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맞아 천도교 중앙총부 주최로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아이를 때리지 말라'
원탁 대 토론회에서 기조연설하는 법륜 스님.
“사실 제가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아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것을 좀 망설였습니다.(웃음) 하지만 장기판에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이자, 인류로서의 인간입니다. 생물종으로서의 인간은 유전자의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작동합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인간종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속에서 길러져야 인류로서 인간이 됩니다. 인류로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인류가 살면서 수없이 축적해 온 경험인 정신작용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100여 년 전 인도에서 짐승들과 같이 살고 있는 아이 2명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아이는 10년 넘게 교육받았지만 결국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타잔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4살 때까지 엄마품에 자라면서 사람으로서 기본 정신 프로그램을 전수받은 후 동물속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려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종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져야 하고, 그 바탕위에 인류로서의 정신작용인 소프트웨어가 깔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아이는 한 몸입니다. 이때 엄마가 독성 있는 음식을 먹으면 아이가 탈이 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한 엄마는 담배 등의 해로운 음식을 먹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엄마가 스트레스 받으면 아이는 심리적 불안이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태교는 엄마가 음식을 가려 먹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옛부터 아이를 잉태한 엄마를 장례식에 못가게 하는 것은 엄마가 슬프면 아이가 나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세 살 때까지 형성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살 때까지 형성된 것은 아이에게 강하게 각인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 자동으로 한국말을 하고 김치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자아형성기에 정신적으로도 그대로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도 우울하고, 엄마가 정신분열이 있으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릴 때 심리불안이 형성되면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래서 세 살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잘 돌봐야 합니다. 생모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만약 엄마가 있는데 할머니가 돌보면 아이에게 정신적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키우면 아이의 심리적 모체는 할머니가 되어 할머니가 엄마인데, 의식은 젊은 여자를 엄마라고 인식하므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면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낳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키운 사람이 엄마가 됩니다. 흑인인 아이를 백인이 키우면 백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아이가 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엄마, 아빠를 절반씩 닮지만 심리적으로는 대부분 엄마를 닮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엄마들이 가정형편이 어렵다,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많이 겪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정성스레 돌봐야 할 어릴 때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아이가 자율적으로 생활을 해야 할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돌본다며 지나치게 과잉보호해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게 합니다.
법륜스님과 박남수 천도교 교령.
엄마는 세 살까지는 아이를 100% 돌봐야 합니다. 그러나 유치원, 초등학생이 되면 학습하는 시기이므로 부모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버지가 술주정하면 아이도 자라면 똑같이 따라 합니다. 부부가 자주 싸우는 집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더 심한 부부갈등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무의식으로 움직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좋은 물건을 사주는 것은 사실은 엄마의 만족일 뿐입니다. 어릴 때부터 야단을 치면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아이가 커서 야단을 치면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큰 애는 야단을 안치고, 작은 애는 야단을 칩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성이 생기면 판단할 수 있는 자율권이 생기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작은 일에도 말없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까지는 70% 돌보고, 중학생은 50% 돌보고, 고등학생은 30% 돌보고, 대학생이 되면 완전히 독립시켜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 변화도 필요합니다. 지금의 유아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무료보육은 언뜻 보면 좋은 것 같지만, 아이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 보내게 해서 아이를 엄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어린아이는 제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3년 유급휴가를 주는 것 같은 특별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는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남편이 아이의 성장에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한다면 남편이 아기 엄마를 편안하게 해주면 됩니다. 할머니 역시 며느리에게 잘해주는 것이 손자가 잘되는 길입니다.
정부는 엄마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정책을 펴야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자살이나 정서적 불안,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문화가정의 엄마는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고 한국어도 잘 못해 심리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임신하고 키웁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면 피부색 등으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여 상처가 큽니다. 이렇게 성장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20년 후 한국사회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엄마가 행복할 수 있도록 아기 엄마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미래 우리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 늘 엄마들에게 해주신 이 말씀은 어린이날 더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과 방청객들은 스님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였습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12명의 패널과 종교인 모임 7명의 종교인들의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패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나누고 이를 해결할 대응방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글을 정토회 `스님의 하루'내용입니다.
http://www.jungto.org/buddhist/budd8.html?sm=v&b_no=67474&page=1&p_no=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