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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를 '성전'으로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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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는 성전이 아니다


지하드는 아랍어로 ‘노력’ 의미

이슬람은 자살과 테러 모두 반대
모세5경을 모세가 썼다?
오해의 원인은 ‘배타적 혐오증’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
존 모리얼·타마라 손 지음, 이종훈 옮김
휴·1만7000원  

종교오해책.jpg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지하드’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성전’(聖戰)이라는 뜻으로, 이슬람교의 신앙을 전파하거나 방어하기 위하여 벌이는 이교도와의 투쟁을 이르는 말. 성년 남자의 이슬람교도는 이슬람법에 정하여진 바에 따라 의무적으로 참가하여야 한다.” 마치 이슬람교가 종교의 이름으로 테러를 의무화하고 부추기는 것처럼 읽힌다.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앤드메리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인 존 모리얼과 타마라 손이 함께 쓴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원제: 50 Great Myths About Religions)는 이런 해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지하드는 아랍어로 ‘노력’이라는 뜻이다. “믿는 자들이여, 허리 숙여 엎드리고 주님을 경배하며 선행을 베풀라. 그리하면 너희가 번성하리라. 또한 하느님을 위해 가능한 한 노력하라”(코란 22장 77~78절)의 바로 그 ‘노력’이다. “지하드는 불의나 질병, 빈곤 같은 주요 장애 요소들에 대한 일치단결된 노력이나 투쟁을 가리키는 일반 용어”다. 지하드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탐욕이나 게으름처럼 저급한 본능들을 조절하려는 노력은 “더 높은 차원의 지하드”이고, “정의를 위해 노력하다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더 낮은 차원의 지하드”다.


이슬람.jpg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이슬람교 이맘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 앞에 지난 1월18일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탄생일을 축하하려고 모인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다. 김성광 기자


지은이들은 이슬람교가 원래부터 폭력적이라는 관념은 기독교에 의해 비교적 최근 만들어진 것이며, 폭력은 이슬람 내부에서도 죄악으로 규정한다고 말한다. 원래 ‘이슬람’(islam)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는데, 이는 평화를 뜻하는 살람(salaam)과 관련 있다. “정통파의 이슬람법에는 테러리즘, 곧 히라바를 다루는 범주가 있다. (…) 히라바와 테러리즘은 이슬람교의 적이다.” 물론 압제자들에 대항해 싸우라는 구절도 있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신명기> 20장 10~14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코란은 “너희에게 도전하는 하느님의 적들에게 도전하되, 그러나 먼저 공격하지 말라. 하느님은 공격하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시니라.”(코란 2장 190절)라며 선제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코란에는 자살테러를 하면 천국에서 숫처녀 72명한테 시중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코란은 특히 자살을 비난한다.


이 책은 이슬람만이 아니라 기독교와 유대교, 불교와 도교, 힌두교 등 종교에 대해 널리 퍼진 오해를 소개하고 뒤집어 본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은 기독교도의 피로 의식을 치른다’ ‘유대인들이 기독교도들이 사용하는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등의 오래된 비방에 대해 “영국과 기독교권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널리 퍼져 있는 지독한 반유대주의의 일면이었다”며 대부분 근거 없는 주장들이라고 일축한다. 유대교에서 기독교가 갈라져 나오면서 서로 경쟁의식을 갖게 됐고, 특히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주장이 <마태복음서>를 비롯한 기독교 문헌에 나오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강한 반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유대인을 증오한 대표적인 인물이 종교개혁의 선봉장 마르틴 루터다. 그는 유대인들이 “잔뜩 똥을 묻힌 채 뒹구는 돼지처럼 악마의 배설물” 속에서 뒹굴고 있다며, 이런 “유해한 독충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루터의 증오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게 루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절멸 계획’이었다. 히틀러는 루터를 독일의 위대한 천재라고 찬양까지 했다.


기독교의 경우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한 오해가 많다고 지은이들은 지적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일신교도가 아니었으며, 예수가 동성애나 가족가치관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문헌 증거로 입증하기도 하고, 성서의 모순을 최초로 제기한 17세기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를 인용해 ‘모세 5경의 저자는 모세’라는 주장의 허구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모세가 어떻게 자신의 장례식에 관한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예수의 탄생에 관한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의 엇갈리는 진술을 실마리 삼아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추적하기도 한다. 예수의 십자가상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서로마제국의 황제 샤를마뉴 대제에게 정복당해 개종을 강요당한 게르만족인 색슨 사람들인데, 자신들이 개종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예수의 십자가상에 투사한 것이라는 주장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종교에 대한 무수한 오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지은이들은 인간의 조상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집단을 이뤄 생활하게 되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인간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두뇌에 채우기 시작했는데, 직접 관찰할 뿐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퍼뜨리게 됐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자기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불신하고 두려워하고 심지어 경멸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배타적 혐오증이 다른 종교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증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국인 혐오증, 곧 자신의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히 만연해 있다.”


종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배타적 혐오증이 문제라는 얘기다. 타인의 종교를 모욕하지 말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새삼 크게 들린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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