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만난 카스트로 “교회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
바티칸에서 첫 접견 뒤 “교황에게 큰 감명 받았다”
교황, 메달 선물하며 “빈곤층 위해 더 노력해달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교황과 카스트로. AP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신론자인 사회주의 혁명가의 마음에 깊은 파장을 일으켰다.
라울 카스트로(84)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0일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처음 만나 환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교황에게 너무나 감명을 받았으며, 가톨릭 교회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5살 위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카스트로 의장에게 남미 대다수 나라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비엔베니도(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따뜻이 맞았다. 카스트로 의장은 머리를 숙이고 교황의 두 손을 잡으며 경의를 표했다.
이날 교황은 카스트로 의장에게 종교에 대한 온건정책 뿐 아니라 신앙의 복귀까지 설득했다고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교황은 또 카스트로 의장에게 ‘빈자들의 성인’인 ‘투르의 마르티노’가 새겨진 메달을 선물하며 “성인이 외투로 가난한 사람의 몸을 덮어주고 있다”며 빈곤층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환담 뒤 기자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든 연설과 논평을 다 읽었다”며 “교황이 계속 그런 방향으로 말한다면 나는 조만간 가톨릭 교회로 돌아가겠다. 농담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은 예수회 소속인데, 나도 어떤 면에선 예수회 사람이다. 줄곧 예수회가 세운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라며 교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어 “나는 종교를 허용하지 않았던 쿠바 공산당 출신이지만 지금은 허용하며, 이건 중요한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쿠바를 방문할 때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기꺼이 참석할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카스트로 의장이 교황에게 쿠바 국민들이 오는 9월 교황의 쿠바 방문을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을 적극 중재한 것에 대해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정치, 사회, 문화 시스템을 개선하려 하지만, (급작스런 변화에 따른) 충격이 없이, 길거리에 나앉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매우 어렵다”며 개혁의 난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1996년엔 라울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났고, 2년 뒤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쿠바를 방문한 바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