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 불리는 병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5~27)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주변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 기초 장치가 가정입니다. 부모와 자녀와 형제들... 의식주와 노동에서 가족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서 마을 자치의 공동체 구조가 있습니다.
교육과 치료 등에서 이웃의 도움으로 어려울 때는 좀 더 멀리에서 구해 오거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 거리가 대체적으로 사방사리(四方四里)입니다. 대중적 교통수단이 없던 시대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 사방사리의 거리가 현재 행정구역인 ‘군(고을郡)’ 단위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환경이 자신의 몸과 삶을 만든 것이라서 ‘신토불이(身土不異)'라고 합니다. ‘사방사리 신토불이(四方四里 身土不異)’에서 온 말입니다. 치료약을 구하는 일도 사방사리를 벗어나야만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무리인 것이니, 굳이 애쓰지 않고 천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대 이상이 사는 대가족제의 전통적인 가정과 마을의 구조 속에서는 출산에서 죽음까지 생노병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자급되었습니다. 산부인과도 119도 없던 시절이지만 모든 것이 그냥 ‘자연’이었습니다. 아기를 받아 출산하고 밤중에 아기가 경기(驚氣)를 하면 할머니나 이웃이 응급처치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못 배우고 가난했어도 결혼 못하는 사람이 없고 일자리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에 비해 노인의 수명은 짧았지만 온 가족이 호스피스가 되어 돌봄 속에서 임종을 맞았습니다. 정말로 인간답고 생명다운 자연의 생태적 삶입니다.
물론 옛날에도 인간관계의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고독(孤獨)’이라 합니다. 나이가 어린데도 보호해줄 부모가 없는 상태를 ‘고(외로울孤)’라 하고(고아 孤兒) 나이가 많은데도 돌봐줄 자식이 없는 상태를 ‘독(獨)’이라고 했습니다(독고 獨孤). 그렇지만 바로 친척과 이웃과 인정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중에서
이렇게 삶의 모든 문제는 가정과 마을 자치로 완벽하게 해결합니다. 그런데 산업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농경사회와 마을이 해체되고 가족은 있지만 가정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밥도 먹을 시간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가가 나선 것이 ‘사회복지’라는 개념입니다. 사회가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고 가정이 되어 출산문제 급식 교육 의료 노인문제를 해결하자... 뭐 그런 뜻이지요.
자본주의 산업화로 가정과 마을을 해체시켰으면 당연히 국가가 그것을 대신해야 하는 것인데, 부자들의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정당은 사회복지를 싫어합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것 때문이지요. 그런 부자정당이 미국의 공화당이고 한국의 새누리당, 일본의 자민당, 영국의 보수당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정당을 좋아하고 투표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지요. 뭘 좀 알면 그러지 않을껀데 말이죠. (박신부 말이 길어지는군...!)
암튼 전통적인 삶의 가정에는 자녀들이 많고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 구조가 생태를 이루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고독하다!
자녀가 하나 또는 둘 뿐이어도 고독하다!
자녀가 여럿이라고 해도 공부를 많이 해서 제각각 전문성을 가지고 흩어져 살게 되면 고독하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가 거절하여 태어나지 조차 못하고 형제간은 한 둘 뿐이니 고독하다!
고독이라는 병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입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당대 유대사회 전통적인 가정에 태어났지만 일반적 건강성을 가진 가정은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형제간이 최소한 대여섯명은 기본이던 시대에 유일한 독자로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들어 태어난 것이니 어쩔 수 없지요. 고독한 삶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음을 앞두고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가 어머니였습니다. 노년을 맞게 될 모친의 고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언제나 대안은 공동체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공동체에 부탁하십니다.
“요한! 이분이 당신의 어머니시오. 어머니, 그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모두의 아들이 되고 모두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래서 고독의 병을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가정은 해체되고 돌봐줄 자식은 없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얼굴도 모르는 간호사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삶은 고독합니다. 시대의 기반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뿌린 결실입니다. 수명이 길어져 100세 장수를 한다고 한들 자식들은 곤경하고 자신은 고독한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짧게 살아도 고독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생을 축원합니다. (2015. 3. 7) *
어머니, 자식들 기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일어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