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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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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 아픈사람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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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앓는이에게 필요하다.”(마태 9,9~13)   

"건강한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다."


내 몸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아픈 곳에 손이가고 돌보게 하고 긴장을 갖게 하지요.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듯이 부모는 자녀를 모두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자식 중에 잘 나가는 놈, 부잣집으로 시집간 딸은 걱정하지 않지만 일이 안풀려 허덕이는 아들, 가난한 집안에 시집가서 고생하는 딸에 대해서는 언제나 마음이 놓이질 않아 애정이 더욱 깊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시지만 특별히 죄인으로 세간의 지탄과 손가락질 받는 사람, 병고의 아픔에 우는 이들에게 마음을 두시고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의 마음뿐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렇습니다. 성공하고 승리하고 성과를 냈을 때는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좌절된 상황에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이로서 행복과 기쁨, 축하받는 일에서보다 어려움 중에 고난 중에, 죄 중에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 복된 죄여!” 성 아오스딩은 죄중에 하느님을 생각하니 죄는 복된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성찰생활이란 중요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자책 자학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는 자리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죄를 짓고 실패할 이유는 없지만 이미 만들어져버린 일에서 좋은 일에 감사하고 고난에 자비와 기도를 구하며 신앙의 형제자매들에게 기도를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청을 받은 이가 많을수록 공동체의 기쁨은 큽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르침에 ‘수도원에는 아픈 사람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공동체는 아픈 형제자매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돕고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공동체는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수도원과 공동체는 기도로 성장합니다. 어려움이 생기고 재정이 없는 것도 하느님을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나가 힘들고 어려울 때 고독한 마음이 느껴질 때가 하느님께서 내 곁에 계신 순간으로 하느님의 기운, 인기척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은총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공동체도 가정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역시 하느님의 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경청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 중에서 고통 중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샬롬. (2017.9.21.) *  


오늘 소 3마리가 나갔는데, 요즘 생풀을 많이 줬더니 설사도 하고 수척해 진 것 같아 좀 그렇다. 소야 잘 가라. 음식이 되어 성체가 되는 거다.


바다가 넓고 바위가 굳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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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納百川 有容乃大 壁立千仞 無慾則剛

  (해납백천 유용내대 벽립천인 무욕즉강)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이기에 그 너그러움으로 거대하고,

  바위의 키는 천 길에 다다르나 욕심이 없기에 굳건하다.

 

   <통감절요(通鑑節要)>에서

인간이 더 두려워하고 잔인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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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왔으며 지속적으로 대형 포식자에게 사냥을 당해왔다. 인간의 몇몇 종들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를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가 올랐다. 그래서 생태께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년간 지배해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기 후진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지음,조현욱 옮김,이태수 감수, 김영사 펴냄)에서

신경질적 반응은 도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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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JPG» 일러스트 김대중



Q 저는 올해 서른살 된 딸이에요. 저와 엄마는 친하지만 친하지 않은 사이에요. 저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초·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바빠서 저에게 시간을 내주실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유년기는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상처로 가득합니다. 집에 오면 항상 혼자 있었던 시간과 부모님을 원망하던 마음은 여전히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엔 부모님의 관심을 받아보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적도 잘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기억에 그 당시 부모님께 칭찬 한번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스무살이 되던 무렵 사업이 잘 풀려서 부모님이 덜 바쁘게 되자 갑자기 안 하던 간섭과 관심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챙기지 못했던 죄책감에 대해 속죄하려는 듯 제 학점과 생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것은 간섭이 되었습니다. 저의 진로까지 결정하려고 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그때부터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정말 많이 싸웠지만 저도 서른살이 넘어가면서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어렸을 때 나를 내팽개쳐놓고, 왜 이제야 이러는 거야?’라며 부모님을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동시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느끼는 이중적인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엄마와는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지 못했고, 항상 엄마는 일방적인 ‘지시’ 비슷한 얘기만 합니다. 엄마는 무조건 그건 하지 마라, 그건 안 좋다, 걔랑은 만나지 마라 등등 본인의 의사를 강요하십니다. 걱정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건 이해하지만, 저는 입을 다물게 됩니다.



친구들이 저랑 엄마랑 통화하는 것을 듣고 상사와 통화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저는 보고하는 식, 엄마는 지시하는 식의 대화를 주로 합니다. 요즘 들어 엄마가 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죄송하게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격도 너무 안 맞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는 너무 못된 딸이구나’ 하는 생각에 괴로워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더 이상 원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고생하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엄마와의 관계가 나아질까요? 어떻게 하면 원망하는 감정을 없애고 엄마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비오는밤


A 부모가 원망스러울 만하네요.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것, 그로 인해 10대를 고독 속에서 보낸 것은 쉽게 잊히지 않을 기억입니다. 여유가 생긴 뒤에도 부모님이 자애로운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간섭과 지시로 딸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모 때문에 불편해질 때마다 과거 힘든 기억이 떠오를 테니까요. 당신은, 원망하는 감정을 없애고 사랑만 하기를 원하지만 저는 그런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양가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양가감정이란 상대에게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연민을 느끼면서 동시에 부담스러워합니다. 좋아하면서 또 어떤 면은 싫어하지요. 부모-자식이나 부부관계처럼 밀접한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경우 양가감정은 더 극심해집니다. 기대하고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도망치고픈 느낌을 만들고, 미워할수록 죄책감도 커지지요.


그런데 이상적 관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오직 한 가지 감정만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그래서 자기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어떡하든 없애고 싶어합니다.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오는밤님, 과거 외로웠던 기억, 그로 인한 원망, 지금 부모에게 느끼는 불편감 모두를 허용하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부모를 원망할 거야? 언제까지 속 좁게 굴 거야?’ 하면서 자신을 몰아붙이지 마세요. 자신을 미워하면서 상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죄의식으로 움츠러든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미움을 허용한 채로 사랑하세요. 정말 미워 죽겠지만 그래도 밉지만은 않은 것, 원수 같지만 자꾸 마음 쓰이는 것, 원망스럽지만 그리운 것, 그게 사랑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당신도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네요. 단언컨대 그것도 사랑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믿으세요.


이제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과 싸우지 마시고, 현재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해소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보세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일보다 엄마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서른 살이라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지요.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엄마와 적당히 소원해져도 괜찮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의 엄마와 소통하는 법,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법을 터득하세요. ‘날 내버려둬. 왜 이제 와서 난리야’ 하는 식의 저항은 별로 효과가 없었을 겁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예요. 내 얘기를 더 많이 들어준다면 엄마를 더 좋아하게 될 거예요. 지시하고 강요하면 엄마가 멀고 무섭게 느껴져요’처럼 구체적으로 그리고 끈질기게 자신의 요구를 피력해보세요. 엄마 중심의 관계를 모녀 공존의 관계로 조정하는 겁니다. 어쩌면 엄마도 당신과 소통하는 법을 찾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관계가 적절하게 조정되면 미움과 원망은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줄어듭니다. 훨씬 편안해지지요. 그렇게 당신의 환경을 적절하게 조정해보세요. 당신은 더 이상 10대의 무력한 딸이 아닙니다. 당신에겐 자신을 행복하게 할 능력과 힘이 존재합니다.


돈의 자장에 휩쓸리면

장애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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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8.jpg» 장애인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황규인 원장


서울 강서구 화곡6동 봉제산 아래에 발달장애인거주시설 교남소망의집이 있다. 발달장애인 105명이 다니는 교남학교도 이 안에 있다. 주민들의 반대로 발달장애인 공립특수학교 설립이 위기에 처한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와 같은 강서구 관내다.


 마당을 지나던 발달장애인 선희씨가 황규인(56) 원장에게 기우뚱기우뚱 걸어와 팔짱을 낀다. 그리고 전날 봉사자들과 함께 만들어 낀 팔찌를 자랑한다.  ‘몇살이냐’고 묻자 손가락 두개를 펼쳐보이며 해맑게 웃는다. 몸은 성인이지만 영락 없는 두살배기다. 이곳엔 선희씨같은 발달장애인 29명이 사랑, 믿음, 온유, 화평 4개의 가정을 이뤄 살고 있다.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무연고’다.  뇌병변과 지체 중복장애인도 6명이 있다. 대부분이 중증인 1급장애인들이다.

 건물 어디에선가 알듯모를듯한 목소리들이 스치듯 지나가고, 가끔씩 이상한 괴성이 터진다. 황 원장은 “그런 소리들도 다 거주(장애)인들이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란다. 그들에겐 언어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 소음은 이곳에선 오케스트라의 반주 정도다. 거주인들이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다르다. 어떤이는 가게에 들어가 2천원짜리 물건을 들고는 1천원만 내고 가져가겠다고 떼를 쓴다. 그럴 때면 지도교사가 달려가 제지한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말한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너거나 바지춤을 내리고 있는 것을 제지하다보면 장애인을 학대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그 정도는 자해하거나 상해를 입혀 피를 줄줄 흘리는 사고에 비하면 양호하다.


 발달장애인들이 시설 안에서 사는 것도 이처럼 녹녹지않다. 그런데 28명은 밖에 나가 산다. 대부분 빌라를 빌려 서너명 장애인이 한명의 지도교사와 한가정을 꾸린다. 그런 집이 지하철 화곡역에서 걸어서 20분 내 거리에 무려 16채다. 강서구청 옆에 있는 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가 그룹홈을 지원하는 본부구실을 한다. 인근엔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열림일터도 있다. 모두 교남소망의집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격리된 장애인 시설이 설립되는 것도 주민 반대로 어려운 마당에 어떻게 장애인들이 일반인들 속으로 들어가 살수 있게 됐을까. 일반인들 속에서 일반인들처럼 자고 먹고 일하고 살아가는것은 많은 장애인들의 꿈이다. 그러나 이들을 ‘관리’하는 누구도 장애인들을 시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달가워하지않는다. 발달장애인들이 밖에 나가면 크고작은 골칫거리들이 많아질 게 틀림없으니 직원들도 공무원들도 일이 번다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장애인의 부모들조차 “머리도 모자라는 아이들을 밖에서 살게 해 어쩌자는 것이냐”며 “돌보기 싫어서 내보내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황원장과아이들-.jpg» 몸은 성인이지만 지능지수는 어린아이같은 발달장애인의 손놀림을 보며 웃고있는 황원장



-예술치료.jpg» 예술치료의 일환으로 미술활동을 하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들. 사진 교남소망의집 제공


-선희.jpg» 황원장을 보자마자 보여줄게 있다며 잡아끄는 발달장애인 선희씨



  그렇게 무모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36년간 이곳을 지켜온 황 원장이다. 이곳이 1952년 그리스도정신의 실천을 표방하며 설립된 기관이긴하지만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목사가 아니다. 키 150센티미터의 단구의 평신도다. 이곳에서 25년간 일했다는 재활부 김진(48)팀장은 “황원장을 내가 만화로 그린다면 장애인들을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게 마련인 기독교 시설들의 목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가 조용히  장애인들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황원장은 늘 장애인시설의 주인은 시설장이나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니라 장애인들이라는 기준을 놓치지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도 못할건데라고 교사 입장에서 하지말고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일단 장애인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설명해주고 교감하며 그들 편에서 그들의 욕구를 최대한 들어주게 한다는 것이다. 훗날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로 알려져 세상을 분노케한 장애인특수시설 광주 인화학교 아이들이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던 2004년 이곳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인권실천 기준이 정해졌다. 이 기준은 우리나라 모든 장애인시설 인권 기준의 표준이 되었다. 


 그가 벌인 일들은 하나같이 처음엔 공무원들도 원하지않고 기준도 없어서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없던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관리자의 입장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하지않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룹홈도 이곳에서 재활교육을 받은 뒤 밖에서 일을 해 39만원의 월급을 받아온 장애인을 도울 생각을 하다 시작하게 됐다. 장애인이 어렵게 번 돈을 어떻게 관리해줘야할까, 장애인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해야하고, 식당 불이 꺼진 이후에 들어오는 그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하다가 떠올린게 그룹홈이었다. 1999년 처음 그룹홈을 만들때는 장애인들 이름으로 집을 얻는 것 자체가 어려워 그가 살던 집을 내주었다. 그리고 자매장애인들의 시설 밖 생활 안착을 위해서 그는 매주 이틀씩 3년간이나 그룹홈에서 함께 지내주었다. 발달장애인들이 해내기 어려운 돈계산도 돕고, 주위 사람들에게 따돌림이나 무시 당하지않게 어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엿다. 

 황원장이 두딸로부터 ‘엄마는 도대체 누구 엄마야’라는 하소연까지 들으며 이렇게 시설 밖 그룹홈을 만들어준 것은 그들에게 ‘가정’을 만들어주고싶어서였다.



-교남.jpg» 서울 지하철 5호선 화곡역(강서구 화곡동)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교남소망의집 발달장애인 거주지와 일터들



 “표현하지못하는 장애인들도 실은 부모와 가족을 몹시 그리워하지요. 그래서 처음엔 방송에도 내 부모를 찾아줬어요. 부모를 보고나면 집에 가겠다고 하는데 부모는 데려가지도 않고 나중엔 연락을 끊어버린 일이 많았지요. 장애 자체만으로도 삶이 너무도 버거운데 두번 세번 버림 받은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어요.”

 그래서 그는 장애인들의 혈육찾기를 포기하고 자기가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을 택한 것이다. 재활이 가능한 장애인들 입장에서 일할 곳이 필요해서 열림일터를 만들었고, 일반인들보다 일찍 노화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농사도 짓고 요양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해 만든것이 파주 어유지동산이었다. 


  시설 안에서만 장애인들을 돌보기에도 예산이 빠듯한데도 늘 시키지도 않는 일을 앞서 하느라 이곳에선 재활용품까지 주워서 팔아가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왔다. 최근 700여개 시설이 가입돼 있는 전국장애인복지시설협의회 회원들이 전례없이 그를 95%의 찬성으로 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그의 선구자적 업적들을 인정한 때문이다.

 그런 선구적인 노력조차 성과보다는 더 많은 골칫거리를 낳는게 이 분야 일이다. 장애인들에게 괴성같은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 사람들을 놀라게하지않도록 아침 7시전에는 창문도 열지말라고 하고, 옷을 늘 깔끔하게 입도록하고, 인사도 잘하도록 교육 또 교육하지만, 장애인 혐오자들이 그룹홈 앞에 쓰레기나 썩은 젖갈을 일부러 버린 것을 보면 속이 상해 잠을 이루기 어렵다. 얼마 전엔 그렇게 성교육을 시켰는데도 그룹홈에 사는 여성장애인이 동네 할아버지 꼬임에 넘어가 노래방과 모텔까지 따라가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장애인 자식을 버려놓고는 어렵게 자립기금을 마련한 것을 알고는 연락을 해와 그 돈을 뺏어가는 부모들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황글씨.jpg» 황규인 원장의 손글씨



 그런데도 그는 장애인들을 장애인들만의 담장 안에 가두지않고 일반인들 속에 섞여 일반인과 장애인, 부자와 빈자, 남,녀,노,소가 어울려사는 세상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울려 살게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장애인들이다. 그는 “속일줄도 거짓말 할줄도 모르고 이렇게 순수하게 어린이 같은 사람들을 보았느냐”며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성경구절을 들려주었다.

 교남소망의집에서 만들어졌다가 담장 밖 인근에 세워진 교회도 있고, 일요일이면 이 안에 와 예배 드리는 목사도 있지만, 그는 장애인들이 여러 교회의 일반인들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그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했잖아요.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크리스찬들도 이 말씀대로 해볼 수 있게 그들 곁으로 보내줘야지요” 

  장애인들을 시설이나 장애인교회 안에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삶터로, 다양한 교회로 일반인 속으로 내보내서 함께 살아가게 하는 것이 그가 믿는 진정한 ‘복음화’다.


마음이 명료해지면 말도 명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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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jpg


제 심리치유공간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인들입니다. 언어로 반영되는 문화의 차이가 늘 흥미로왔지만, 이제는 더욱 언어를 빌려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세심한 움직임에 촉수를 세우게 되지요. 최근에 저를 찾아오는 한 한국인 내담자는, 한국에서 살 때,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면서 세상의 부정한 것들은 눈감고 보지말라고 교육받아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주눅들어 살아왔었는데, 이제 눈 똑바로 뜨고 보는 것을 보는대로, 들은 것을 들은대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한국에 온 것 같아서, 독일에 사는 자신에게 자존감을 일깨워준다며 감동의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외면하느라 돌같이 굳어버린 가슴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50여년을 다져온 억압의 땅은 그리 쉬이 풀리질 않지요. ‘마음을 보이면 당한다는 생각은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훈련되어왔기 때문에, 한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에서 조차 그 사람은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괴롭다고 합니다. 게다가 직장에서묵묵히 잘 하고 있으면 알아주겠거니라는한국식기대는 먹히지도 않고, 자기가 한 일이라도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스스로 내세워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오히려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속상해 합니다. 겸손이라는 미명하에 자기를 당당히 내세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사람과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지요. 독일에선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에, 생각과 느낌을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청소를 해놓고도, 케잌을 구워놓고도, 너를 위해서 내가 오늘 이렇게 저렇게 했어 라고 말을 하고, 또 상대방은 거기에 응당한 표현을 말로 해야 합니다. 내가 이런 저런 구상을 해서 이렇게 저렇게 성과를 올렸어, 알겠어? 라고 짚어주어야만 합니다. 그저 빙긋이 웃어주거나, 슬며시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하는 동안 상대방은 이미 실망했거나, 다른 사람이 내 성과를 차지해버릴 수도 있게 되죠.


-image2.jpeg» 이승연 화백의 그림


언어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생겨났겠지요. 혼자서 생각만 하고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몰랐던 것이, 막상 말이나 글로 옮가려면 두리뭉실했었다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적당한 표현을 찾아 끙끙거리게 되고, 언어의 한계성도 느끼지만, 그러면서 생각이 다듬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힘든 것은 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 마음이 명료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음’- 서양에는 없는 아주 멋있는 우리 말입니다. 영어의 mind나 독일어의 Geist마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 마음이란 말이 있다는 것은 서양인들과 달리 정신적 활동인 생각과 감성을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마음은 현대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눌한 말이라도, 또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해도 전달하고 싶은 것이 명료하면 소통은 가능합니다. 자기를 당당히 내세울 수 없는 것은 마음 속에 다른 무엇인가를 욕망하기 때문인 것 같고, 진정한 겸손이 아닌 자기비하는 자기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그림이 마음 속에서 일그러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말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자기자신이나 남에게 갖고 있는 뒤틀린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남은 나를 어찌할지언정 내 스스로에게는 거리낌이 없을 수 있지않을까요. 그게 자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주눅들 필요가 없지요.


급하게 이룬 공로는 쉽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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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히 길러낸 인물은 반드시 요절하고, 급히 쌓은 공로는 반드시 쉽게 무너지니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계획하여 갑자기 만들어 낸 일은 모두가 원대한 일의 밑천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가장 신령스럽지만 그래도 3년마다 한 번씩은 윤달이 끼어야 조화신공을 완수할 수 있다. 하물며 무상대도의 오묘함을 어떻게 급히 서둘러 이룰 수 있겠는가. 요컨대 공부를 축적하고 덕을 쌓아 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선림보훈(禪林寶訓)>에서 <영원습유(靈源拾遺)>에 기록된 내용으로, 홍영소무(1012~1070) 스님이 진정극문(1025~1102) 스님에게 한 말씀이라고 언급된 내용.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때도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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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가볍게 수락하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성이 없는 법이고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어려운 일을 맞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인이라도 일을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끝에 가서 어려운 일이 없게 되는 것이다."

 (부경약필과신, 다이필다난,시이성인유난지,고종무난 夫輕諾必寡信多易必多難是以聖人猶難之故終無難)


 <노자> 63장에서

역사를 만든 분들과 함께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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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잔치.jpg» 2017 한가위 밝은누리한마당잔치. 사진 조윤하 제공


풀무원 만드신 원경선 선생님이 아흔 넘었을 때, 집으로 찾아 오셨다. 어떤 모임에서 밝은누리 얘기 듣고, 괴산 평화원에서 아침 일찍 오신 거다. 첫 만남인데, 현미밥 맛있게 잘 지었다 칭찬하시고는 진지한 대화를 이끄셨다. 일제와 전쟁, 분단 아픔 속에서 품었던 꿈, 더불어 사는 삶과 평화를 말씀하셨다. 밝은누리 삶과 꿈을 묻고, 격려하셨다. 못 다한 생명평화의 꿈을 잇는 만남이었다


 몇 년 전 문동환 목사님이 오셨다. 아흔 되셨을 때다. 역시 첫 만남인데, 진지한 얘기가 이어졌다. 삼일학림 여는 잔치 때도 와서 축복해 주셨다. 어린아이처럼 말씀하신다. “여보, 여기 좋지 않소. 우리 여기서 살까!” 일제 식민지 백성의 희망을 키우던 만주 명동마을 어린이와 밝은누리 젊은이들의 만남은 서로를 새 희망으로 가슴 벅차게 한다


 민주화운동 어른이신 박형규 목사님도 아흔 넘어 오셨다. 전에 한번 뵌 적 있다. 사순절 금식기도 모임에서 밝은누리를 소개하고 얘기 나눴는데, “우리가 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런 교회야하며, 반가워하셨다. 아드님 부축 받으며 먼 길 마다 않고 와서, 살아오신 삶과 꿈을 나누셨다. 삼일학림 여는 잔치 때는 멋진 우리 춤으로 흥을 더해 주셨다.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생명평화의 춤이다. 오랫동안 마음이 울린다. 우리 삶을 보고, 모두 고맙소라고 인사하셨다. 처음 만난 이들을 남으로 보지 않고, 같은 뜻을 잇는 동지로 대하셨다. 모두 아흔 넘으신 때였는데, 계속 꿈을 꾸고, 우리 꿈을 궁금해 하셨다. 성령 받으면 꿈으로 산다. 아흔 넘어 불편한 몸이지만, 함께 꾸는 꿈 찾아 가볍게 사셨다

-한마당2.jpg» 2017 한가위 밝은누리 한마당잔치중. 사진 조윤하 제공



 지난 한가위, 강원도 산골에서 밝은누리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이 땅 곳곳, 먼 나라 영국에서도 와서 풍성한 평화를 나눴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어울림 잔치로 놀았다. 풍물은 언제나 흥겹고 신난다. 밴드공연은 환락과 신명의 경계를 넘나든다. 돈 주고 보는 잔치가 아니다. 정성껏 준비해 함께 펼치는 마당이다. 함께 사는 삶을 담은 창작곡이 많다. 절도 있는 기합과 격파가 이어지는 데, 다들 엄청 웃는다. 창도 하고, 단소, 피아노, 기타와 만돌린 등 다양한 장기를 펼친다. “그동안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살았니!” 생명은 이래저래 참 놀랍다


 동학과 화이트헤드 철학을 공부하고, 세계 곳곳에서 새 문명을 일구는 삶을 둘러본다. 명동마을과 명동학교, 용동마을과 오산학교, 가나안 이상촌과 농군학교, 동광원과 디아코니아자매회, 예수원의 영성과 삶을 돌아본다. 20세기 역사의 아픔을 뚫고 흘러온 희망의 물줄기다. 함께 품은 뜻을 더불어 사는 삶으로 펼치고, 삶을 토대로 가르치고 배운다. 노동과 기도, 역사와 철학수신이 하나 된 삶이다. 삶터, 마을에서 솟아난 샘물이 분단 갈등을 치유하는 물결이 된다. 한라에서 백두 넘어 온 누리 굽이쳐 흐르는 신명나는 생명평화 잔치를 가슴에 품는다.


호남 5대사찰서 자랑질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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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오대본산 이야기


화엄사 각황전 옆의 계단을 오르면 국보 제35호로 지정된 4사자 3층 석탑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석탑과 양식이 달라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특별한 석탑 양식을 보여준다.화엄사는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효성이 지극했던 연기스님은 3층탑을 4마리 사자가 받들게 하고 그 중앙에는 당신의 어머니를 모셨다.

그리고 맞은편에 석등을 이고 우슬착지,  오른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어머니에게 차공양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승상으로 조성하였다.


화엄사에서는 그런 연유로 이곳을 효대라고 부른다.


대웅전 뒷길을 따라 올라 가면 구층암이 있다.이곳의 선원  건물은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여 유명한 곳이다.천불전 앞에는 목재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낸 모과 나무에서 자라난 자식 모과나무가  어머니 모과 나무를 바라보며 황금빛 모과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금년 모과가 가장 많이 열렸다고 한다.구층암에서는 지리산의 야생차를 따서 제다체험을 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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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호남에는 송광사.선암사.백양사.대흥사.화엄사등 5대본산이 있다.


절집에 전해 지는 말이 있다.송광사 가서 계율 자랑하지 말고 선암사 가면 문장 자랑하지 마라.백양사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대흥사 가서 염불자랑 하지 마라.화엄사에 가면 주먹 자랑 하지 말라고 했다.


송광사는 승보사찰로 16국사를 배출했고 근대 효봉스님.구산스님.법정스님등  위대한 선지식들이 불교를  일으킨 곳이다.


선암사는 경운스님 같은 뛰어난 학승이 진진응스님.박한영스님같은 대강백을 배출하여 근대 불학의 최고봉을 이룬 도량이다.


그 맥은 작가 조정래를 통하여 이어지고 있다.조정래의 아버지 조종현 스님은 시조작가이며 일본 유학하고 돌아와 선암사 대웅전에서 최초로 결혼식을 올렸으며 선암사 아랫마을 에서 조정래가 태어났다.조정래의 형님은 조진래이다. 


백양사는 만암스님.묵담스님.서옹스님등 조계종과 태고종.법화종의 종정을 배출한 고불총림이다.운문암 선원은  내소사의 월명암.선운사의 도솔암과 함께 호남의 3대명당으로 이름난 곳이다.


대흥사는 의식을 중시하여 범패와 장엄의식을 자세히 가르쳤다.조선시대에는 13대종사 13대강사를 배출하면서 조선불교의 등불이 되었다.


대흥사 일지암에 머물던 초의스님은 다도뿐 아니라 선지가 깊고 불학에도 정통하였다.그는 범자와 단청.불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불가의 승려신분으로 시.서.화.차.향.에 일가를 이루어 신분계급을 초열하여 조선후기 아회문화의 꽃을 피운분이다.


화엄사는 주먹질을 잘해서가 아니고 임진왜란과 일제를 거치면서 저항정신이 치열했던 곳이다.정유재란때는 승군의 본영같은 역할을 했고 그 때문에 왜군에 의해 88개 암자와 함께 전사찰이 불태워졌다.


화엄사 출신 자운대사는 이순신 장군 아래서 조선 수군의 중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오대본산 이야기도 이제 그 전통을 잃어가고 있다.

인생2막 남과 비교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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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1.JPG»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요즘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제가 직장생활, 일과 자유, 2막 인생을 자주 다룬 때문인지 이와 관련한 사연을 보내오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남들은 여름 휴가철이라 말하지만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퇴직 후 반년이 지났어도 계속 놀다 보니 이건 휴식이 아니라 고문이군요. 대학 졸업한 제 아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이중삼중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지인 가운데 한명은 독립해서 억대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니 무력감마저 생깁니다. 남들은 훌쩍 어디라도 떠나서 쉬다가 오라고 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니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년까지는 몇년 남았습니다만, 이미 한직을 겉돌고 있는 직장인입니다. 퇴물 취급당하고 있는 거지요. 저와 흔쾌히 점심식사 함께 해줄 직원들도 몇명 없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김밥이나 샌드위치 하나 사들고 혼자서 공원 산책하는 날이 늘고 있습니다. 기분 같아서는 사표를 내던지고 싶은데, 현실을 고려하면 그럴 수 없어서 하루하루가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분들의 얘기를 들으니 오래전의 ‘월천거사’가 떠오릅니다. 퇴직 후 한달에 천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자랑처럼 떠들고 다녀 동창생들로부터 시기심의 주인공이 되었던 분의 별명입니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니 지금 물가로 하면 훨씬 많은 수입이겠지요.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소득불균형과 청년실업, 중년실직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저 역시 1년6개월 동안 무직자로 지낸 유경험자로서, 그리고 직업적 관찰자로서 다섯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의 월천거사, 아니 월억거사가 등장한다고 해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설혹 일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자꾸 누군가와 비교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연봉, 타이틀, 성공한 누군가의 그것과 비교하면 초라해집니다.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고, 더 나아가 의욕까지 상실됩니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기 힘듭니다. 중국 국공내전에서 장제스 군대에 쫓기며 마오쩌둥이 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너는 너의 전투를 하라! 나는 나의 전투를 할 것이다!”

2막 인생도 대장정입니다. 길게 봐야 합니다. 조급해하거나 비교하는 순간 승부가 어긋납니다.


둘째,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프레임이란 조직에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스스로 규정한 것도 있습니다. ‘퇴직 이후는 용도 폐기’라는 생각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오래 다니던 직장의 규정에 따라 나와야 하지만, 직장에서 용도가 없어졌다고 곧 인생에서 자신의 용도까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포기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깁니다. 먼저 조직이 만들어놓은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네모난 상자 같은 딱딱하고 고정된 사고방식이지요. 창의력을 강조할 때 영어로 ‘out of the box'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처럼, 우선 그 네모난 상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2막 인생의 폐활량이 넓어집니다.


셋째, 템포를 조절해야 합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숨 가쁘게 지내왔을 겁니다. 한국의 직장생활에서 생존하기 위해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 일거리가 없다고 말하는 분이나, 퇴직 후 6개월 된 분 모두 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자칫 영원히 놀게 될 가능성도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그렇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옛말처럼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불안하다 해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 보시길 권유합니다. 작은 것일망정 저에게 역할이 다시 부여되기 시작한 것은 무직생활 1년6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넷째, 내 자본을 큐레이팅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자본이 다릅니다. 자본이라고 하면 금융자본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금융자본은 현실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금융자본 이외에 사회자본(인맥 등), 학술자본(학위 혹은 인기학과), 매력자본(외모뿐 아니라 분위기를 이끄는 능력), 기술자산(특정 분야의 테크놀로지), 창의자본(아이디어, 기획능력)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은 유형자산이지만, 나머지 것들은 무형자산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자산이 숨겨져 있지만 잘 찾아내지 못합니다. 객관적인 평가가 제각각이고 그래서 안목이 중요합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추려서 시장이 원하는 형태로 편집해야 합니다. 편집력(力)이 강조되는 이유입니다. 생각과 가능성은 넓게 가져야 하지만, 핵심은 단순화해야 합니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냉정하게 짜야 합니다. 그것이 큐레이팅입니다.


다섯째, 제안 능력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회가 없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막상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되지 않은 분들을 자주 봅니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신문사 혹은 매거진에서 지면개편을 하면서 기획을 요구하면 즉각 내놓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것이 제안 능력입니다. 반드시 기회는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퇴직은 분명 위기입니다. 하지만 ‘위기’라는 단어가 그러하듯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내포합니다. 마흔네 살에 실직자가 된 마키아벨리가 쓴 책이 저 유명한 <군주론>입니다. 만약 피렌체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불후의 명작은 쓰지 못 했을 겁니다. 퇴직이 다가온다는 것은 오래도록 갈망하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완성은 직장 이후에 달려 있습니다. 일천거사에 흔들리지 마세요!


만화스님 시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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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승이 출가하기 위해 처음 월정사를 찾아갔을 때, 만화스님은 지금의 월정사 대웅전 법당을 중창하시느라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인부들과 같이 목도를 메고 나무기둥을 나르고 계셨습니다. 흡사 막일꾼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자비불의 현신인 듯 자애롭고 맑은 모습에 소승은 저절로 하심하게 되었습니다.


 불법은 인연법입니다. 소승이 만화스님을 은사로 모신 것은 오대산의 한암선사, 탄허선사의 대를 이어 한암 회상의 참다운 불법을 계승하는 필연의 불연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소승은 월정사에서만 별좌 공양주를 거쳐 별좌 원주소임 10년, 재무 소임 12년, 총무 소임 12년을 맡았었고, 지금 16년째 부주지 소임으로 수행과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은사스님은 소승이 어떤 사안을 놓고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아직도 많은 영향을 주시는 분입니다.


 --만화스님.jpg사는 6.26사변 때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국군의 작전상 방화로 당시 김백일 장군 등에 의해 강행된 일입니다. 월정사뿐 아니라 오대산 내 거의 모든 가람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때 만화스님은 피난을 가시지 않겠다는 한암스님을 모시고 참혹한 전장의 한가운데서 천년고찰 대가람을 굳건히 지키다가 국군의 방화로 대가람이 모두 불타는 현장을 가슴 아프게 목도했습니다. 또한 한암스님께서 목숨 걸고 상원사를 지켜낸 지 석 달 후에 좌찰입망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후 은사스님은 잿더미가 된 월정사 대가람을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였기에 대 서원을 세우고 중창불사를 시작했습니다. 인부들과 똑같이 작업복을 입고 솔선수범하여 막일을 하셨습니다.


 소승이 만화스님은 은사로 모시며 이 장엄한 중창불사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불은이었습니다.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시는 은사스님의 정신과 모습은 소승에겐 그대로 큰가르침이었습니다. 당시 월정사는 먹을 것이 없어 날마다 산나물과 감자와 옥수수로 끼니를 연명해야 했고 내복도 없이 승복 하나만 걸친 채로 그 엄청난 혹한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런 가난 속에서도 은사스님은 인부들과 함께 몸소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중창불사에 몰두하셨습니다. 그 모습은 그대로 살아있는 청정법문이었습니다.


 눈보라치는 어느 겨울날, 소승은 은사스님의 명을 받고서 사찰 토지임대료를 받으러 리어카를 끌고 나갔습니다. 한나저을 고개를 넘어 진부, 상월, 오계리, 탑동리 등으로 돌아다녔지만 받은 것이라곤 콩 두어 말뿐이었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절에 닿아야 할 것이어서 돌아오는 길을 서두르는데 눈보라는 더욱 사나워져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리어카 바퀴가 눈에 묻혀 구르지도 않았는데 고갯마루에서 미끄러지면서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콩자룪자ㅣ 떨어져 콩이 눈 속으로 쏟아졌습니다. 길은 사라지고 앞은 보이지 않고 칼바람은 휘몰아치고, 그 참담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소승은 부모, 형제, 친지 등 세속의 인연을 싸늘하게 끊으면서, 또 세속적 성취를 모두 다 내려놓으면서, 출가를 결심하고 서울에서 월정사까지 걸어올 땐, 우주의 심법을 주파해 보려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혹한의 눈보라 속에 가난한 소작인들에게 콩 몇 되씩 걷으러 다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쓸쓸한 회의가 가열차게 압박해왔습니다. 멍청이는 휘날리는 눈송이를 멍청하게 바라보고 그저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저만치 눈 속에 가려진 산마루 어디쯤, 아니면 암중의 하늘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은사스님의 불호령이 들여온 것입니다. 성난 바람의 음성으로 천지를 뒤흔드는 그 소리! 화들짝 놀라서 눈 속의 콩을 보이는 대로 주워 담고는 리어카를 다시 끌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

 <오대산 월정사 중창주 만화>(원행 지음, 에세이스트사 펴냄)에서


 원행 스님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 중창주인 만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원주 치악산 구룡사 주지, 동해 삼화사 주지 등을 거쳐 현재 월정사 부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르는 <월정사 멍청이>, <월정사 탑돌이>, <10.27불교법란>이 있다.



'존재'보다 무거운게 없고...

겸손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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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겸손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겸손.jpg


어떤 콧대 높은 처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뒤에서 누가 자꾸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 ”

그래 처녀가 돌아보니 웬 생선 장수가 주제넘게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가 앙칼지게 말했습니다. 

“ 아저씨, 왜 자꾸 같이 가자는 거예요? ” 

생선장수 아저씨가 뜨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 난 갈치가 천 원이라고 말한 것뿐인데……. ” 


무안해진 처녀가 아무 버스나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차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화가 난 처녀 또 앙칼지게 말했지요.

“ 이 똥차 언제 가는 거예요? ” 

버스 기사가 슬그머니 돌아보며 대답했습니다.

“ 똥이 다 차야 갑니다. ” 


콧대 높은 처녀가 한 순간에 ‘ 똥 ’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다 제 잘난 맛에 삽니다. 이것을 자기애라고 하는데, 이 자기애가 지나치면 콧대 높은 처녀처럼 역효과가 납니다. 그래서 지나친 자기애를 절제하는 겸손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지나친 겸손, 혹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 비하는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연로하셔서 보필할 궁녀들을 뽑기로 하셨습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한테 하도 데어서 선발 기준으로 삼은 것은 오로지 겸손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천당 각지에서 겸손한 여인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고, 마침내 무던이, 사양이, 겸양이 세 사람이 뽑혔습니다.

세 궁녀가 하느님을 보필한 지 어느덧 일 년, 하느님은 그만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화병이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걱정이 되어 여쭈었습니다. 


“ 왜 화병에 걸리셨는지요? ” 

하느님께서는 저만치 서 있는 세 궁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습니다.

“ 내가 저것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느니라. ” 

“ 아니 왜요? ”

“ 무던이는 음식이든 일이든 잘 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도 잘못을 지적하면 달라지려는 노력은 않고, 입이 댓발은 나와가지고 ‘ 내가 무던하니까 참지 ’ 하며 심통을 부려. ” 

“ 사양이는요? ” 

“ 사양이는 어디 좀 가자고 하면 끝까지 사양하지. 그래서 무던이와 겸양이 둘만 데리고 갔다 오면 자기만 미워한다면서 동네방네 내 욕을 하고 다녀. ”

“ 그럼 겸양이는요? ”

“ 말도 마. 뭘 시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게 아니라 ‘ 저는 못 하옵니다. 안 하옵니다. 되었사옵니다 ’ 하고 겸손한 척 내숭을 떨어서 아주 속이 뒤집어져. ”


겸손이란 자기를 낮추는 것도 무조건 사양하는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밥상을 차려놓고 “ 열심히 만들었으니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맛은 밥을 먹는 사람 입맛의 문제이고, ‘ 나는 최선을 다했어.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 차린 게 없습니다. 음식이 변변치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다가 손님이 끼적거리며 먹는 것을 보고 ‘ 나는 왜 이렇게 음식을 못 만들까? 저 사람은 이제 나를 싫어 할 거야 ’ 하면서 눈물을 질질 짠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병적인 콤플렉스입니다. 또 그런 마음은 은연중에 드러나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호감을 얻지요. 겸손한 척하는 사람은 비호감의 대상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멀리하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호감을 얻지 않고 인생에서 성공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행복하고 성공하는 인생을 위해서는 진짜 겸손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각막을 기증받기 거부한 이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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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jpg» 웅산과 함께 자신의 첫 재즈 앨범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마치고 퇴장을 하던 다섯 남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마이크 스탠드에 부딪혀 넘어졌다. 
관객들은 끝까지 몸 개그로 웃기려 한다고 즐거워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의 집중력 부족을 질타했다. 
도대체 너 왜 그러냐? 혼자만 그렇게 튀고 싶냐?”
그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갑자기 조명이 꺼지니까 앞이 안 보여서…” 
시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단순히 안경 도수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밤에 운전을 하거나 걷는 게 힘들어 졌을 때도 
그저 ‘야맹증’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을 마친 후 늘 넘어지기만 하던 
그가 중대 발표가 있다며 대기실에서 멤버들을 모았다. 
“미안해~ 사실 나 정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홍록기, 김경식, 이웅호, 표인봉과 더불어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활약했던 
개그맨 이동우 씨는 결혼을 하고 100일쯤 지난 뒤 
‘망막 색소 변성증’ 이라는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 
망막 색소 변성증은 시세포가 점점 퇴화하는 희귀병으로 
유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원인조차 알 수 없는 병이다.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 멤버들은 그동안의 오해에 대한 
미안함과 불치병에 걸린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슬퍼했다.
그러나 평화방송 진행자로도 우리들에게 친숙한 그는 
5% 남짓 남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으로 기적과 같은 삶을 일구어 가고 있다. 


TV 방송을 통해 이동우 씨의 사연을 들은 
천안에 사는 40대 남성이
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다시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희망에 기뻐하며 
한걸음에 달려갔지만 기증자를 만난 그는 
돌연 눈을 기증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그냥 돌아왔다.


기자가 물었다.
“아니 왜 기증받기를 거부하신 거죠?”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받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눈을 기증하겠다는 그 남자는 ‘근육병’ 환자였다. 
사지를 못 움직이는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며 
오직 성한 곳 이라고는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동우 씨는 안구를 기증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 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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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개를 가진 사람이 100개를 채우기 위해 
1개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고 드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짐승의 세상입니다.
행복은 생각하기에 따라 가까이에서 쉽게 찾을 수도 있고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보다 내가 가진 것에 더 감사하며 산다면 
어느새 행복은 우리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있을 것입니다.,근육병

습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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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jpg


평생 수없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습관적인 생각의 특징을 소개합니다. 
• 이분법적인 마음에서 일어나서 좋고 나쁘고 분별합니다. 
•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생각에 중요성을 두면 여기서부터 고통이 시작됩니다. 습관적인 생각들과 엉켜서 불필요한 문제를 만듭니다. 
• 내버려두면, 상호작용 하지 않으면 조용히 배경으로 사라집니다. 


•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 수없는 다양한 생각들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저절로 일어나고 저절로 사라지게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 습관적인 마음이 탐진치의 시작과 끝입니다. 생각을 쉬는 연습을 할 수록 번뇌가 줄어듭니다. 
• 습관적인 생각의 중심은 ‘나’이며 대체로 부정적입니다. 에고를 보호하고 아집을 고집하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 마음은 자동모드에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 없이 그냥 움직이며 고통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행을 할 수록 방향이 점차 행복으로 바꿔집니다. 생각의 질이 좋아지며 덜 부정적이고 더 자비롭게 일어납니다. 
• 알아차림을 기를 수록 생각이 느려지며 생각과 생각 사이에 틈이 벌어집니다. 억수로 강한 생각들이 얌전해 집니다. 


• 생각을 보면 실체가 없는 이내 사라지는 환영입니다. 생각을 안 보면 무섭고 힘이 있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생각을 보면 생각이 놓아집니다. 
• 생각이 직접적으로 보이면 생각과 분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에 빠져 있으면 생각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 생각을 풀어주는, 생각을 해탈하는 기법이 명상의 핵심적인 기법이며 가장 중요하고 익숙해져야 할 명상법입니다.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 동시에 긍정적인 생각들, 자비로운 생각들을 기르야 합니다. 결국은 모든 생각들의 같은 본질를 알게 되지만 처음에는 선한 생각과 못된 생각들을 구별해서 첫째는 채용하고 둘째는 거부해야 합니다. 


• 생각은 안 일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기능입니다. 생각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생각밖에 몰라서, 생각을 놀 줄 몰라서 제한이 많은, 좁고 고통스러운 생각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생각을 쉬는 연습을 할 수록 무한하게 평화롭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마음의 본성을 알게 됩니다.

사랑할 것이냐, 증오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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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의 아들이여, 들어라. 너의 행동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의 시간은 너에게 달려 있다. 너의 순종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너를 완전하게 만드셨지만 우리처럼 너희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셨다.

 사랑하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은 너희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그것에 따라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유지할 수도, 추락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불복종의 죄를 범했다. 그래서 높은 곳에서.....

 깊고 깊은 지옥으로 떨어져 버렸다.


 존 밀턴의 <실낙원>(파블로 아울라델 글 그림, 유아가다 옮김, 이숲 펴냄)에서

 

달라이라마, 무아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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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집착하는 자아가 본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개인이라는 개체로서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경험들은 삶의 주체와 행위자로서 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자면 우리는 무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통찰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 여기서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안에 본래부터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자아가 있다는 생각에 대한 부정이다. 관습적인 현상으로서 자아는 부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공성론의 핵심이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무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독립된 실체가 없다는 공성에 대해 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불교의 가르침을 수행하려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마응을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이란 우리 몸과 마음-감각, 지각, 의지, 인식-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온(蘊)이 업과 번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의 이 중생은 과거의 미혹과 번뇌가 모여 만든 결과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경험하게 될 고통과 번뇌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이 강해야 한다.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出離心)은 번뇌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은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포기하는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계속해서 무지에게 조종당한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가망은 없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골칫거리에 휘둘릴 것이다. 이런 악순환, 윤회의 고리를 완전히 타파하려면 윤회하는 중생이 겪는 고통의 본성을 이해하고,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강한 열망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포기이다. 


 <달라이라마 반야심경>(텐진 갸초 지음, 주민황 옮김, 하루헌 펴냄)에서

그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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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신(선종 4대 조사 580~651)이 어느 날 고을을 지나다가 산이 수려하고 웅장함을 보고 이 산속에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고 있음을 직감하고 지나가는 노인에게 이 산속에 공부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뭇 짐승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했다.


 산 깊숙이 들어갔을 때 넓은 바위가 보였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바로 그가 우두법융(594~657)이었다.


 도신이 그를 향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묻자 법융은 마음을 관한다고 하였다. 도신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관시하인 심시하물(觀是何人 心是何物)’인가 물었따. 


 "마음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보여 지는 마음은 누구의 마음인가?"물은 것이다. 이 물으에 우두법융은 자신의 실상을 깨달았다. 그리고 초기 선종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우두종이 탄생되었고 새로운 가풍이 형성되었다.


 <백담사 무문관 일기>(정휴 지음, 우리출판사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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