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달빛 흠뻑 받은 한밤의 나들이

$
0
0



오대산에서 달빛을 만나다



editwc.jpg



보름날(음력15일)부터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이지만 아직은 그 둥근 빛의 여운이 남아있다. 그야말로 '끝물'달빛이지만 아쉬운대로 나그네의 눈을 달래주기엔 별로 부족함이 없다. 자야할 시간인 삼경(밤 9시) 무렵에 주섬주섬 목도리와 장갑을 챙겼다. 다른 객들에게 혹여 방해가 될까봐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발굼치를 들고 마루를 거쳐 가만가만 현관문을 연다. 


여러 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진 템플스테이 공간의 창호지 문에는 드문드문 불이 켜져있다. 절집생활과는 달리 세간사람들이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 이른시간인 까닭이다. 혼자 달빛기행에 나섰다. 경내엔 상야등(常夜燈) 때문에 달마저 높이 매달린 가로등처럼 보인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건넜다. 겨우내 얼어있던 금강연(金剛淵)에는 이미 봄기운으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낸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자리에 설치된 가로등의 키는 무릎 아래를 넘지않는다. 그리고 불빛마저 차분하면서도 은은하다. 이제사 달빛은 달빛이 되고 등불은 등불이 된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에서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상대방을 간섭하지 않는다.


오대산 동쪽 봉우리는 만월산(滿月山)이라고 부른다. 만월산의 정기(精氣)가 서린 곳에 월정사(月精寺)를 창건했다. 만월은 모양만 호떡마냥 둥근 보름달은 아니였다.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건 제 길대로 찾아가고 있는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골고루 그 빛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중생들은 만월보살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만월은 늘 동쪽에서 뜬다. 태양도 서쪽에서 뜰 일이 없겠지만 달도 서쪽에서 뜰 일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이 살고있는 세상을 동방만월세계라고 불렀다. 그 곳은 일종의 이상향이었다. 그곳을 찾아 나섰지만 가도 가도 그 동쪽은 끝이 나오지 않았다. 만월세계는 우리의 걸음걸이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나름 지혜를 동원했다. 가닿을 수 있는 자리에 만월세계를 만든 것이다. 달밤의 아름다운 도량은 있는 그대로 만월세계의 현현이었다. 마음의 달은 더 아름다운 절이였다.     

 

지혜의 광명으로 온 세상을 밝히기 위해 수행승들은 '만월선원'이란 현판을 달았다. 아침 방선(放禪:선원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객승에게 잠시 짬을 내어 차를 한잔 대접해주는 주지 정념스님의 마음 씀씀이에 모과차는 그대로 달빛마음차로 바뀌었다.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피로감에 혹여 아침공양을 건너뛸세라 걱정하며 동도 트기 전에 서쪽 끝자락까지 일부러 찾아와 문 밖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방외지사(方外之士,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현기스님의 목소리는 더욱 정겹게 들린다. 두 분의 거처는 모두 대웅전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탄허(呑虛 1913~1983) 대종사께서 머물렀던 방산굴 역시 동쪽집이다.


editmoon.jpg

달이 뜬 월정사 풍경

*출처 : 월정사 템플스테이 홈페이지(http://www.woljeongsa.org/templestay/)


객실은 서쪽집이였다. 태양이건 달이건 뜨는 곳이 있으면 지는 곳도 있어야 한다. 그렇치 않고 늘 공중에 매달려 있기만 한다면 해와 달 역시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 피로감은 결국 제 빛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활동과 휴식이라는 양변의 이치는 하늘의 달이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어두운 밤에 세상을 비추는 일을 위해 초저녁에는 동녘에서 떠올랐고, 내일 또 그 일을 위해 새벽에는 서쪽으로 돌아가서 쉬어야 했다. 


서쪽 달을 전송하는 위치에는 제월당(霽月堂)이 자리한다. 제월(霽月)은 비개인 뒤 하늘의 달처럼 맑고 밝은 모습을 말한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는 제월담(霽月潭)이란 소(沼)가 있다.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흐린 날 혹은 바람부는 날, 그리고 비오는 날처럼 낭패와 어려운 일과 종종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바쁘고 힘들수록 한 템포 쉬어갈줄 알아야 한다. 또 옆길로 돌아서 갈줄도 알아야 한다. 휴식형 템플스테이 공간은 그래서 필요하다. 한옥의 방바닥에 누워 딩굴거리며 아무 생각없이 몇일동안 등짝을 지진다면 맑은 달 처럼 몸과 마음이 개운해질 터이다.


그 곁에 지월당(指月堂)이 있다. 달동네(?)답게 또 달집이다. 달을 가르키는데 달은 보지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는 어리석음을 선인들이 이렇게 문학적인 말로 만들었다. 초저녁에 동쪽의 달을 가르켰을까? 새벽녘에 서쪽의 달을 가르켰을까? 아니면 한밤중에 중천에 떠있는 달을 가르켰을까? 오대산에서 출가하여 젊은 시절을 월정사에서 보낸 지월(指月 1911~1973) 선사는 중천의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따라 남쪽인 가야산으로 오셨나 보다.


반대로 필자는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달려왔다. 출가학교에서 오십여명의 선남선녀들이 달 같은 해맑은 표정으로 8박9일의 ‘마음출가’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 강좌 맡은 인연따라 나름 고상한 달빛나들이가 된 셈이다. 등 뒤에 새벽달을 두고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자월명(自月明)하라.
스스로를 달빛 삼을지어다.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3077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