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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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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쫓는 부자, 철학 있는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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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지나고 보면 무슨 일이든 우연만이 아니다. 대한항공 기내에서 몇년 전부터 승무원들이 서비스보다는 면세품 판매에만 열을 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우연히 이용한 외국 항공기에선 대한항공 못지않은 비빔밥에,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까지 배가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쯤 되면 비싼 항공료에도 불구하고 기왕이면 국적기를 이용하려던 국수적 애호감에도 변화가 생길 만하다. 바로 이때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했다. 조 전 부사장이 이 엄청난 뭇매를 이기고 회항하려면 돈이란 목적으로 인간을 수단시하는 자세로부터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철학수업부터 필요하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돈은 그만큼 위험하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전국시대 거상 여불위는 부로 진시황을 통해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 4천년 봉건왕조를 끝내고 현대 중국을 연 산파도 자식들이 쑨원과 장제스의 부인이거나 마오쩌둥의 후견인으로 현대 중국을 쥐락펴락한 ‘송가왕조’의 개창자인 거부 쑹자수(송가수)다.


그 정도 인물들은 돈 이상의 철학이 있다. 여불위는 3천여명의 지식인들을 식객으로 두어 <여씨춘추>를 편집해 천하의 학문 사상을 집대성하고 민심을 모았다. 기독교 선교사로서, 동서를 관통하는 지식인이었던 쑹자수는 아무리 바빠도 밥상머리 자식교육을 빠뜨리지 않았다. 쑨원에게 링컨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란 명연설을 들려줘 민족·민권·민생 삼민주의를 주창케 한 것도 쑹자수다.


로렌초데메디치1.jpg

*메디치 가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로렌초 데 메디치.

엄청난 재산을 도시국가 피렌체의 공익을 위해 썼다고 한다.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돈으로 세속적 권력을 누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좀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이들도 있다. 근대 서양의 메디치 가문이 그렇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기반으로 한 메디치가는 귀족이 아닌 상공인 집안임에도 교황 3명에, 프랑스 왕비 2명을 배출하며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14~16세기 유럽 문명을 바꾼 르네상스를 열었다. 메디치가는 방직 노동자 길드의 반란을 지지할 정도로 평민과 함께하며 성장해 350년 번영을 구가하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메디치가를 개창한 코시모 데메디치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도, 사려 깊고, 예의가 바르고, 관대하고, 검소하고 소탈하다”며 이상적 군주상으로 그렸던 인물이다. 그의 손자 로렌초 데메디치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등을 후원해 르네상스 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웠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사후 메디치가의 인물들을 ‘숙고하는 삶, 행동하는 모습’으로 조각했다. 진정한 부자는 행동력뿐 아니라 심사숙고하는 삶의 모습을 지닌다는 의미다. 오직 이윤 추구를 위해 직원도 고객도 수단시만 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숙고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땅콩회항 사건이 사례가 되어주고 있다.


엘지그룹의 직원교육을 책임지는 엘지인화원의 이병남 원장은 최근 <경영은 사람이다>라는 책에서 ‘이윤만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가치인가’란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 2차 대전 중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해 큰돈을 번 제약회사 머크의 머크 회장은 “의약품은 환자를 위한 것이지 결코 이윤을 위한 게 아니다. 이것을 더 잘 기억할수록, 이윤은 더 커진다”고 했다. 이 원장은 “기업이 이윤 추구만으로는 우리 삶의 의미를 진정으로 빛나게 할 만큼 지속가능한 충만함을 맛보기는 힘들다”며 “오래도록 번성하는 기업은 무엇보다 분명한 철학을 스스로 존재 목적으로 삼고, 진정으로 고객과 사회에 유익을 주는 기업들이 훨씬 큰 성과를 낸다”고 했다. 그래서 기업에서도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영진, 직원, 노동자,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서로 섬길 때 상생하고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불장군들은 질타당하고, 공감과 배려의 인물들이 환호받고 있다. 기독교, 불교, 유교, 유대교 등 모든 종교 성자들이 ‘관계’를 위해 호소한 제1법칙도 이것이다.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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