊그제 작은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이제는 웃음이 넘치는 가정에서, 혹은 외롭게 사시는 분들의 식탁에서 맛있는 김치로 결실을 맺게 되다니. 김치는 예부터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사랑받은 음식이기에 정이 더 간다.


 절임배추 작업을 하면서 어쭙잖게 거듭거듭 실감하고 공감하는 이치는 두 가지이다. 먼저 어느 한 존재는 무수한 다른 존재들의 도움과 은혜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배추를 뽑고 절이고 씻는 손길에서 알 수 있다. 작년은 태풍이 와서 배추농사를 망쳤다. 올해는 바람님, 비님, 햇볕님이 잘 도와주었다. 바닷물과 소금이 건강하니 배추가 간이 잘 맞는다. 또 이 배추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즐겁고 정성스럽게 손질하니 그야말로 배추 한 포기에 자연과 사람이 협동하고 상생하는 삶이 깃들어 있다.


 또 하나의 이치는, 모든 존재는 결코 ‘한 묶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사백 포기가 담긴 ‘한 트럭’이라거나, 칠팔 포기가 담긴 ‘한 상자’가 아니라는 사실. 저마다 한 포기, 한 포기의 고유의 존재라는 사실, 그러므로 한 포기는 그 자체로 존엄하며 존중받아야 하지 않는가. ‘우리들’은 한 묶음으로 묶여질 수 없는 존재다. 올겨울에 나는 배추 한 포기에서 ‘개인 있는 전체’의 화엄세상을 화두로 삼아 전념할 것이다.


빅뱅의 노래를 부르던 아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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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강의를 다니면서 7살의 어린이나 100살의 어르신이나 죽는 그 순간에는 모두 100%의 꽃을 만개하고 하늘로 떠난다고 이야기한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보다 서해에서 지는 노을이 훨씬 아름다고 오래 오래 산과 바다를 물들여 놓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도 인간이기에 젊은 친구들이나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마음안에서 진실된 기도가 나온다. ‘하느님, 제가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제 인생중에서 1~2년쯤 떼어서 저 아이에게 주세요’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셨던 예수님께도 매달려 본다. ‘저 부모들에게 저 꼬맹이를 돌려 보내주세요’라고.... 


그날 밤 수녀원에 돌아와서 기도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 죽음이 안스러워서가 아니라 ‘성모 모성’ ‘어머니의 마음’을 살아내고자 수십년 노력했는 데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마음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짜 그 아이의 엄마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기도했을 것이다. ‘저를 데려가시고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겨우 1~2년쯤의 생명을 가져가시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자녀를 떠나 보내는 부모 앞에서는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다.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주거나 껴안아 주는 것이 전부이다. 때로는 ‘하느님 너무 밉죠?’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참지 말고 실컷 우세요, 욕하세요’ 뇌종양으로 오랜 투병을 하다가 떠나간 8살 아이가 있었다. 빅뱅의 ‘하루’라는 노래를 좋아했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고 엄마가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을 안타까와했던 착한 아이였다. 대형병원을 수시로 드나들던 그 아이가 모현으로 입원하던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가서 그 아이를 맞이하던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면서 ‘며칠 안 남았는 데 큰 병원에 있게 하지 왜 입원을 받았냐?’라고 하실 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전 이 아이를 기계속에서가 아니라 엄마 품에서 죽게 하고 싶어요’ 참으로 궁색한 대답이었지만 정말 그랬다. 


 불필요한 기계장치가 그 아이에게서 사라지고 오직 엄마의 목소리와 친구들의 노래소리, 그리고 수녀들의 기도소리만이 남겨진 채 우리와 5일을 함께 하고 떠났다. 경련을 일으킬때마다 간호사들은 ‘어휴, 이 녀석 눈은 있어서 이쁜 누나 온 걸 알고 윙크하네’라고 하면서 엄마를 당황하지 않게 안심시켜주고 엄마가 충분히 아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씻기고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를 떠나 보내고 엄마는 우리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제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끝까지 해줄게 없으면서도 항암약이 전부일 줄 알고 이것이 최상인줄 알았어요.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를 더 힘들에 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큰 병원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너무 바빠 때로는 차가워 보일때도 있어서 인간으로서 멀어졌는 데 이 곳 모현에서는 내 생각이 달라졌어요. 아이가 볼 수 없고 말 할 수 없었지만 너무 편안해 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ㅤ짧은 5일이지 모두에게 가장 행복했던 5일이라고 볼수 있어요. 아쉬웠다면 석달전에라도 와서 넓고 예쁜 꽃도 보고 정원도 거닐고 이야기도 나누고 더 사랑많이 받으면서 추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텐데... 지금 제 곁에 없지만 이젠 고통없는 편안한 나라에서 우리 식구들을 지켜보고 있을거라는 마음에 하루 하루 잘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지금도 추모관에 가면 이 아이의 봉안소앞에서 빅뱅의 ‘하루 하루’라는 노래 가삿말을 흥얼거려본다.


영혼의 안식을 해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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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jpg» 가재


세상은 신비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신비한 것 중에 하나는 나의 존재입니다. 사고하고 있는 나의 존재가 신비하고, 신비한 존재인 내가 바라보는 모든 세상이 신비합니다. 밤하늘에 별들도 신비하지만 캄캄한 어둠을 볼 때도 동일한 신비를 느낍니다.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수많은 별들과 지구가 어우러져 어떻게 이런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온몸이 전율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기에는 언어의 한계를 통감합니다.


겨울이 되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옆을 흐르고 있는 시냇물에 사람들이 와서 개구리를 잡아 가는 것입니다. 호미와 지렛대로 바위들을 들추면서 평안히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구리들을 술안주로 최고라고 하면서 모두 잡아 갑니다. 큰 돌 작은 돌 등을 들추면서 잡아가기 때문에 내년에 개구리들을 볼 수 있을까 염려가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어김없이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땅이 녹고 시냇물이 많아지고 비가 오면 개구리들은 자기 세상을 만난 듯 노래합니다.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는 나의 영혼에 위안을 주는 합창입니다. 


공동체 옆 개울에서 가재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처음 가재를 본 것은 약 35년 전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을 때, 개울에서 가재 잡고 놀았던 생각이 납니다. 개구리 뒷다리를 막대기에 묶어서 시냇물 돌 틈에 넣어 두면 여러 마리 가재들이 개구리를 먹기 위해 모여듭니다. 가재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막대기를 천천히 들어 올립니다. 그러면 가재들은 앞발로는 개구리 다리를 물고 있고 다른 발들은 꼬물꼬물거리면서 올라옵니다. 지금은 하천이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가재들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있는 도심리 마을도 꽤 산골짜기임에도 불구하고 시냇물에서 가재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가재를 발견했을 때 저의 환희와 놀라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재 한 마리가 왜 그렇게 반갑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그 가재는 저를 35년 전 어린 시절로 가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게 했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창조하시면서 후렴구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어의 원어와 영어성경의 표현을 본다면 이것은 단순히 좋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놀랍고 경이롭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해, 달, 별, 나무, 꽃, 동물, 물, 바다, 흙, 사람을 보시면서 감탄하실 뿐만 아니라 놀랍고 경이롭게 보셨습니다. 지금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것과는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시편 139절 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것에 대해서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글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신기하고 오묘해서 측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한글 공동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있다는 놀라움, 하신 일의 놀라움, 이 모든 신비들, 그저 당신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비하신 하나님이 신비함으로 모든 것들을 그의 품안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을 심미안(審美眼)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신비한 것들로 볼 줄 아는 눈을 신비안(神秘眼)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신비안을 가졌다는 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세계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신비안을 가진 자는 세상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가 세상의 지식과 과학에 의해 점점 점령당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마음껏 뛰놀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동차 운전을 염려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으로 교육받습니다. 봄이 되면 농부들은 밭을 일굽니다. 옛날에는 소가 주로 그 일을 했지만 이제는 트랙터로 합니다. 시골에 있는 소들은 주로 한우로 비육되어 팔립니다. 모든 소들은 귀에 노란 딱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의 모든 이력을 컴퓨터로 인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사료를 먹고 2~3년 되면 팔려 나갑니다. 이제 소는 우직하게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먹고 살쪄야 하는 존재입니다. 존재가치가 바뀐 소가 불쌍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를 본다 해도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지는 못합니다. 주님, 저에게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신비안(神秘眼)을 주시옵소서!   

꼭 이루고야마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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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8유형 - 힘을 추구하는 사람

         두 번째 


핵심동기 : 힘 

자신의 시각 : 자신감, 정의, 리더십

타인의 시각 : 강함, 지배욕, 냉혹함



8유형 사람은 공정함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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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형 사람은 강한 힘과 자신감으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합니다. 영향력을 끼칠 때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 차별이 없는 공정한 원칙입니다. 약한 자를 힘없이 괴롭히거나 곤란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되면 제일 먼저 앞장서서 그들을 위해 대변자 역할을 하며 보호해 줍니다. 솔선수범하여 주도해 나가는 것이지요. 


사례 1> A 탤런트의 학창시절 : 

        - 여학생이 놀고 있는 줄을 끊거나, 동물 혹은 약한 학우들을 괴롭히고 놀

           리는 학생들을 끝까지 쫓아가 혼을 내줌.

        - 후배들의 돈을 뺏는 선배에게 예의로 한 대를 먼저 맞고 싸움을 해 후배

           의 돈을 다시 되찾아줌. 그 후 학생폭력방지위원회를 만들어 감시자 역

           할을 함.


8유형 사람은 친구, 가족, 회사 등 자기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잘 보살피고 든든한 보호자로서 어떤 이와 대적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미안함, 고마움 등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8유형 사람은 정의로움을 실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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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형은 놀라운 의지력과 활동력으로 정의를 위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위해서라면 위험한 곳에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들지요. 


사례 2> 소매치기 또는 지하철 사고 때 사람을 구해내는 힘 

         *무모한 행동으로 때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8유형 사람은 마치 투쟁하는 전사와 같습니다. 문제 해결과 과정에서 과격한 접근 방식을 취하지요. 자기를 포기할 자세로 격렬하고 혹독하게 하며 상대방에게도 이와 같이 겁을 주며 폭력적인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8유형 사람은 위선자나 비겁한 사람들과 과감히 맞서 싸웁니다. 누가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육감적이지요. 타인의 허세와 불법성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 능사이며 도전적이거나 상스러운 언어를 동원하여 힘을 행사합니다.


사례 3> 8유형의 어느 직장인 : 

         - 옮기는 회사 마다 싸움을 하고 퇴사을 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의협심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가족과 타인은 때때로 무모한 사람,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8유형 사람은 리더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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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형 사람은 공정함을 앞세운 정의감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 지도자의 역할을 떠맡게 됩니다. 이들의 리더십 발휘는 혼자 보다 함께 하는 성장을 추구합니다.  상대방의 숨겨진 자질과 힘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며 자극하고 도전하도록 합니다. 


사례 4>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1929-1968)' :

         - 미국의 흑인 운동 지도자이자 목사이다. 비폭력의 저항 방법을 통해 인

           종 차별을 없애려고 하였다. 전 세계 흑인 인권 신장에 많은 도움을 준 

           지도자이다. 


8유형 사람은 목표를 세우면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꼭 이루고 말겠다는 열정을 갖고 일을 조직해서 완결되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방식이 직선적입니다. 빙빙 에둘러서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어쩔 때는 거칠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타인에게 많은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요. 


사례 5> 남을 공격할 때 반대파의 체면을 깎아 내린다.


8유형의 사람은 나의 생각과 절대적인 원칙을 내세워 강요합니다. 자신의 원칙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곧 자기를 거부하는 것과 동일시하며 취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나친 행동은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희생한다’ 말처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위한 강권을 더 행사합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모두를 위한 옳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타인은 자율성을 무시한 소통이 안 되는 횡포입니다.

내 일(job)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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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w-camper-336606_960_720.jpg» 사진 픽사베이.비행기 옆좌석에서 만난 30대 남자에게

‘욜로’족이라고요? 그럼 ‘돌체 비타’가 아닙니다


휴가철을 맞아 낯선 곳으로 떠나기 위해 항공기에 탑승하는 순간, 혹은 케이티엑스(KTX)에 오르기 직전에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설렘을 갖습니다.
“내 옆자리에는 과연 누가 앉게 될까? 혹시 멋진 사람을 만나 내 인생에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살짝 기대감을 가져보지만 영화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만사 피곤한 표정의 중년 아저씨, 짐이 한보따리인 할머니가 그 주인공일 때가 많지요. 얼마 전 출장을 위해 독일로 가는 항공기에 탑승했을 때 제 옆자리에는 30대 초반의 남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기내 식사 서비스가 이뤄지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 동안 가능한 한 세상의 많은 곳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포부를 털어놓았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자답게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뭔지 모를 불안감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막상 다녀보니 직장생활이 너무 뻔했어요. 창의적인 일터라고 선전한 것과는 달리 모든 것들이 경직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저도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겠구나 하는 오싹함이 들었어요. 얼마 동안 망설이다가 회사를 때려치우기로 했어요. 여행 다녀온 뒤의 계획이요? 뭐 솔직히 걱정도 되지만, 제가 부모님 돌봐드릴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마음껏 저를 위해 쓰기로 했어요. 단 한번뿐인 인생인데 저축 바닥나면 어때요? ‘욜로’(YOLO)라고 하잖아요?”

저는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그의 여건, 젊음의 패기가 내심 부러웠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의식도 건강해 보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나이 마흔을 경계로 한쪽에서는 2막 인생에 대한 고민이 대세라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욜로가 화두입니다. 앞의 청년처럼 몇년 동안 모아두었던 목돈으로 전셋집을 얻는 대신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취미생활에 한달 월급을 소비하는 소비층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니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내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킵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당신은 한번뿐인 인생을 살 뿐이다)라는 말의 준말인데, 미국의 힙합 가수 드레이크가 ‘더 모토’(The Motto)라는 노래에서 후렴구로 ‘YOLO’를 반복해서 급속도로 유행이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 ‘오바마 케어’의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 마지막에, ‘Yolo, man’이라고 말해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산장이나 카페에 가면 ‘헬로’ ‘차오’ 대신 ‘욜로’를 외치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 지구촌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서양에서 목격한 욜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욜로는 한마디로 라틴어 단어 ‘카르페 디엠’(현재에 충실하라)의 미국식 버전이었습니다. 인생은 단 한번뿐이라는 것은 같지만, 그 방식에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성공, 출세 같은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말고, 평생 자기가 추구할 만한 일을 하자는 개념입니다. 그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시간과 열정, 돈을 투자하자는 것이지요. 소비 위주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메시지도 한번뿐인 인생이니 뜻깊은 의료개혁 정책에 동참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중국 고사가 있던가요? ‘귤이 회남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처럼, 원래 욜로의 좋은 뜻은 간데없고, 내일은 알 수 없고 오늘도 힘드니 맛있는 것 실컷 먹고 멋있는 곳 맘껏 보자는 뜻으로 한국에서는 살짝 변질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삶을 불태워버리자’는 뜻으로 오역하는 사람조차 있습니다. 상업주의가 그 욕망에 기름을 붓고 있는 까닭입니다. 호텔, 여행, 백화점, 카드회사 같은 곳에서는 그 욕망을 한껏 부풀려 소비 광고와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일명 ‘욕망 비즈니스’가 큰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을 서양에서는 ‘돌체 비타’(Dolce Vita)의 삶이라고 합니다. 화려하고 향락적인 인생을 추구하는 인생을 그린 이탈리아의 영화 제목에서 연유된 말입니다.

그러나 욜로는 결코 돌체 비타의 삶이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모아봤자 집 한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아끼기보다는 그냥 쓰게 되는 악순환, 일종의 현실도피로서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의 잠재적 리스크를 알면서도 모든 지출을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해답일까요? 세계 여행을 떠나서 답답했던 시야가 트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권장할 만합니다. 다만 무모한 행위를 하기 전에 스스로 외치는 주문으로 욜로가 변질된 것은 아닌지 걱정될 뿐입니다.

흔한 표현처럼 ‘직장을 때려치우는’ 게 관건은 아닙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확실한 이유가 있고, 그 이후의 예견되는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일과 직장이 나를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행복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잊고 삽니다.

평생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인정받는 일을 한다면 행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은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이지 단 한순간에 도달하는 그런 과녁이 아닙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코스를 벗어나 자신만의 마음속 지도를 따라 길을 떠났다가 결국은 자기만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내 일(Job)이 있어야, 내일(Tomorrow)이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욜로 정신 아닐까요?

욜로는 돌체 비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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