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커피’ 김현일씨가 특별한 이유
한 잔의 커피에서 노자의 ‘무위자연’을 만난다면
껍데기를 벗고 자신을 비우며 마음으로 만나 소통하는 곳
*행복커피 모습
세상에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있는 곳이 있는가. 완벽한 것을 찾는 사람에게 면박을 줄 때 들이대는 물음이다.
하지만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 구내 ‘행복커피’에 가면, 세상엔 그런 것도 없지않음을 보여줄 수 있다. 더구나 그곳에서 내가 주인행세를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행복커피는 도봉산 북한산과 같은 명산이 둘러싼 새 캠퍼스의 인공 연못가에 있다. 그래서 대형건물이나 도심의 골목길 카페와는 전혀 다른 자연미가 가득한데, 거기다 테이블조차 널찍널찍 떨어져 있다.
커피를 마시며 수다 삼매에 빠져 있는 엄마 아빠를 둔 대여섯살 아이들은 마치 자기집 마당인양 연못가에서 뛰어논다. 그러다 커피점 운영자인 김현일(40) 대표와 고경민(30) 실장에게 달려가더니 한손에 들고 있던 뻥튀기를 건네준다. 뻥튀기를 넙죽 받아 먹으며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둘은 아이들의 영락 없는 삼촌이고 이모다. 아이들이 금새 문밖에 있는 ‘어린이 서가’로 가서 이 책 저 책을 들여다보는 사이 김 대표와 고 실장은 이번엔 이웃집 아저씨와 아가씨가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경계가 없다.
김 대표와 고 실장은 자신들이 운영자일 뿐, 주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에 자기 것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원시 기독교공동체에서나 있었을법한 무소유론을 스스럼없이 펼친다.
그럴만하다. 커피점의 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긴 테이블엔 엔지오와 자선단체 등이 가져다놓은 잡지 등 책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일들을 마음껏 알릴 수 있도록 핵심 공간을 내주었다. 또 제3세계인들을 돕는 엔지오단체 부스들이 벽면에 서 있다. 이 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이들에겐 부스도 설치하고 도자기와 그림, 사진전시회도 열게 한다.
김 대표가 고용주이고 고 실장이 고용자도 아니다. 재료와 세금을 뺀 수익금을 둘은 똑같이 나눈다. 8년 전 고 실장이 대형카페에 처음 취업했을 때 이미 김 대표는 그곳의 최고참 선배였을만큼 경력으로 따지면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 카페는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 카페는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이곳엔 뻥튀기만이 아니라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줄만큼 냄새 나는 음식이 아니면 빵이건 김밥이건 얼마든지 가져와서 먹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커피를 안마셔도 되니 얼마든지 쉬고 가라고 권한다.
이 이상한 카페에 이상한 게 또 한가지 있다. 손님의 이야기를 많이 경청한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카페업계에선 알려질만큼 알려진 고수다.
잘 나가던 커피점인 가배두림과 가배나루를 운영하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를 자문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맛을 강요하는 법이 없다. 그는 커피업계의 명인이니 장인이니 고수라는 말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친다.
“나는 커피맛을 최고로 잘 내는데, 네가 커피맛을 모른다는 건 가당치않지요.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커피 맛을 안다고 생각해야지요. 누구는 진한 걸, 누구는 연한 걸, 누구는 신맛을, 누구는 쓴맛을.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거죠.”
그는 “프로란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손님의 스타일을 간파해 그가 원하는대로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현일 대표의 드립명상 5단계 1.무엇을 원하는지 경청하라. 2.주전자에 따뜻한 물이 아닌 따스한 마음을 담아라. 3.힘을 뺀 미소로 커피를 내려라. 4.커피를 건네준 뒤 돌아서지 말고 그의 표정을 보라. 5.엷게 퍼지는 그의 미소 속에서 엄마의 행복을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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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 기계 앞에서 드립하는 김 대표의 모습이 재밌다. 입술 끝이 올라가는 순간 미소가 가득하다.
“웃어야 힘이 빠져요. 힘을 빼야 해요. 마음이 조급하거나 화가 나있으면 힘이 들어가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자연스러워지지 못해요.”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노자의 ‘무위자연’과 다름 없다. 그래서 그에겐 드립이야말로 기도이자 명상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와 스포츠인들이 몸에 힘을 빼면서 위대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했듯이 그도 드립을 하면서 끊임 없이 자신을 버리고 비워왔다. 비우고 내려놓지않고선 껍데기도 편견도 벗을 수 없고 타인과 온전히 소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행복커피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닫는다. 아르바이트도 없이 둘이서 운영한다. 일요일만 쉬니 노동시간으로 따지면 너무 길어보인다. 그런데 김 대표는 “몸이 힘들다고 꼭 마음까지 힘든 건 아니다”고 말한다. 돈 벌려고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없어서 손님들이 있을 때는 손님이 있어서 소통하며 즐겁고, 손님이 없을 때는 푹 쉬며 개인적인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애초 ‘사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신학교를 나와 교회에서 교육을 맡던 전도사였다. 부친도 장인도 모두 목사다. 아내도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도 이 캠퍼스에 와 신학대학원까지 마쳤지만 교회로 가지 않았다. 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현장’이 바로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무나 사장, 교수나 변호사와 같은 출신의 껍데기를 가득 뒤집어쓴 가면의 만남이 아닌 진실한 만남을 원했다”고 했다.
“보수 진보 기독교 가톨릭 불교인지가 뭐가 중요한가요. 마음을 나누는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지요. 아무런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수 있을 때에야 사람을 제대로 만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껍데기를 벗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가 잘 나가나는 도심의 카페를 내려놓고 작년초 은사이기도 한 채수일 총장의 요청에 응해 이곳에 새 둥지를 튼 것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기 위해 더 비우고 벗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행복하다.
“그동안 제가 얻은 건 돈이 아니에요. 자유로움이고 자연스러움이지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행복커피의 행복한 꿈 가난한 어린이와 나누는 ‘행복한 웃음’ 행복커피엔 커피 말고 또 하나의 별미가 있다. 김 대표와 고 실장이 유기농 재료를 써서 정성스레 만드는 쿠키다. 이 쿠키엔 정해진 가격이 없다. 정성껏 모금함에 기부하면 된다. 지금까지 모든 돈은 400여만원. 이 돈은 모두 인도의 빈민가에 어린이도서관을 짓는데 쓸 예정이다. 고 실장은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즐기면서 남 돕기까지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니냐”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쿠키를 만들어 모금한 돈으로 인도에 고아원 숙소를 짓고, 베트남엔 평화도서관을 만들 작정이다. 김 대표와 고 실장이 꾸는 행복은 운영자나 손님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이들이 티베트 아이들을 돕는 록바 등의 자선단체 등의 부스를 두고 있는 것도 티베트와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아이들의 아픔과 꿈, 희망이 담긴 사연들을 소통하고 공감해주고 도울 여력이 있으면 함께 돕자는 마음에서다. “미주나 유럽에 행복커피가 많이 생기고, 그런 행복커피에서 소통하고 공감대를 이룬 이들이 돕는 도서관이 저개발국에 많이 만들어진다면 좋지 않나요?” 행복커피에선 그 행복한 꿈이 조금씩 천천히 이루어지는 중이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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