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를 즐기는 옥수수 할아버지
*정선군 5일장 모습. 정인환 기자
어느 시골에 오일장이 열렸다. 시골장터의 그늘진 한구석에는 한 할아버지가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아직 삶지 않은 찰옥수수였다. “할아버지! 이 찰옥수수 얼마예요?” 한 아주머니가 네 개씩 나누어 놓은 옥수수 한 무더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 한 무더기에 3천원입니다.” “세 무더기는 얼마예요?” “9천원입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세 무더기를 사도 깎아 주는 게 없으시네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가 가지고 나온 부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면 가지고 나온 옥수수 전체를 사면 얼마지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전부는 안 팝니다.” 아주머니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아니, 왜 다는 안 팔아요?”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난 지금 내 삶을 살기 위해 이 장터에 나왔지 장사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난 이 장터를 사랑합니다. 물건을 팔고 사기 위해 흥정을 하며 북적대는 사람들, 오랜만에 만났다고 서로 손을 잡고 반가워하며 떠드는 모습들, 팔려 나온 짐승들의 울음소리, 장터 사람들을 유혹하는 국밥 끓는 소리, 뻥 하고 튀밥 튀는 소리, 시원한 냉차를 사 먹으라는 소리, 복잡한 장터 골목을 헤쳐 나가는 지게꾼 소리, 엿을 팔기 위해 가위로 흥겹게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는 엿장수, 난 이 활기 넘치는 장터 풍경을 사랑합니다. 이 살아있는 장터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삶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이 옥수수를 몽땅 팔고 나면 난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요? 다 팔면 내 하루는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는 안 팝니다.”
우리의 인생도 장터에 나온 촌부와 같습니다.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나온 것을 다 팔면 돌아가야 합니다. 현재를 즐길 수 없다면 내일도 즐길 수 없습니다. 지금을 즐길 수만 있다면 행복은 그림자처럼 삶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희망은 내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 가슴속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가슴속에 희망의 보따리를 품지 못한 사람은 내일도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가슴속에 희망의 보따리를 품었다고 말하면서도 희망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품고 있는 희망의 보따리가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묶인 희망의 보따리는 오늘을 즐길 때 풀어집니다. 즐기기 위해 나왔다가 파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가득한 장터에서 희망의 보따리를 풀어놓읍시다. 지금의 삶을 즐기는 사람의 희망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중국의 작가였던 루쉰은 “희망은 길이다”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수많은 사람이 걸어왔던 자취인 것처럼 희망은 지금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오늘 내가 마주한 삶을 즐긴다면 그것은 희망을 사는 것이며 그 희망은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 동행하는 길인 것입니다. 삶은 파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입니다. 오늘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문병하 목사(양주 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