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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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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도 다 따를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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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왜 자신의 취향을 딸에게 강요할까요?

엄마와 자꾸 어긋나는 21살 딸, “관계 회복 바라지만…”


엄마는 자신의 취향인 등산 강요

부모는 자식 통제하기 위해


자녀의 죄책감 활용하는 경향

싫은 건 뭐라 해도 안 하는 게 정답


-사진4.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21살 여대생이에요.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긋남이 참기 힘들어 메일 보냅니다. 엄마는 엄격하지만 그 누구보다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세요. 이번 여름방학 저와 보내는 시간을 원하는 눈치여서 재수와 실패한 대학입시 때문에 벌어진 모녀 사이를 좁히기 위해 여름방학을 통째로 비웠습니다. 보통 저는 약속이 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면 제가 외출하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방학 이후로는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집에 있습니다. 집에서 집안일 하며 엄마가 들어오시길 기다리는 게 일상이죠. 집 안에 있으면 엄마랑 밥도 먹고 놀러도 가고 하면서 관계가 좋아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마는 엄마의 취미인 등산으로 저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하시는데, 저는 등산이 싫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싫어하고 제가 산 오르는 것 자체를 되게 싫어해요. ㅠㅠ 물론 엄마도 잘 알고 계시구요. 그래서 싫다고 말씀드린 후 다른 걸 같이하면서 관계 회복을 하자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절대로 안 되고 자신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등산을 꼭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관계 회복은커녕 매일매일 더 싸우기만 합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저는 무엇을 고쳐야 할까요?? 라떼



A 모녀 관계에서 10~20대 딸들은 타자입니다. 대부분 그들은 엄마가 묘사하는 대상이지 스스로 자신의 모녀 관계를 피력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서 젊은 딸은 문제아 혹은 반항아이며, 게으르거나 철이 없어 엄마의 애를 끓이는 존재입니다. 또는 엄마의 애착과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지요. 엄마들은 모였다 하면 자식 이야기를 하지만, 솔직히 자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그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어본 적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윗사람들이 그렇듯 부모는 훈계하고 설득하는 쪽이지 들어주는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침묵하던 딸이 입을 열어 엄마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제야 엄마들의 편견과 자기중심성이 드러납니다. 관계의 문제는 양측의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라떼님의 의견이 소중합니다. 엄마 이야기에선 좀체 보이지 않던 딸의 죄책감,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마음, 엄마의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라떼님과 엄마는 비교적 사이좋은 모녀 관계인 것 같네요. 엄마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고 또 엄마와 옥신각신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너무 격렬해서 깊은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면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의사소통이니까요.


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싫은 거라면 안 하는 게 맞습니다. 사실 20대 초반 나이에 등산 좋아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 역시 산책하러 가기 싫다는 딸을 여러 번 종용했지만 내가 꿈꾸던 딸아이와의 행복한 산책은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그땐 냉정한 딸아이를 원망했는데, 라떼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딸도 거절하면서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엄마들은 도대체 왜 자신의 취향을 딸에게 강요하는 걸까요? 왜 일상을 같이하는 것도 모자라서 취미도, 생각도, 생활방식도 자신과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걸까요? 왜 딸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독립을 방해하는 걸까요? 정말 자신이 수고한 대가를 자식에게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이가 어린 시절 엄마에게 준 무조건적인 사랑과 전폭적인 지지로 수고한 만큼 충분히 행복하지 않았나요?


중독 치료 전문가인 하인즈 피터 로어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서 죄의식에 기반을 둔 엄마와 딸의 의존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엄마는 자신의 행복하지 않은 마음을 딸의 탓으로 돌리면서 ‘내 딸이니까 너는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 딸은 죄의식에 시달리고, 그 빚진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엄마의 만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합니다. 애쓸수록 엄마의 욕심이 늘어나니 딸의 죄의식은 청산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경우지만 이런 모습이 일상의 모녀 관계에서도 곧잘 발견되지요.


부모는 자식을 통제하기 위해 아이의 죄책감을 자주 활용합니다. 왜 나를 가슴 아프게 하니, 왜 내 속을 썩이니, 실망이야, 왜 그렇게 철이 없니? 어쩜 그렇게 바보같이 구니? 하면서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자식을 양육하면 부모와 자식 관계가 사랑이 아니라 죄의식에 기초해 이루어집니다. 효도도, 심지어 자신의 성공조차도 빚진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효도는 분노와 피해의식을 만들어낼 뿐인데 말이지요.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효도를 원하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라떼님의 경우도 재수와 대학입시 등으로 미안해져 엄마에게 방학 동안 봉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엄마가 싫어하는 친구도 만나지 않으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엄마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등산까지 요구하시네요. 등산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데 왜 그렇게 게으르냐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에 좋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라떼님, 다시 말하지만 싫은 건 싫은 겁니다. 앞으로도 싫고 좋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존중해주세요. 엄마의 기쁨을 위해 자신의 싫어하는 마음을 외면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엄마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겁니다.


그래야 부모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가장 어려울 때 발 벗고 나서서 도울 수 있습니다.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타인에 대한 선의는 그 어떤 것보다 자발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기쁘기만 하니까요.



우에노의 스타벅스 보니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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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공원과 스타벅스 커피점

 


-우에노.jpg»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


참 오랜만에 토교의 우에(宇野)공원을 찾았다. 30년 전에 나고야에서 일본의 정토(淨土) 신앙 사상가 신란(親鸞)의 타력(他力)불교 사상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던 젊은 시절에 우에노의 벗 꽃이 무척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서 가 본 적이 있었는데, 벗 나무 밑에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싸온 음식을 풀어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흔히 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놀랐고,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벚꽃이 제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다 해도 역시 우리 동양 사람들은 술과 음식이 있어야 흥이 나는 법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국제 학술단체 연합회(UAI)의 총회에 참석하기 위에 가선 머문 호텔이 공원 근처라서 쉽게 걸어서 갈 수가 있고, 또 옛날 생각도 나서 다시 찾았다. 동경 국립박물관 쪽을 향해 걸으면서 양 옆으로 신사, , 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내 표시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걷다가 이전에 왔을 때는 본 적이 없는 안내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스타벅스 입간판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웬 스타벅스?”하고 놀랐지만, 길고 나지막한 목조건물의 스타벅스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매장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의 분위기와 비교적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놀라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우리나라 어느 유서 깊은 관광지나 유적지 같은데 그런 건물이 있을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큰 매장, 그것도 지금은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햄버거보다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큰 규모의 커피점이 그렇게 유명한 공원, 그것도 아주 사람들의 눈에 잘 띠는 곳에서 영업을 한다는 건 나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길고 나지막한 목조건물이라서 그런지 공원의 주위환경이나 분위기 상 그렇게 튄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퍼뜩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 일본인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말 좋아하는 구나, 아니 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곧 이어서 일본과 미국의 가까운 관계,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아베와 트럼프의 밀월관계가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방문 첫날부터 일본 매스컴을 도배하다시피 한 것이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개헌 선을 확보할 정도로 압승했다는 소식이었고, 몇 일후로 다가온 트럼프의 일본 방문도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던 차였다. 혹시 둘이서 짝짜꿍이 되어 이 민감한 시기에 우리도 모르게 한반도의 운명을 두고 무슨 비밀 협상이나 약정 같은 것을 맺지나 않을지 하는 불길한 생각에 학술단체 연합회 모임 내내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 그런 못된 짓을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미일동맹의 압력 앞에 우리나라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스타벅스.jpg


귀국 길에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넉넉해서 공항에 있는 서점에 들렸다. 평소 타임지는 가끔 읽는 편이지만 뉴스위크지는 읽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2주가량 지난 뉴스위크지(발행일자가 1017) 딱 한 부가 아직도 판매대에 남아 있었다. 카버 스토리 제목이 너무나 놀라워 당장 사가지고 공항 한구석에 앉아 다 읽어버렸다.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Can God believe in Trump?”, 번역하자면 하느님도 트럼프를 믿을 수 있을까?” 혹은 하느님도 트럼프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제목이었다. 큰 글자로 쓰인 이 제목 밑에는 로마 바티칸에 있는 시토회 채플 천정에 그려 있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 그림인데, 아담이 하느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을 패러디한 그림에는 트럼프가 하느님께 손을 뻗치면서 당신 당장 해고야!”라는 그가 평소에 툭하면 던지는 말과 함께 그려져 있다. 상식을 무시하는 그의 돌출적인 언행이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하는 이른바 미치광이전략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정말 무슨 전략이라도 가지고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의 나쁜 습성을 이기지 못해서 나온 자연스러운언행이라면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본이 몰라서 트럼프에게 딱 달라붙고 있을 리 가 만무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분단국가, 그것도 심한 남남갈등으로 분열된 약소국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지금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누구보다도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잘못하거나 실수를 범해도 절대로 인정하거나 사과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공연히 심기를 건드리거나 맞섰다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의 성격으로 보아 무슨 불장난을 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미국 국내 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 그럴 염려가 더 커진다.


-트럼프 아베.jpg»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후(현지시각)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미국 총영사관에서 한·미·일 정상 만찬 기념촬영을 마친 뒤 만찬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함부르크/연합뉴스



한반도 운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상치 않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제일의 명제는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속으로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든 말이다. 당국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고도의 외교적 기술이 요구된다. 나중에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평생 종교연구를 해온 나 같은 문외한이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아 계면쩍다. 민족적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쳐 버리고 하는 말임을 나도 안다. 말도 안 된다고 매도해도 상관없다. 이 땅에서 끔찍한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뉴스위크지는 더 나아가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미국 유권자의 양대 세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른바 기독교 복음주의, 근본주의’(evangelical, fundamentalistic) 진영과 애국을 자처하는 이른바 재향군인들(veterans) 세력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자에 대해서 매우 상세한 분석을 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나로서는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기사를 읽고 나면 내가 정말 평생 개신교 신자로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국식 복음주의, 근본주의, 물질적 번영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이른바 번영 신학’(prosperity theology)으로 철저히 물든 한국 기독교에 더 이상 아무 희망이나 미련을 갖지 말고 깨끗이 절연선언이라도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미국 복음주의 진영과 트럼프의 정략적 유착관계와 위선에 대한 뉴스위크지의 분석 기사를 미국이나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과 지도자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나르시시즘에 취해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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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7유형 -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

         네 번째 


핵심동기 : 기쁨

자신의 시각 : 즐거움, 열정, 호기심

타인의 시각 :회피, 다재다능, 낙관적



7유형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도취되는 나르시시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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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형 사람들은 에너지가 크고 역동적인 사람들입니다. 혼자 있는 것보단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계획도 실행에 옮길 때에는 친구, 동료 등과 같이 하며 끌어당기는 리더십도 강하지요.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얻고 싶거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여 상대방과 상의 없이 그만둡니다. 


사례 1> 7유형의 사업 아이템 전개도 : 

         ①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연달아 제안한다. 

         ② 구체성이 결여되어 완성된 적이 없다.

         ③ 주변 사람들이 7유형의 사업 아이템으로 힌트를 얻어 성공한다. 


7유형 사람들은 자신은 특별하고 옳고 선하며 예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내 식대로 하는 것이 용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나르시시즘입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책임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강한 자기애와 자기도취적인 성향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지나치면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항상 능력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타인으로부터는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판단 받습니다. 


한마디 코너: 

타인의 비판, 조언 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경청하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7유형 사람들은 감정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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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형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활발하고 잘 어울려 다니기에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머리형 사고 중심인 사람들입니다. 겁이 많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7유형 사람들은 삶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것을 유머로 재구성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두려워하고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며 슬픔을 감추려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힘들수록 발랄하며 지나친 활동으로 채우려 하지요. 그 활동은 탐닉으로 이어집니다.  


사례 2> 폭식, 폭음, 술, 낭비, 홈쇼핑 중독, 방탕 등등


7유형 사람들은 ‘잘못’에 관여된 사람들과 대면하기를 어려워합니다. 그와 대면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고 대면을 위한 힘도 갖고 있지 않지요. 이들은 직설적으로 얘기해야 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을 말할 때도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해달라고 대신 부탁합니다. 이러한 행동 양식은 주변 사람들에게 7유형을 수용적인 사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좋은 인상으로 비춰집니다.


하지만 7유형의 다른 사람을 대면하는 어려움은 곧 자기대면을 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결국 자신도 타인도 책임을 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면 이들은 어린애같이 성가시게 애를 태우는 모습을 보이며 장황해집니다. 그래서 학생일 경우에는 산만한 학생, 어른인 경우에는 철없는 사람으로 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관계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밝고, 관대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합리화를 잘하고 절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여 질 수 있습니다. 



2.jpg사랑의 표현은통통 튀는 사랑입니다. 데이트를 할 때도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함께 어울리기를 좋아하지요. 이 때문에 상대방을 당황케 만듭니다. 


7유형 사람들은 폭넓은 지식과 함께 갖가지 이야기들, 일화 그리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깁니다. 담화가 심각해지거나 문젯거리로 치닫지 않고 가볍고 유쾌하기를 바랍니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자신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끝없는 기대와 요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 합니다.


















-7유형 부모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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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형 부모는 자녀와 친구 같은 사이입니다.

7유형 부모는 권위를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7유형 부모의 큰 장점이지요. 자녀의 성장에 따라 눈높이에 맞게 친구처럼 잘 놀아줍니다. 자녀가 황당할 정도로 공상에 젖어있더라도 그 의견을 존중해 줍니다. 7유형 부모에게 자란 자녀의 대부분은 자유롭게 자기의 소견을 거리낌 없이 얘기를 잘하는 편입니다. 


7유형 부모는 자녀의 긍정적이고 밝은면만 보려 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양육할 때 항상 좋은 일, 즐거운 일만 있을 수 없지요. 자녀가 커가면서 배우자와 양육문제로 의견 차이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녀의 교육문제나 친구와의 불화, 꿈 등으로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때 7유형 부모는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녀의 사건, 사고 등은 배우자에게 미루려 합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비추는 7유형의 부모는 어느 때는 너무 가벼워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부모와 대화를 하는 중간 중간 자녀는 부모가 집중하지 않고 마음이 다른 데에 있는 것 같아 진지한 대화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게 됩니다. 


은혜공동체엔 사람을 끄는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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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서울 도봉구 도봉동 은혜공동체


-1박목사와아이들식사1.jpg» 공동식당에서 식사하는 아이들과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박민수 목사


 늘 잔치같은 집이 있을까. 서울 안의 시골 도봉산 아래 안골마을에 이런 집이 있다. 49명의 대식구가 한집에서 살아가는 은혜공동체다. 

 은혜공동체 설립자 박민수(51) 목사는 2000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의 강의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할 때부터 ‘교회’대신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희대인근 교회에서 2007년부터 방과후학교 형태의 공동육아를 하고, 돌싱 두가족과 싱글남 싱글녀등 16명이 꾸린 연합가정을 꾸리게 했다. 이미 공동육아와 연합가정을 통해 ‘함께 사는’ 단맛을 안 교인들은 모두 함께 살 날을 손꼽아왔다. 그리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교인들이 힘을 모은 공동주택에 지난 8월 입주했다. 


 드디어 교회와 삶터가 분리되지않고 함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찬들조차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처럼 함께 경건하게 살려면 숨 막히지않을까’라고 우려할 법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층마다 여러개 방들과 연결된 거실과 부엌이 있는 5개층 모두 놀이터이자 수다방이다. 지하 공동식당 옆 다락방에선 아이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댄다. 2층 식탁에선 어른 세명이서 철학책을 읽고 독서모임중이고, 3층 거실에선 이곳 초중고 홈스쿨 교사와 아이들이 지리산 종주 계획을 짜고 있다. 직장맘들도  아이들과 살림은 당번에게 맡기고 이웃들과 대화하거나, 밴드실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실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까지 퇴근해서도 집안일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파김치가 됐던 그들로선 유토피아도 이런 유토피아가 없다. 공동식당에서 하는 저녁식사도 살림 걱정 없이 즐기니, 늘 파티 분위기다. 


 한집에서 울타리없이 지낸다는 공동체살이에 부담을 느껴 입주를 미룬 교인들도 퇴근후면 이곳에 와서 집에 갈줄 모른다.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과 노는데 여념이 없는 아이에게 ‘이제 밤이 늦었으니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 ‘더 놀겠다’면서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미입주 교인들은 인근에 2차 코하우징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


-스위스.jpg» 지난 한가위 황금연휴때 온공동체 식구들이 스위스로 여행을 떠났다. 하루종일 알프스를 트레킹하던 공동체식구들


-5인인터뷰.jpg-12인인터뷰2.jpg-거실.jpg-공부방.jpg-다락방1.jpg-룸1.jpg-룸2.jpg-박목사와등산팀.jpg-박목사와식사팀.jpg--은공전경.jpg


 지난 추석연휴 때 스위스 여행 때 교인 80명 가운데 직장일 때문에 불가피하게 못간 단 한명을 제외하고 79명이 동행한데서도 ‘조직의 단맛’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전교인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다니. 상류층들만 산다는 오해를 살만하다. 그렇지않다. 함께 하다보면 저비용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는게 가능하다. 황금연휴 4일간 스위스 여행도 1년전에 예약을 해서 1인당 200만원 내 해결했다. 이 집 건축비도 총 45억을 들었으니, 1인당으로 따지면 채 1억원이 안된다. 이런 비용으로 서울에서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이용한다는건 공동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식비를 비롯한 1인당 한달 생활비도  10만원이 안드니 공동생활이 주는 혜택은 믿기지않을 정도다.


  이곳엔 돌싱도 두가정이 있다. 이들은 부모 이혼으로 상처를 입을 수 었었던 아이들이 많은 이모 삼촌들의 보살핌으로 그늘 없이 자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비혼동거부부도 밖에선 이상한 눈으로 볼텐데도 이곳에선 잘 이해해줘 편하게 지낸다고 했다. 직장을 잃은 공동체원을 위해서는 공동기금을 빌려줘 떡볶기집과 인테리어공방을 내도록 도운 것도 공동체답다.

 은혜공동체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소통의 깊이’다. 교회나 동창회 등에서 피상적인 대화로 감정의 찌꺼기가 쌓이고 더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던 사람들도 이곳에선 속앳말을 터놓는 대화와 공감으로 얼굴빛이 환해진다. 그 비결은 기존 교회와는 다른 이 공동체만의 혁명적 시스템에 있다.



-박민수2.jpg» 은혜공동체 건물 옥상에 선 박민수 목사



 예배당과 같은 구실을 하는 이곳 지하는 세미나장 같다. 의자들도 원으로 배치돼 있다. 일요일에도 찬송가와 주기도문,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 예배는 이곳에선 없다. 대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10여명씩 소그룹 토론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도 인문학 강사를 모셔 강의를 듣거나 독서모임을 하거나 깊이있는 소그룹 토론을 이어간다. 한달에 한번은 전국의 산하로 야유회를 떠난다. 

 은혜공동체도 10년 전까지는 기성교회처럼 예배했다. 그러다 박목사가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토론식모임을 교회에도 도입했다. 토론엔 어떤 금기도 없었다. 그러자 신화적인 도그마는 붕괴됐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정수만이 남았다. 열린 토론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수처럼 인간을 존중하고, 이웃과 나누고, 약자를 보듬는 사랑에 집중하게 됐다. 이들이 자기끼리의 재미에 빠지지않고, 고문피해자돕기모임인 진실의힘과 끈을 맺어 조작간첩희생자들과 고문피해자들을  전국으로 찾아 위로하며 돕게 된 것도 이런 토론식 공부 후의 변화였다.  유서대필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와는 오는 주말 이곳 음악회에서 공동연주를 할만큼 ‘절친’이 됐다. 고문 피해자들조차 공동체사람들이 빚어내는 ‘케미’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또 하나 주목할만한 특징은 박목사와 일대일상담이다. 박 목사는 “예수께서 가르친 인간존중과 사랑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라며 “그러나 개인적인 성격과 심리 문제가 해결되어갈 때 그런 존중과 사랑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교인 숫자를 무한정 늘리는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보살펴 예수에게 나아갈 수 없게하는 걸림돌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목회라고 생각했다.  그가 ‘잘 나가는’ 교회 부목사직을 5년만에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목회에 대한 본질적인 의견차 때문이었다. 지난 한해동안 이 공동주택을 지으며 박 목사와 신자를 지켜본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기노채 이사장은 체 게바라 책을 늘 머리 맡에 꼿아두는 박 목사를 두고 “진정한 혁명가는 체게바라가 아니라 박 목사 같다”고 평했다. 


-12인터뷰1.jpg» 직장에서 퇴근한뒤 은혜공동체 건물 1층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공동체원들



-서은이벌1.jpg-서은이벌2.jpg-셋이수다1.jpg-수다중1.jpg-술자리1.jpg-아이들과식사.jpg-아이들방.jpg-아이와함께.jpg-예배당1.jpg-인터뷰아이들1.jpg-책장.jpg-충동아리.jpg-하이파이브.jpg


 박 목사는 상담전문가인 아내의 도움으로 심리상담을 공부하며 일대일 상담에 집중했다. 한명 한명의 상처까지 껴안느라 자신의 건강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심리상담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었다. 또 일부 공동체원들간의 갈등까지도 해소돼 소통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한 중학생은 “학교 친구들과는 농담 수준에서 대화가 끝나기 마련이고, 밖에선 어른들이 꼬맹이라고 무시하고 진지한 대화에 끼워주지도 않는데 이곳에선 중학생부터 어른들과 함께 소모임에 참여해 대화도 하고, 삼촌 이모들이 꼰대처럼 굴지않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줘 깊은 얘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마음에 맺힌 것도 다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돌봄은 박목사에게서 그치지않는다. 은혜공동체에서는 누구에게나 ‘가톨릭의 대부’와 같은 목자가 있어 힘들 때면 상담을 한다. 아이들도 자기 부모 외에 멘토가 정해져 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또한 개인간에 마음 속에 불편한 것이 있을 때 마음에 담아둬 개인과 공동체의 병을 키우지말고, 절대 하루가 넘기 전에 서로 만나 풀도록 하는 것도 은혜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소다.


 그토록 속앳말까지 터놓고 서로 친해지다보니, 시간적으로는 좀 더 많이, 공간적으로는 좀더 가까이 있고 싶어하는 갈구들이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엿을 붙여놓은것만 같다. 하하 호호 웃음이 그치지않는 은혜공동체가 바로 성경 시편이 말한 그곳이 아닌가.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노래 못해도 충분히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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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음치인줄 익히 알고는 있었는데, 이제 보니 박치까지 하시네요” 몇 해 전 

도반 스님이 건넨 핀잔이다. 어느 불교 행사에 의식 집전을 하는데 반야심경을 따라 하는 불자들이 들쭉날쭉하는 목탁 연주에 박자를 맞추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아, 내가 음치와 사이 좋게 박치까지 겸비했구나. 서툴다 못해 아둔한 품새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 노래는 단연 압권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소풍날 폭우가 쏟아지를 기도했다. 음악시간은 가슴 졸이는 시간이었다. 중학교 시절 2년 동안 교회에 다녔는데 간절한 신심으로 찬송가를 부르면 주변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절에서는 노래하는 고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어인 찬불가? 지독한 음치이기 때문에 대흥사에서는 후배 스님들이 의식할 때 염불을 크게 하지 말라고 조심스레 주문하기도 한다. 이렇듯 매사에 사는 일이 어설픈지라 ‘치’(癡)에 해당하는 항목이 여러 개다. 간단한 조립도 못하는 기계치, 수없이 가본 길도 못 찾는 길치, 열 번 이상을 만난 사이인데도 장소와 옷이 바꿔지면 몰 알아보는 사람치, 내가 쓴 글씨를 며칠 후에 못 읽는 글씨치. 그래서 이십대 초반에 승복 입고 타자 학원에 다닌 적도 있다. 오죽하면 서예 선생이 “스님같이 재능 없고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가르치기를 포기했겠는가. 그리고 방과 옷장을 단정하고 체계적으로 못 챙기는 정리치이기도 하다, 


 악기 하나쯤은 배워 연주하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다. 누구는 조선 후기 이덕무가 말한, 책보는 일에 재미 들렸으니 간서치라고 위로하기도 하는데 세상 물정에 어둡고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니 그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말하고 글 쓰는 재능마저 없었다면 아마 부모님을 원망하고 인생을 절망하기도 했을 것 같다. 


어떤 재능이 있으면 세상 사는 일에 매우 유익하다. 자신도 즐겁거니와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예능과 기예에 능한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럽다. 그런데 어느 때 우연히 부안 내소사의 혜안 스님의 시를 접하고 생각을 바꾸었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일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선사는 ‘멋진 사람’이라는 시에서 말하고 있다. “봄이 다 가는 날 떨어지는 꽃을 조문하고/귀촉도 울음을 귀에 담는 사람이라면/구태여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노래을 못해도 감흥에 젖어 흥겨울 수 있고, 글을 못 써도 책을 읽고 내용과 의미에 공감할 수 있다. 누구든지 마음 다해 눈을 뜨고 귀을 열면 온갖 아름다움과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감수성이라는 특별한 재능. 감성지수를 높이는 일이 최고의 재능이고 복락이겠다. 그래서 선사는 이렇게 노래했나 보다. 산창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을 아니 배워도 좋고, 세수한 물로 화분을 적시고 난초 잎을 손질할 줄 아는 이라면 굳이 화가가 아니라도 좋다고.

신은 존재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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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줄일지 모르니까."


   볼테르(1694년~1778)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문학자, 계몽주의 운동의 선구자다. 파리에서 태어나 가톨릭 예수회 학교에서 궁부했다. 그는 반봉건적 풍자 때문에 당시의 정부에 의해 두 차례 구금됐다. 그 후 영국과 스위으 망명 생활을 했다.  런던 체재중(1726~1727)엔  로크의 철학과 뉴턴의 물리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철학적 입장은 경험론, 종교적 견해로는 이신론자()였고, 영혼이 특별한 실체라는 것을 부정하고, 지식의 원천은 경험에 있다고 했다.

 그는 무신론자는 아니었지만 봉건적 미몽과 종교적 광신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회는 진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관념이라고 하여 관념론적 사관을 드러냈다. 사회적 견해로는 반()봉건제를 원칙으로 했고, 빈부의 격차는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지만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주장했으며, 입헌군주제가 이치에 맞는 국가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년에는 공화제를 찬성했다.


'분수'를 모르고 날 뛰는 것은

엄마도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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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jpg


지난 6~70년대를 풍요롭게 살아 보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우리 집도 역시 남들처럼(?) 가난했었다. 김치찌개에 조금씩 넣어 먹던 돼지고기 말고는 아버지 월급날이나 되어야 후라이팬에 덩어리 고기를 한번쯤 구워 먹을 수 있었던 시절, 그래도 마당에는 작은 꽃밭이 있어서 꽃을 좋아하시는 할머니가 앞 줄부터 채송화, 봉숭화, 국화, 맨드라미, 맨 뒷줄 해바라기까지 키순서대로 골고루 심어 놓으셨다. 물론 한 켠에는 가지, 오이, 호박, 근대, 고추, 상추 등도 한 줄씩 차지하고 있었다. 한평 남짓한 그 밭에 이 많은 것을 심어 놓았으니 양이야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두부 한모, 콩나물 한봉지 외에는 성큼 사기 힘든 엄마에게는 큰 살림의 보탬이 되었다. 그래서 꽃밭을 즐기는 할머니와 야채 한 줄 더 심고 싶어하는 엄마와는 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있었다. 난 엄마가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수녀원 입회 후 어머니 생신에 집에 가면서 동생에게 ‘엄마에게 뭘 사드릴까?’라고 물으니 꽃을 사오란다 이 말에 나는 대뜸 ‘야, 엄마는 꽃 한다발보다 돼지고기 한근을 더 좋아하실걸’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남동생이 하는 말, ‘누나가 뭘 모르는 군,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꽃은 다 좋아해요’ 동생의 충고에 나는 후리지아 한 다발을 사가지고 갔다. 그 때 엄마는 소녀처럼 좋아하시며 ‘이 꽃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하시면서 꽃에 코를 부비면서 그 향기를 흠뻑 들이 마시기를 반복하셨다. 난 그 때 깨달았다. 우리 엄마도 가난한 살림을 쪼개면서 자식들 키우고, 조카들 뒷바라지 다하고 큰 집 제사까지 다 맡아서 지내던 여장부가 아니고 그냥 보통 여자였다는 것을....


 평생 농사만 짓던 할머니의 거칠고 오그라진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드린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시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언니 매니큐어를 한번 훔쳐 바른적이 있는 데 그 때 아버지가 커서 기생되려고 그러느냐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고 대드는 딸을 번쩍 들어 여물통에 집어 넣으셨단다. 그 충격으로 매니큐어는 커녕 화장품 한번 발라본 적이 없는 데 결혼하고 좀 여유가 생겨 화장을 좀 했더니 퇴근한 남편이 ‘너 남자 생겼냐’며 손찌검을 하더란다. 그 이후 할머니는 정말 한 번도 치장을 해 본 적이 없으시단다. 


 처음에는 거절하시더니 며칠 후 부터는 날마다 새로운 색깔로 칠해달라며 수줍게 손을 내밀고 사진을 찍고는 하셨다. 주말에 방문하는 두 아들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그들은 ‘에이,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하셔요’ 그래서 내가 ‘아들들이 뭘 모르는 군, 늙은 여자나 젊은 여자나 예뻐지는 것은 다 좋아해요’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이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나온 반짝이 들어가 있는 매니큐어 한 셋트를 사왔다. ‘수녀님, 저희 엄마같은 분들에게 예쁘게 칠해 주세요’ 그러신다. 


 힘들고 가난하게 살던 시절 여자이지만 악착같이 여장부로만 삶을 살아내셨던 우리들의 어머니들, 할머니들에게 여자를 돌려드리고 싶다. 



나는 지금 해야할일을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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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임근기자.jpg» 산에서 쓰레기를 주어 내려오는 한 등산객. 사진 박임근 기자


가을 산을 오릅니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도 지나고 서리 내리는 상강이 내일 모레라지만 도봉산 계곡은 붉은 단풍들 사이로 군데군데 비치는 아직 푸른 잎들이 오히려 스산하고, 쉬임없이 지이-하고 울어대는 가을매미 소리 내 귀에 가득합니다.

萬木迎秋氣 (만목영추기) 온 나무들 가을 기운 맞이하여

蟬聲亂夕陽 (선성난석양) 매미소리 석양에 어지러운데

沈吟感物性 (침음감물성) 생각에 잠겨 세상 이치에 감응하며

林下獨彷徨 (임하독방황) 숲속을 나 홀로 거니네

영조 때 여성 성리학자 강정일당이 지은 <廳秋蟬(청추선)>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가을매미 소리를 듣다라는 이 시의 알짬은 沈吟感物性이라는 대목입니다.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감응한다는 성리학적 사유로, 봄에 파랗게 돋아난 새 잎이 가을되니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도 이제 저 울음 그치면 흙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 이치에 내 어찌 감응할 겐가.

만장봉을 향해 오르는 산길엔 늘 그렇듯 누군가 버린 사탕 껍질이며 음식 싸온 비닐봉지들이 굴러다닙니다. 나는 이걸 열심히 주우며 버린 자들 욕을 합니다.

같이 가던 친구가 보다 못해 내게 한마디 합니다. “욕을 할 거면 줍지를 말든지, 주울 거면 욕을 하지 말든지. 욕해서 쓰레기 주운 공을 도루묵으로 만드네.”뭐 딱히 공을 세우려고, 불가의 표현으로 착한 업을 지으려고 줍는 건 아니지만 친구 말이 옳지요.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인 게 세상 이치입니다. 쓰레기를 보면 그냥 주우면 될 걸 가지고 그걸 버린 이를 욕하고 투덜대는 건, 사탕 껍질을 버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있기 마련이라는 세상 이치에 감응하지 못하는, 세종 임금 말씀 마따나 어린 백성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 칭찬받으려고, 혹은 착한 업을 지으려고, 혹은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자긍심에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길에 떨어진 사탕껍질을 줍는 것.


금강경에서는 이 경지를 이렇게 가르치더군요.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마땅히 어디에도 머문 데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우리 마음은 늘 그 대상이 되는 모양이나 소리, 개념을 좇아 그것에 매이는 게 상례여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낸다는 게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의 이 말씀보다는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이 내게는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더 쉬워 보입니다.

“To action alone hast thou a right and never at all to its fruit; let not the fruits of action be thy motive; neither let there be in thee any attachment to inaction.”

너는 행위 그 자체를 할 권리가 있을 뿐 그 행위의 열매를 누릴 권리는 없다. 행위의 열매를 네 행위의 동기로 삼지 말아라. 나아가 네 안에 아무런 행위도 않으려는 집착을 가져서도 안 된다.

행위의 결과에 개의치 말고 그냥 행하라는 <바가바드 기타> 247절의 이 말씀은 이 경전 전체의 핵심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디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결과를 중시하는 정치의 장에서 행위하면서도 늘 이 구절을 되새겼습니다.


착한 일 해서 천당 가려는 게 아니라, ‘그냥착한 일을 하라는 이 가르침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알려 주셨지요.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만장봉 옆길을 돌아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내 바지 뒷주머니와 배낭 옆구리는 주운 빈 페트병이며 종이컵, 사탕 껍질로 제법 불룩해졌습니다. 이거 하나 주울 때 마다, 그 버린 자들을 욕해대거나 아니면 내가 이렇게 멋진 놈이야 으스대지 말지언저.

그냥내가 할 일을 하였을 뿐인 겁니다


 이 글은 <공동선 11,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마음 아픈 사람과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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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회 잡지에 실린 간증이다. 
주인공은 여류 문학가였다.
그녀가 하는 일은 집에서 시간나면 글쓰는 일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귀한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다가 
교통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다. 


그녀는 충격으로 깊은 슬픔에 빠졌고 
절망에 빠져 세상을 멀리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치료받아도 차도가 없고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나봐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폐인처럼 되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 데 
그가 보다 못해 그녀에게 교회에 출석할 것을 권유했다.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왔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병원다니고 여행다녀도 안 낫던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다. 


"교회에서 어떻게 했길레 병이 나았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교회의 한 신앙모임에 들어가 일곱, 여덟명과 함께 
가깝게 신앙생활을 했는 데 그 모임이 그녀를 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신앙 모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다만 모일 때마다 그들은 나를 끌어 안고 울었습니다. 


자식잃고 버림받은 불쌍한 나를 끌어 안고 말없이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이상했지만 점점 그들의 진심에 마음을 열었죠. 
그렇게 몇 달 서로 울다 보니 내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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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상처 받은 사람이 오면 
긴 말이 필요없습니다. 
충고도 필요없습니다.
설교도 훈계도 필요없습니다. 
같이 끌어 안고 울면 됩니다. 
울다보면 풀리고 치료되고 회복됩니다.

평화에도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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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추기경-.jpg


   영화 <로메로>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세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엘살바도르 로메로대주교의 ‘절친’이 방한했다.  로메로가 1980년 3월 24일 미사 도중 군부독재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4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산살바도르교구의 지도자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75)이다. 사춘기 때 로메로대주교를 만나 사망할 때까지 군사독재에 함께 항거한 그는 로메로의 일기장에 38번이나 언급돼 있을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로메로를 ‘나의 친구’라고 표현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지난 4일 서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연 ‘2017한반도평화나눔포럼-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에 남미의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7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만났다.


 그는 “엘살바도로에선 로메로가 최초의 복자(성인으로 시성되기 전단계)인데, 한국은 수많은 순교성인이 난 땅”이라며 먼저 ‘순교자의 나라’에 온 감격을 표했다. 차베스 추기경은 로메로가 암살 당하기 전에 ‘저는 죽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암살자를 용서합니다. 저를 죽인다면 저는 엘살바도르인들 속에서 부활하겠습니다’고 한말을 다시 언급하면서 주교로 임명될 당시 한 피정에서도, 암살 당한날 강론에서도 로메로가 ‘겨자씨’ 비유를 든데서 그가 ‘순교’를 택한 사실을 전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자신의 삶만을 챙기면 생명을 잃겠지만 겨자씨가 땅속에서 죽는다면 새싹이 되고 열매가 된다’고 했듯이 로메로도 ‘조그만 겨자 씨앗’이 되길 자처했다는 것이다.


 올해 엘살바도르 사상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그는 엘살바도르의 12년 내전을 종식하는 데 결정적 중재자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로메로 대주교의 순교 후에도 1984~1989년 5차례에 걸쳐 진행된 군부 정권과 반군  사이의 협상을 끌어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양측은 1992년 결국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그는 유일하게 5번의 협상테이블에 모두 참석해 평화협정의 모든 과정을 증언할 수 있는 산증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차베스 추기경에게 한반도 문제의  중재 역할을 맡겼다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에게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때여서 이 보도는 더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외신과 관련해 “저처럼 연약한 추기경이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웃으며 공식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경험을 세심하게 소개했다.


 “우리는 중재에 앞서 먼저 3가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첫째 그리스도적 평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둘째 인간의 권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셋째 어떻게 중재자의 역할을 할 것이냐’였다.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 주교좌성당에서 강론 때마다 가르쳤다. 첫째를 위해선 인내와 대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둘째는 군부독재에 의해 짓밟히고 있어서 반군과 중재에 앞서 인권을 되찾기 위해 예언자적 선포가 필요했다. 그 선언은 사막에 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점차 첫째 둘째 여건이 나아져 막상 중재를 하려했을 때 반군과 한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헌법 위반이었다.”


엘살바도르-.jpg»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희생된 엘살바도르 국민들(위)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시민들(아래)


로마로와빈민-.jpg» 빈민의 벗이었던 생전의 로메로대주교


로메로와군인-.jpg» 영화 <로메로>에서 총을 둔 군인들의 위협에 맞서고 있는 로메로 대주교


 그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을 때 당시 대주교가 ‘법이란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에 인간에게 봉사해야한다‘며 헌법 개정을 이끌어내 협상에 나서도록 했음을 회고했다. 그런데도 평화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었다고 한다.

 “군부와 반군만 있는게 아니었다. 그들과 미국과 러시아 그 한가운데 엘살바도로 국민들이 있었다. 무기는 외국에서 들여왔지만 그 무기로 인해 죽는 사람은 결국 엘살바도르 국민이었다”

 그는 “이번에 판문점을 방문해서도 그런 똑같은 상황을 목도했다”며 “여기서도 전쟁이 나면 죽는 사람은 한국인들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않으려면 어떻게든 남과 북이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야하고, 평화를 향한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만들어가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곳 성당에서 전례를 하며 한국장인들이 한땀 한땀 수놓은 화려한 제의를 받아입었다. 그런 옷도 장인의 영감과 노력, 창의력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살기 위한 평화를 만드는데 얼마만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한국인들은 무엇이든 너무 ‘빨리 빨리’만 하려든다.”

 차베스 추기경은 “너무 서두르지말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대로 우선 멈추는 것을 배워 침묵을 내면화하고, 하느님을 향해 내면을 열고 묵상한 뒤 활동에 나서야 한다”며 “먼저 내면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뒤 행위에 나서라”고 권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취임 직후 멕시코와 국경에 장벽을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을 들려주며, 그런 다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순교한 로메로 주교의 선배 순교자들이 많은 한국인들이 그런 순교 정신을 따른다면 멋진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는 날기 위해

64세에 죽음 무릅쓴 구법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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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현 스님은 죽음이 거의 확실하고 생존 가능성은 만분의 일에 불과한 여행을 왜 감행했을까. 그것도 당시로는 노인인 64세에 말이다. 법현 스님의 구법여행 이야기는 정년 퇴직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가 서역을 향해 사막을 지날 때 머리 위로 새 한 마리 땅에 짐승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사방으로 아득히 펼쳐진 사막에서 도대체 어디쯤 사람 사는 곳이 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태양을 방위 삼고 해골로 이정표를 삼을 뿐이었다.사막의 열풍과 악귀들이 여러 차례 출현하면서 우리 앞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다.법현 스님이 타크라마칸 사막을 지나면서 남긴 기록이다.


조선은 오백년간 주자의 성리학을 추종하였다. 그러나 주자의 삶과 덕행을 찾아 복건성 무이암을 찾은 조선 선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무이구곡가를 흉내 낸 가사를 읊조릴 뿐이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이후로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은 기록이 전하는 것만 180명이 넘는다. 그들은 중국에 없는 불경을 구해오기 위해 서천취경이란 이름으로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떠났다. 중국의 불제자들은 붓다가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고 처음 설법하고 열반에 드신 사대성지를 직접 참배하기 위해 구도의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인도 구법승중에 여행 기록을 남긴 3대 구법승이 있다.(그중에 제일은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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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기를 남긴 법현 스님 대당서역기를 남긴 현장 스님, 대당서역 구법고승전을 남긴 의정 스님이 그분들이다. 중국불교에는 수많은 고승들이 출현했지만 선승 신승보다 가장 중요하게 꼽는 분들이 바로 천축구법승과 역경승들이다.중국 승려로 최초로 인도를 다녀온 이가 법현 스님이다. 현장 법사보다 200년 앞서 인도에 다녀왔다. 그가 쓴 여행 기록이 바로 불국기이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그가 인도로 떠난 때 그의 나이가 64세라는 것이다.인도로 떠난 목적은 중국불교에는 율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도에 가서 직접 구해와야 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떠난 것이다. 요즘은 경전도 율장도 책장에만 꼽혀 있고 펼쳐 보지도 않는다. 경전과 율장을 구해오기 위해 죽음의 길을 떠난 그들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법현은 11명의 도반들과 함께 천축으로 떠났지만 가는 도중에 두 명은 죽고 여섯 명은 되돌아갔다.두 명은 인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법현 혼자 살아서 돌아왔다. 법현의 순례는 13년이 걸렸다.부처님의 8대성지를 순례하고 중천축의 수도 파트나에서 3년 동안 경전과 율장을 필사하고 연구하였다. 중국 구법승으로 유일하게 사자국으로 불리는 스리랑카에가서 2년간 체류하면서 율장을 필사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풍토와 여러가지 불교행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인도 스리랑카등 미지의 나라 30여개국을 순례하고 필요한 율장을 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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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때는 육로로 갔지만 돌아 올 때는 해로를 이용했다. 해양실크로드를 통한 그의 귀로는 마르코폴로보다 900년 앞선 항로였다.중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77세였다. 법현은 그가 13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불국기를 저술하였다. 그리고 인도에서 건너온 불타발타라 스님과 함께 경전과 율장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법현이 번역한 경들은 대반니원경 6권, 마하승기율 40권, 미완으로 남은 장아함경 5부 등이다. 그는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필사해온 율장과 경전을 번역하고 86세 되던 해에 열반에 들었다. 참으로 희유하고 거룩한 삶이다. 


  법현은 동진시대의 인물이다. 속성은 공씨이다. 현재의 산서성 옹단현에서 태어났다. 삼 형제인데 두 형이 어려서 병을 앓다 죽었다. 막내까지 죽을까 두려워한 아버지가 절에 보내 출가시켰다. 그때 나이 세 살이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비구계를 받고 계율에 어긋나는 행실을 하지 않았다. 64세가 되던 해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참배하고 중국에 없는 율장을 중국에 전하고자 하는 서원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동진 홍시원년 서기 399년이었다. 법현의 삶과 불국기의 내용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으면 ㅡ실크로드고전 여행기 총서3번 불국기 ㅡ다정 김규현 역주를 보시기를‥

신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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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

삶을 의미있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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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더욱 따뜻함과 친해지고 싶어집니다. 공동체에는 나무 난로가 있습니다. 수시로 불을 피워야 합니다. 난로에 불을 피우려면 처음에는 두꺼운 종이를 여러 조각내어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잔가지들을 올려 놓습니다. 어느 정도 불이 올라오면 장작에 불을 붙이면 됩니다. 불을 피우는데 잔가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잔가지는 종이와 통나무 사이에서 불이 옮겨 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종이만 가지고 장작에 불을 붙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나무 난로를 피워야 하기에 자연히 잔가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잔가지가 있으면 호주머니에 넣고 와서 난로에 사용할 생각을 합니다. 잔가지가 눈에 잘 띄는 이유는 그것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통나무가 탈 때는 크고 둔탁한 소리가 나지만 잔가지가 탈 때는 빠르고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라벨(Joseph Mourice Ravel)의 “볼레로(Bolero)”에서 관현악기의 연주가 메인이지만 만약 타악기의 소리가 없다면 “볼레로”는 더 이상 볼레로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무 타는 소리를 듣노라면 라벨의 “볼레로”의 타악기 연주 그 이상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볼레로”에서 타악기가 빠지면 연주가 될수 없는 것처럼 나무 타는 난로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게 하는 잔가지들의 아름다운 리듬이 없다면 썰렁하고 손 시립게 만드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의미(意味)! 의미라는 한자어가 의미 있습니다. 의(意)는 ‘뜻의’입니다. 이것을 다시 풀면 ‘소리 음(音)’과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입니다. 의(意)라는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의 소리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음성으로 된 소리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미(味)입니다. ‘맛 미(味)’인 미(味)는 ‘입 구(口)’와 ‘아직 미(未)’가 합쳐져서 된 말입니다. 미(味)는 아직 입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맛인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맛을 알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맛이 그 속에는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意味)라는 뜻은 나타난 말 혹은 현상 속에 있는 참뜻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의미라는 글자에 대해서 늘어 놓아 보았습니다.

 

 아가(雅歌)서 2장 1~2절에는 시골뜨기 처녀인 술람미 여자와 솔로몬 왕과의 대화가 나옵니다. 1절에서 술람미 여자가 말합니다.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사론 평야에는 수선화, 들장미와 같은 야생화가 만발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으로 볼때 술람미 여자의 말은 자신은 아름다운 수선화와 같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매우 평범한 여자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문법적으로 직역하여 “나는 고작 사론에 핀 수선화, 산골짜기들에 핀 나리꽃이랍니다.”라고 했습니다. 2절은 이것에 대해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이 화답합니다.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가시나무가 복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시나무들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입니다. 술람미 여자는 자신을 사론 평야와 많은 산골짜기들 가운데 무수히 피어 있는 수선화 혹은 들장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솔로몬 왕은 다른 여자들을 가시덤불로 본 반면에 술람미 여자에게는 의미를 부여해서 백합화로 보았습니다.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릅니다.

 

 주님이 저에게 오셔서 의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났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눈에 보는 것, 손에 닿는 것마다 의미를 부여해 보세요. 그러면 생명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도 마른 잔가지였었는데 주님이 의미를 부여해 주셔서 마른 잔가지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포기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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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하지 않고 도중에 내던지는 것을 `포기한다'고 말한다. 일본어로는 '아키라메루'다. 너무나 한심하면서도 안타깝고 허무함이 느껴지는 말이라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은 단어 중 하나다. 

 그러나 일본에서 '포기한다'와 '밝힌다'의 어원은 같다. 무릇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명확하게'밝히면 '포기할  수 있다'는 의식이 보다 강하게 작용한다. 가령 나이 들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바랄지라도 '태어난 이상 나이가 드는 것'이 '명확'하므로 '노인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러 '사물의 본질을 명확하게 밝히다'는 전제는 잊힌 채 단순히 단념하고 버리는 것을 '포기한다'고 표현하게 되었다. 말은 늘 변화한다. 어떤 일이든 '명확하게'밝히면 조금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텐데 사람들이 '명확하게 밝힌다'는 전제를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면 깨끗하고 산뜻하게 포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밝혀야 좋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사물이나 자기 마음의 본질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가 오는 바람에 예정된 행사가 중지되었다고 하자. 그때 행사에 가는 것을 포기하려면 '날씨는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하필 비가 오는 거야", "기껏 준비했는데"라며 끊임없이 불평하게 된다.


 또는 내 경험상 다이어트를 포기할 때는 "나는 먹기 위해 살아, 지금은 식욕이 앞서", "흔히 남자는 죽지 않으려고 살을 빼지만 여자는 죽어도 좋다며 살을 뺀다고 말하지. 이제 나에게는 몸보다 마음의 다이어트가 더 중요해"라는 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밝혀두면 자기혐오에도 빠지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근성이 없다'고 비난받아도 당당하다.


 사물의 본질을 잘 관찰해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물의 본질이 명확해질 때까지 철저하게 몸으로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좌절할 때까지, 녹초가 될 때까지 해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포기하려면 철저하게 좋아하는 수밖에 없다. 몸이 부서져라 좋아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 명확해지면 포기가 가능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점이 명확해지면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패한 일을 포기하려면 해보는 데까지 해보라. 실패했을 때야말로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명확히 밝힐 기회다. "거기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그러니 실패했지, 하는 수 없다"라고 포기하고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면 된다. '명확하게'밝히는 작업을 꾸준히 하면 "당연해, 어쩔 수 없어"하고 포기하는 상황이 와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험담을 들어도 "그 사람은 험담하면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그러니 나를 나쁘게 말하는 것도 당연해"하고 납득한다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옳은 말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이해할 능력이 없으니 알 리가 있나"라고 생각해도 좋다.(하지만 이 방법은 상대를 무시해야 하니 추천하지는 않는다.) 또는 "다른 더 좋은 의견이 있을까 봐 상황을 지켜보는 모양이네. 당연히 지금 내 의견만 채택할 수는 없겠누나"라고 깨달으면 그 순간부터 조바심이 나지 않는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좌절해 의욕을 잃으면 일어설 수 없다. 일어나려면 좌절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는 공정이 필요하다. "하는 수 없지"라며 포기하고 일어설 때마다 "이건 이런 거였구나"하고 한 가지 본질이 밝혀진다.


스마트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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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원에 막 들어온 예비 수녀들에게 강의를 하는 중에 '디지털 경력서'를 써보라고 했다. 나와는 세대가 완전히 달라서 디지털 원주민인 이들 세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할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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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막상 그들이 쓴 디지털 경력서를 받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디지털 바다에 빠져 살아왔단느 사실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텔레비전에 묻혀 살았고, 어떤 이는 초등 저학년부터 폭력적인 게임에 빠져 살았단다. 심지어 어떤 예비 수녀는 "태아 때부터 텔레비전을 즐겼다"라는 표현을 썼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 텔레비전을 즐겨 보았다는 의미일 게다. 본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거의 '중독'이었다는 고백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덧붙인 말이 있었다.

"영적인 것에 눈뜨게 되니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되었어요."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순간부터 컨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줄었어요."


 현재 이들은 스마트폰 없이 수녀원에서 매일 매일을 기쁘게 살아가고 있단다. 더 높은 목적, 영적인 욕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은 게 아니라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포기하게 되더란다.


 포기한다는 것과 참는다는 것은 다르다. 참는 것은 유혹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억지로 안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한다는 것은 유혹을 느끼지만 지금의 이 유혹보다 더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행복을 찾겠다는 지향성을 스스로 의식할 때의 모습이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유혹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어쩌면 조금 외로웠는지도 몰라>(김용은 지음, 애플북스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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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을 다녀보면 한국만큼 핸드폰을 많이 쓰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럽에선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분들도 적지않지만, 한국에선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전동차에 타고 내릴 때조차도 스마트폰에서 얼굴을 떼지않는 이들이 많지요. 가히 심각한 중독 수준입니다. 자신이 중독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미국 뉴욕주의 기독교공동체 브루더호프에 머물면서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조차 핸드폰을 하지않고 살아가는 그들 모습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들을 보았지요. 스마트폰에 혼을 온통 빼앗겨버리지않은채 사람과 자연과 일 등 주위의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이지요.


 청소년 교육수도회 살레시오수녀회에서 살레시오사회교육문화원장인 김용은 수녀는 디지털 중독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말해줍니다. 그는 이런 중독된 습관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아둔 외로움과 슬픔, 고통과 분노로 얼굴진 내면의 거울 때문"이라며 "에스엔에스를 해도 외로움과 슬픔과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시간과 더 큰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애쓰면서 외로움을 감추고 심심함을 없애는 일이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내가 어떤 세상을 살아갈지는 바로 나의 습관에 달려있다"며 "이것을 알아차리고 깨어 바라보기 위해 그 습관을 솔직하게 마주해 외로움이 키운 습관들과 화해하면서 행복한 의식의 빛에서 자유로움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


늦가을 국화는 늦가을에 핀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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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JPG»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국화축제마당


노란 국화 옆에 하얀 차꽃이 피었더라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오고가며 걷는 100m 남짓한 도심 골목길이 주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담장을 따라 길게 놓인 여러 개의 커다란 화분에는 가을 열무와 갓 그리고 배추를 심었다. 작고 오래된 나지막한 한옥에 사는 노부부의 바지런한 손길따라 철철이 품종이 바뀌는 농작물 몇 포기를 지나가며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계절마다 여러 가지 채소들이 꽃노릇을 대신하며 회색 길 위에 푸른 생명력을 만들었다.

 

골목길이 끝나면서 빙둘러 높은 빌딩이 담장을 대신하는 종로 조계사 마당이 나온다. 거기에서 화려한 가을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제 국화축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늦가을 차가운 바람을 따라 그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선인들은 가을바람을 금풍(金風)이라 불렀다. 푸른 것을 노랗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국화는 본래 노란색이지만 그 덕분에 금국(金菊)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음력을 사용하던 시절 옛시인은 구월국화는 구월에 핀다(九月菊花九月開)’고 노래했다. 평범한 말이 오히려 더 긴 여운을 남기는 법이다. 양력으로 환산한 시월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는 국화축제를 알리는 홍보문구도 어느 새 10월이 후딱 지나고 보니 다소 바랜 느낌이다. 11월에는 그 표어를 볼 때마다 늦가을 국화는 늦가을에 핀다더라라고 읽어야겠다.


살다보면 꽃을 줄 때도 있고 또 받을 일도 있다. 그리고 꽃을 뿌릴 일도 더러 생긴다. 또 대규모 축제행사장에서 눈처럼 쏟아지는 종이꽃가루 세례를 받기도 한다. 그 옛날 우두법융(594~657) 선사는 새가 물어다주는 꽃을 받았다고 전한다. 당신은 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 명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고요한 모습의 아름다움에 반한 새가 감동하여 꽃을 올린 것이다. 아마 가을이었다면 국화꽃을 물어다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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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감동적인 순간을 팔만대장경은 하늘에서 꽃비가 내릴 때라고 묘사했다. 새가 물어다주는 한 두송이가 아니라 비가 오듯 쏟아지는 경우를 우화(雨花)라고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소나기가 지나가듯 잠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할 수만 없는 일이다.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드디어 묘안을 찾았다. 건물 이름에 우화를 붙인 것이다. 우화루(雨花樓)! 꽃세례를 받고 싶을 때 언제나 상상의 꽃비가 가득 내리는 그 누각의 처마 아래에 서성대기만 하면 될 일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무렵 화려한 국화마당을 뒤로 하고서 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어귀에 외따로 있는 화분에는 찔레꽃같은 하얀 차꽃이 몇 송이 피었다. ! 국화도 가을에 피지만 차꽃도 가을에 피는구나. 순간 10여일 전에 만났던 부산 범어사의 차나무들이 생각났다. 꽃과 열매가 어우러져 제대로 정원수 노릇을 하고 있다. 화실상봉(花實相逢)이라고 했던가? 꽃과 열매가 서로 한 가지에서 만난 것이다. 같이 있던 알쓸신잡형 도반이 한 마디 보탰다. 그 열매는 일년을 나무에서 보낸 묵은 열매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작년열매와 올해 꽃이 상봉한 것이다. 열매는 꽃을 만나기 위하여 일년을 기다린 셈이다.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말없이 보여준다.

 

국화의 화려함도 좋지만 차꽃의 소박함도 또다른 아름다움이다. 화분인지라 땅심이 부족한 탓에 열매 없이 겨우 꽃 몇 송이만 달고 있을 뿐이지만 나도 가을꽃이라며 도심 한 구석에서 작게 빛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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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jpg유형 -힘을 추구하는 사람 

첫 번째 핵심동기 : 힘 

자신의 시각 : 자신감, 정의, 리더십 

타인의 시각 : 강함, 지배욕, 냉혹






8유형 사람은 힘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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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유형 사람은 힘과 생명력이 넘칩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덩치가 크고 남녀 구분 없이 헤어 스타일이 웨이브 없는 커트를 선호하는 편이지요. 과묵하고 점잖은 8유형이 있는가하면, 어떤 8유형은 목소리가 크고 거칠지만 의사표현이 확실한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사례 1> 8유형 여자의 별명 : 여걸, 장군, 소머즈 *조신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8유형 사람은 세상을 ‘정글의 법칙’처럼 적자생존으로 바라봅니다. 세상은 전쟁터이자 위협적이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강한 힘이란 능력, 권력, 돈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말은 ‘힘 딸려, 돈 딸려, 딸려’ 라는 말입니다. 그 자체로 무력해지고 약해 보이니까요. 


사례 2> 맞고 들어온 아이에게 8유형의 부모는? ① 맞고 들어왔다고 야단을 친다. ② 싸우는 방식을 가르치거나 ③ 너도 가서 그만큼 때리고 오라 한다. 강하고 힘이 세다는 인상을 주는 8유형은 힘을 과시함으로써 에너지를 얻습니다. 어떤 곳을 가더라도 뒤에서 관망을 하며 본능적으로 누가 실세이고 힘이 있는가를 금방 알아챕니다. 그리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힘겨루기를 합니다. 남들의 약점도 즉각적으로 느끼지요. 


8유형 사람은 자신감이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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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주장이 강한 8유형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합니다. 이들은 “하면 돼, 됐어.” 등 주로 단호적인 말을 잘 씁니다. 피상적인 것, 연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자기에게 이유 없이 굽실굽실하는 것을 질색합니다. 에니어그램 유형 중 가장 독립적인 8유형은 자의든 타의든 의존적인 것은 아주 싫어하지요. 이들은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일은 과감하게 뛰어들 자신감이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당당해서 좀처럼 위축되지 않습니다. 8유형은 예측을 불허하는 경우라도 서슴지 않습니다. 실패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실패를 통해 더 배우고 강해지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례 3> 1971년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영국 바클레이 은행 회장을 설득시켜 돈을 빌리는 데 성공한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오. 한번 시작하 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오.” 8유형 사람은 자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물러서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하든 간에 열정을 다하며, 책임감이 무척 강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남들에게 강직하고 믿음직하게 보입니다. 


8유형 사람은 추진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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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유형 사람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처럼 강한 추진력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합니다. 현실 파악력이 뛰어난 이들은 진취적인 사고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해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사례 4> 소년, 소년의 가장 또는 장손의 ‘만학도’ : - 어릴 때부터 어른의 역할을 함. 사례 5> 8유형의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8유형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함께 성장하는 것을 추구하며 사람들을 잘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8유형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손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앙갚음을 합니다.

조계종에도 인물 있다는걸 보여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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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택스님.jpg»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서 스승 성철스님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제자 원택스님


 “1960년대 초 불교계 정화운동으로 비구승과 대처승들이 절을 뺏고 뺏는 충돌이 계속되자 조지훈 시인 등 지식인들이 불교계를 폄하했지요. 지식인들 눈에는 당시 뛰어난 고승도 없고, 힘만 쓰는 무식한 깡패같은 중들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을 했습니다.”


 ‘성철 스님(1912~1993) 지킴이’인 백련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74)이 백일법문 50돌을 맞아 그 의미를 들려줬다. ‘백일법문’은 조계종단 출범이후 해인사가 최초의 총림(강원·율원·선원을 모두 갖춘 대찰)으로 지정되면서 초대 방장에 추대된 성철 스님이 백일간 법문한 것이다. 이 법문은 성철 스님 몰래 제자들이 녹취해 녹음상태가 좋지않은데다 성철 스님의 경상도 사투리가 워낙 심해 풀어내는 것도 쉽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2년 <백일법문>이 상하권으로 출간된 이래 40만질이 판매됐다. 불교계 법문집으로는 놀라운 호응이었다.  


 원택 스님은 “최초의 총림 초대 방장으로 당대의 유명했던 전강 스님(1898~1975)과 청담 스님(1902~71)을 추대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해인사의 자운·영암·혜암·일타 스님 등 대중들이 뜻을 모아 당시 56살의 성철 스님을 추대했다. 첫 동안거때 성철 스님이 백일간 방대한 팔만대장경과 논서와 선어록을 회통해 법문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백일법문은 성철 스님이 ‘선(禪)과 교(敎)를 통해 중도(中道)로 일이관지해 설명한 것은 세계에서 내가 처음이다’고 할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백일법문>에 대한 고우 스님의 언급도 소개했다. 조계종 원로인 고우 스님은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야말로 불교입문서로서 세계 최고의 가치가 있다. 이를 반복해 읽어 중도를 이해하면 지혜가 나오고 참선을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올해는 ‘봉암사 결사’ 70돌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봉암사 결사’는 성철·청담·자운·보문·우봉·향곡·월산·종수·도우·혜암·법전·지관· 스님 등 당대의 젊은 승려들이 1947년 불교를 되살리기 위해 제대로 수행해보자며 각오를 굳게 다진 맹약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결사는 중단됐지만 당시 참여자가 훗날 조계종단이 1962년 출범한 뒤 4명의 종정과 7명의 총무원장을 배출해 명실상부 현대한국불교의 기둥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성철 스님이 있었다.


 원택 스님은 이를 기념해 오는 17일 오전10시30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기념관 공연장에서 ‘퇴옹성철과 현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를 연다. 또 성철선사상연구원은 불교인재원과 공동으로 백일법문 50주년을 기념해 동안거 기간 <백일법문> 공부결사를 추진해 12월 1일부터 내년 2월 23일까지 매주 금요일 저녁 서울 안국동 불교인재원에서 백일법문을 공부하며, 원택 스님이 개강일 <백일법문>에 대해 특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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