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창 개울가에서도 울려퍼지는 아이들의 노래와 웃음
*필리핀 빈민가 비엠비에이 마을의 나보타스성당 1층 민들레국수집 식당에서
민들레유치원 아이들과 함께한 민들레국수집 서영남 대표와 부인 베로니카(오른쪽)와 딸 모니카(왼쪽).
필리핀 마닐라 빈민마을의 크리스마스
한국서 필리핀으로 간 민들레국수집
마닐라 빈민가 판잣집 마당에
이재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무료급식
작은 나눔 큰 행복 열리는 특별한 마을
필리핀 마닐라 민들레국수집에 오는 아이들은 성 판크라시오 성당 옆 비엠비에이(BMBA) 마을에 사는 아이들입니다. 2011년 책 <민들레국수집 홀씨 하나>의 인세와 포스코청암상 상금을 인천민들레국수집 노숙인들보다 더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공동묘지 옆 시궁창 같은 개울가에 판잣집들이 얼기설기 들어차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지난 4월20일의 화재로 많은 집이 타버려서 대강 고쳐서 삽니다. 제대로 된 집이 없습니다. 지붕이 없어 비닐이나 천막으로 하늘을 가린 집들도 있습니다.
비엠비에이마을을 우리말로 하면 행복마을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길거리 장사를 하거나 일용직 노동자이거나 아예 일자리도 없이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루 일하면 200~300페소 정도 번다고 합니다. 1페소가 우리 돈으로 25원 정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 5천원에서 8천원 정도를 벌면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달 평균 수입을 물어보면 어리둥절해합니다. 왜냐면 한달 꼬박 일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안정한 수입인데도 가족 수는 10명이 보통입니다. 굶는 경우가 일상의 다반사입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점심 한끼를 먹는 우리 아이들이 아침에 오면 물어봅니다. 아침 먹고 온 사람은? 겨우 한두명이 아침 먹고 왔다고 합니다.
지난 4월에 이 마을에 불이 나서 400여채의 판잣집이 불타고 4천여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일부는 성당 마당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이 성 판크라시오 성당 옆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곧바로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와 과자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집이 마련되자 아이들이 민들레국수집에서 밥 먹고 공부하고 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하천가에 지어진 판자촌인 비엠비에이 마을
처음에는 장학금을 받을 초등학교 아이들 50명과 급식을 받을 아이들 50명으로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집을 찾아본 다음에 곧바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전부 밥부터 먹어야 했습니다. 100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급식과 장학금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따라 서너살 꼬마 동생들이 따라왔습니다. 꼬마들도 함께 밥을 먹게 했습니다. 서둘러 유치부를 만들어 어린아이들도 돌봤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온종일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엄마에게서 “꼬르륵”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께도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들 마음은 달랐습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밥이 넘어가질 않는 모양입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걸린답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의 가족은 누구든지 와서 함께 먹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민들레국수집 아이들보다 엄마들과 엄마와 함께 오는 아이들이 더 많습니다. 어떨 때는 온 가족이 모두 와서 식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에 쌀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너무 좁아서 마당에 천막을 쳤습니다. 매일 잔칫집 같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지내던 이재민들이 하나둘 마을로 돌아가고 지난 6월 초에는 몇 가구만 남았습니다. 국수집 형편에 전부를 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제가 보기에 제일 어려운 지나네 집이라도 도왔으면 싶어서 ‘휴심정’에 글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산타클로스가 되어주셨습니다. 지나네 집만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휴심정’ 산타 덕분에 열다섯집이나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행복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인 아쉴리와 알버트의 집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아쉴리는 커서 은행원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와 가족들을 도울 거라고 합니다. 집이 깔끔합니다. 문에도 예쁜 장식을 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놀랐습니다. 아주 좁은 집입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사다리가 있고 이층에는 지붕이 없습니다. 그냥 하늘이 보입니다. 비가 오면 합판으로 이층 입구를 막는다고 합니다. 좁은 아래층에서 여섯 식구가 삽니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지었는데 그만 일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지붕을 올릴 길이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아들 넷을 잘 키웠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지붕을 올릴 수 있는 재료를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아쉴리가 자기 집에 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빠가 지방으로 일하러 갔는데 돈을 보내오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급히 아쉴리에게 쌀 5㎏을 담아서 보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장학생인 리노아의 집도 지붕이 없었습니다. 천막으로 하늘을 대강 가렸으면서도 집 없는 친척에게 옆을 내주어 함께 삽니다. 지난 9월에 수녀님을 통해서 리노아 집에 건축 재료를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붕만 올린 것이 아니라 한 층을 더 올려서 이층집을 만들었습니다. 재료가 모자라 집이 반쯤 짓다 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 없는 어려운 친척들 두 가구가 들어와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리노아의 집에 총 열네명의 대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 글로리아 아주머니 집에 들렀습니다. 글로리아 아주머니는 겨우 40살입니다. 자녀가 여덟명이나 됩니다. 남편은 42살인데 거리에서 필리핀식 라면을 끓여서 파는 길거리 장사를 합니다. 하루 100~200페소를 겨우 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장사 밑천이 없어서 그냥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글로리아 아주머니가 머리에 부스럼이 있는 아이와 함께 엄마들 틈에서 밥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오셨는지 물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합니다. 아이가 몇인지 물었더니 여덟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초등학생으로 민들레국수집에 올 수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롬멜입니다. 롬멜을 장학생으로 뽑았습니다. 이제 글로리아 아주머니는 아들 덕분에 점심에 떳떳하게 아기를 데리고 와서 밥을 드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부스럼 났던 아이도 고기 몇 점 먹고 나았습니다.
글로리아 아주머니가 집이라고 보여줍니다. 하늘을 천막으로 겨우 가렸습니다.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불에 타서 골조만 남은 집입니다. 얼기설기 움막을 지었습니다. 그곳에 열 식구가 삽니다. 누울 자리도 없는 곳입니다. 집에 돈 벌어 올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굶기를 밥 먹듯 한답니다. 비가 올 때가 제일 지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지붕을 올리고 열 식구가 겨우 살 만한 집을 지으려면 아무래도 3만~4만페소는 들 것 같습니다. 다음달에나 조금 도울 수 있으면 도와드려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우구스티노 형제님께서 도와주시겠답니다. 뚝딱 이층집이 지어졌습니다. 남편과 큰아들이 목수를 도와 신나게 일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글로리아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시궁창 옆에서도 맑은 개울물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서영남(민들레국수집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