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로마 교황청은 성인을 승인하는 시성식에 앞서 찬반 토론을 벌이도록 했는데, 찬성하는 쪽은 '신의 변호인', 반대하는 쪽은 '악마의 변호인'이라 했다. '악마의 변호인'은 교황청에 의해 임명된 역할이기에 진심과는 무관하게 반대 의견을 제출해야만 했다. 이는 1587년 교황 식스투스 5세가 시작한 제도로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공식 폐지될 때까지 약 400년간 사용되었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 출간한 『자유론』에서 그 취지에 대해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라 하더라도, 악마가 그에게 할 수 있는 온갖 험담이 혹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기 전에는 그런 영광된 칭송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 폐지 이후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은 500명인데, 매년 성인이 되는 사람들의 비율은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20배 정도 높아졌다고 한다. 즉, '악마의 변호인'제도가 사라지면서 성인이 양산된 것이다. 어떤 게 더 좋은 건지는 교황청이 판단할 일이지만, '악마의 변호인'제도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제어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싸가지 없는 진보>(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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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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