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장미꽃이 피게
어느 출판사에서 <종교와 연애>라는 책을 내는데, 저보고 한 chapter 쓰라고 해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의 사랑에 대해 썼습니다.
140매 원고를 완성하여 보냈습니다. 아직 출판되기 전이라 어디 발표는 곤란하고 그 도입 부분만 퍼올려 봅니다. 총 제목은 <무소유의 사랑>입니다.
*장미꽃이 핀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성인들이다. 그리고 그들 둘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보여주는 설화가 있다.
어느 겨울 날,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할 무렵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스펠로라는 곳에서 자기들의 거처가 있는 아시시(Assisi)로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 약간의 빵과 물을 구하려 주막 같은 곳에 들렸다. 이들을 보고 거기 있던 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이렇게 늦은 시간 두 남녀가 같이 길을 가는 것이 수상하다는 투였다. 식당에서 나와 눈 덮인 길을 조금 가다가 황혼이 내릴 무렵 프란치스코가 길을 멈추고 클라라에게 말했다.
“자매여, 저 사람들이 무어라고 수근 거렸는지 알아들었나요?”
클라라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프란치스코가 말을 계속했다.
“이제 우리가 헤어질 때가 되었네요. 자매는 어둡기 전에 수녀원에 도착하겠지요. 나는 하느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든 그 길을 따라 혼자 가겠소.”
클라라는 길 한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한 다음 고개를 숙인 채 황망히 길을 계속했다. 얼마를 가는데 숲길이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다. 인사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위로의 말도 없이 이렇게 그냥 헤어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기다리고 있는데 프란치스코가 다가 왔다. 클라라는 그에게 물었다.
“신부님,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프란치스코는 대답했다.
“다시 여름이 되고 장미가 필 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로뎀 나무 숲과 눈으로 덮인 울타리가 온통 붉은 장미로 뒤덮인 것이 아닌가. 클라라는 장미 한 다발을 만들어 프란치스코에게 건넸다. 둘은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사랑이, 혹은 간절함이 불러오는 것이 어디 이런 기적뿐이랴.
*이 글은 '종교너머, 아하'(www.njn.kr)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