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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이 동성애로 멸망했다면 시드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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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이 동성애로 멸망했다면 시드니·베를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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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탁기형 선임기자


서울시 소속 인권위원회가 제정하려던 인권헌장이 동성애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운 개신교 보수단체의 폭력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동성애 조항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단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것임에도 선포를 무산시켰다.


개신교 보수단체는 구약성서 창세기 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신의 징벌을 받아 멸망했다고 주장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한다. 이런 주장은 과거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소도미법으로 발전되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가 유력한 지역에 널리 퍼졌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이 향상되면서 이단, 신성 모독 등과 함께 ‘피해자 없는 범죄’들에 대해 ‘피해자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는 개념에 따라 사문화되고 있다. 200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성인 사이에 합의한 비상업적이고 사적인 동성간 성행위를 주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구약성서에서 동성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오히려 소돔의 멸망의 원인을 동성애보다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에스겔 16장 49절)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웃에 대한 배려라는 신성한 의무를 어기고 저주받는 이야기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우리나라에도 ‘장자못 설화’라는 이름으로 주변 사람과 나그네에게 인심 사나운 어떤 마을이 큰 비로 재앙을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국가와 도시가 멸망한 것은 도덕적인 문제보다는 이민족의 침입이나 빈부차로 인한 공동체 내부의 균열 때문이다. 인구 몇천 명에 지나지 않은 소돔 같은 청동기시대의 작은 도시가 개인들의 성적 취향 때문에 재앙을 맞이했다면 해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동성애자 축제가 열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나 독일의 베를린 같은 도시는 불벼락이 떨어져도 몇번 떨어졌을 것이다. 또한 그보다 더 많은 범죄가 일어나는 이탈리아 로마나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만 그 도시들은 수백년이 넘은 지금도 건재하다.

 
구약성서에서 성적 소수자를 차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노동생산력과 함께 주변 민족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했던 시대에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재 이스라엘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모두 금지하고 동성간 동거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수도인 텔아비브에서는 해마다 중동 최대의 게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오늘날 동성애 반대 지역은 주로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곳이다. 미국만 해도 노예제도를 용인하고 바이블벨트로 불리며 현재까지도 인종차별이 남아 있는 남부지역이 대표적이다. 신의 이름으로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정죄하는 것은 우주적 존재인 신을 개인의 성적 취향이나 따지고 드는 협량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차별과 증오가 아니라 연대와 사랑이다.


백찬홍(씨알재단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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