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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폭로한 시노트 신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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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인혁당 주검마저 돌려주지 않던…유신정권은 ‘악’이었다”

한국 민주화·인권운동 ‘증언자’ 시노트 신부 별세



시노트신부.jpg

*미국 메리놀 선교회의 제임스 시노트 야고보(한국이름 진필세) 신부.
 


박정희 정권의 인민혁명당(인혁당) 조작 사건과 ‘사법살인’을 세계에 폭로했던 미국 메리놀선교회의 제임스 시노트 야고보(사진·한국이름 진필세) 신부가 23일 0시30분 서울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


1975년 4월9일 새벽, 유신정권은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한 지 18시간 만에 인혁당 사건 8명을 전격 사형시키고 주검이나마 돌려달라는 유족들의 요구도 묵살한 채 고문 흔적을 감추기 위해 송상진·여정남씨의 주검을 화장해버렸다. 시노트 신부는 선교회와 외국 언론을 통해 이런 만행을 세계에 폭로했다. 특히 사형장 앞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주검 만이라도 돌려달라”며 외치다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그의 사진은 외신을 통해 전세계에 퍼졌다. 이에 박 정권은 4월30일 그를 강제출국시켜버렸다.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국제법학자협회는 4월9일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했다.


고인은 2002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영구귀국해 서울 중곡동 메리놀선교회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2주 전 병원에 입원했다.
시노트 신부는 ‘공산주의와 싸워 하느님께 봉사할 것’을 서약하고 사제가 될 정도로 반공주의자였다. 60년 선교사로 한국에 온 그는 인천교구 소속으로 영종도·무의도 등 섬지역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사목활동에만 열중했다. 그러다 74년부터 민청학련 사건 등 독재정권에 의한 인권 탄압이 심각해지자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고 나섰다. 특히 미국대사관 직원과 중앙정보국(CIA) 정보원, 피해자 가족들을 통해 박 정권이 인혁당 사건을 조작한 사실을 알고 구제 활동에 적극 나섰다.
그는 89년 추방 14년 만에 정식 비자를 받고 다시 입국할 수 있었고,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인혁당 사형수 부인 8명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


고인은 훗날 인터뷰에서 “내게 ‘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악’이 무엇이냐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때 내가 본,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행한 그 짓이 바로 ‘악’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추방 직전까지 ‘동아투위’의 언론자유 투쟁도 적극 지지했던 그는 유신시대 한국 언론에 대해 “자신의 밥을 위해 진실과 약자를 외면하고 독재자와 타협이라는 편한 길을 택했기에 난 그때 신문사들을 ‘밥통일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그는 공안몰이 수단으로 악용돼온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공산당에 대해 거부반응을 일으키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을 이용해 독재권력을 지키기 위한 법”이라며 “공산당을 잡기 위해 쓰인 게 아니라 반대자를 공산당으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는 데 쓰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끄러운 법이고,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법”이라고 비판했다.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란 뜻으로 자신의 이름을 진필세라고 새로 지은 그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즐겨 불렀고, 말년엔 그림도 즐겨 그렸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이며, 입관 예배는 25일 오후 3시, 장례미사는 26일 오전 11시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거행된다. (02)466-1238.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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