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아래에서, 가톨릭교회는 마치 동면에서 깨어난 한 마리 동물처럼 보인다. 밝은 햇빛에 눈을 부시면서 새 풀밭을 찾는다.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보기를 들자면, 몇몇 독일 주교들은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가톨릭 사제직의 문제를 줄이기 위해 여성에게 특별한 부제직을 허용할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생각은 실현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얼마 전에 뉴욕의 티머시 돌란 추기경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추기경 지위는 꼭 성직자만 하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여성도 추기경으로 임명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문에 잘 나오는 것처럼, 교회 안의 지도 지위는 원칙상 여성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다.
ⓒUCAN Korea
베네딕토 전임 교황 시절의 닫힌 시절에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너무 나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 교황은 성 목요일 발씻김 예식에서 여성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며, 여러 면에서 그의 직전 전임자 두 사람과 많이 다른 사람이다. 그러므로 전에는 거의 생각도 못할 일을 그는 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 자신이 하는 것만이 교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고 그의 언행과 그의 교황 시대를 규정하는 여러 가능성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도 교회를 바꿀 것이다.
이 점에서, 독일 주교들이 여성의 직무에 대해 내놓은 새로운 사고방식은 풍향계가 될 수 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시절에 그가 말했듯 “내가 보스”라고 으스대고 다니는 성직자 중심주의를 비판했었는데, 이제 그가 교황이 되었으니 교회 전반의 기능 방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상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성공회 지도자들은 가톨릭교회와 더 이상 가시적 일치를 이룰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새 교황이 즉위하면서) 로마의 스타일이 변하면 두 교회의 유기적 일치가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나섰다. 가톨릭-성공회 신학 대화가 곧 재개될 예정이며, 주요 논쟁점에 어떻게 두 교회가 합의를 이룰 것인지가 핵심 문제다.
성공회에서는 평신도가 실제로 발언권을 갖고 있다. (교회 의회에 평신도 대표가 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평신도의 권리는 순전히 수사에 그칠 뿐이다. 그 자신을 위해서나 교회 일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나, 가톨릭교회는 평신도와 대화하는 교회 구조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평신도의 목소리를) 진실로 듣고, 거기에 제대로 된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진실된 전망이 있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참여적 교회 구조를 제시, 장려했음에도 영국과 웨일스의 가톨릭교회는 이 점에서 태만했다.
지금까지, 영국과 웨일스의 주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에 대해 보여준 긍정적 반응은 몇 마디 좋은 말들, 비싼 돈을 들여 로마로 가서 그에게 절하기, 그밖에는 없다. 역사를 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들의 방문에 별 감명을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조국인 아르헨티나 신자들이 교황 즉위식에 참석하러 로마에 오려는 것을 말리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면 좋겠다고 했다.
가톨릭교회의 평신도들은 주교들이 “내가 보스”라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 있는 주교들과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처럼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새 교황의 이름인 프란치스코처럼, 복음대로 살라는 도전을 받기를 원한다. 그럼으로써 가난한 이의 교회가 되고자 한다.
<기사 제휴 / UCAN Korea>
이 글은 영국의 주간 가톨릭 저널 <더 타블릿>(The Tablet)에 5월 4일자로 실린 편집장 캐더린 페핀스터(Catherine Pepinster)의 칼럼 ‘Thinking the unthinkable’이다. 원문은 http://www.thetablet.co.uk/article/164128 에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