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새끼를 낳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2013년 신생아는 43만6455명이었다. 2006년 49만3189명에서 5만6천여명이 줄었다. 2006년 이후 저출산대책비로 150조원의 돈을 쏟아부었지만 별무효과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앞으로 5년이 저출산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닥칠 것이기에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고심하는 일본에선 노년층 부양을 위한 세부담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젊은층들이 국외로 이주해 국가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남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대형 교회들도 출산 장려 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 평균 출산율 2배인 모르몬교 신자들과 같은 호응은 없다.
*일러스트 이임정 기자
정작 아이를 낳을 당사자들인 젊은이들은 “이런 노예의 삶은 나 하나로 족하다”며 ‘출산 불복종’에 나서고 있다. 5년 전 서울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SNUlife)에 ‘숨김’이란 필명을 가진 서울대생이 썼다는 ‘우리의 미래는 필리핀’이라는 글이 이런 정서를 대변한다. 요즘 에스엔에스에 널리 유포되는 이글은 “지금까지는 빚을 내서라도 학원 다니고 과외 받아 벗어나 보려 애썼지만, 이젠 발버둥쳐도 넘어갈 수 없고, 상위 1%가 되지 않으면 결국 노예일 뿐”이라고 했다. 박정희 시대의 ‘우리도 하면 된다’는 신화와 정반대로, ‘이제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라는 절망적 패배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필자는 “아이를 낳아줘야 그 노예들의 아이들도 또 노예가 되어 기득권층이 늙었을 때 자신은 자본을 대주고 편하게 노동력을 제공받고, 그 아이들이 월급 받은 돈으로 매달 펀드도 사야 주식도 올라가고, 차도 사고 이것저것 소비도 해줘야 경제가 순환하는데 도무지 아이를 낳지 않아 경제구조 자체가 무너질 지경이어서 다급해진 기득권층이 낙태 단속도 하고 보육비도 대주겠다고 난리지만, ‘잉여 인생’은 나로서 충분하다”고 ‘출산 거부’ 이유를 밝혔다.
*신생아들. 한겨레 자료사진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려면 2050년까지 1159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은 이미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구조다. 출산율도 그렇다. 이미 100명의 신생아 중 5명이 다문화가정 아이다.
정부와 기업가는 인구 증가를 위해 토끼를 세듯 출산 인원수를 세지만, 가진 것 없이 뼈 빠지게 일해도 고단한 삶을 탈출할 수 없는 당사자들은 다르다. 피임약 하나 구하기 어려웠던 예전에야 토끼처럼 낳아 놓은 자식들을 놓고 ‘다 제 먹을 건 제가 타고난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또 그중에 개천에서 용이라도 나면, 힘들어도 그때 낳길 얼마나 잘했느냐고 자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그런 기대는 난망이다. 필리핀 같은 후진국에 간 프란치스코 교황도 ‘피임과 낙태 반대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토끼처럼 아이를 많이 낳는 게 대수가 아니라, 안전하고 책임 있게 낳고 키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낳기만 한다고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게 아니니, 자식이 인간답게 살 환경까지 존중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아도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나아지길 원하는 게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가 아니라는 걸 안다. 가진 재산에 따른 사교육과 스펙 쌓기에 따라 경쟁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다. 현 정권의 개각과 인사 때마다 의무와 책임과 법 위에 군림하는 ‘천상의 계층’을 보여준다. 그들의 출산율 장려란 꼭대기에 군림할 내 자식들이 딛고 설 수 있게 넓고 튼튼한 피라미드의 하층을 쌓아 달라는 걸로 보이기 쉽다.
젊은이들이 낳을 아이는 토끼가 아니다. 누군가의 노예도 아니다. 공정한 레이스에서 때론 넘어지며 일어서서 당당히 제 삶의 주인으로 커갈 사람이다. 그런 미래라면 부모로서 짊어질 고락을 이토록 쉽게 포기할 우리의 젊은이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출산율이 아니라 1%만을 위해 99%를 절망케 하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