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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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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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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밤나무 신랑과 밤나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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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의 정이품 소나무, 막걸리를 마시는 청도 운문사 고목 등등이 있듯이 유명한 고목들과 얽힌 재미 있는 이야기는 도처에 깔려있다. 독일의 몇몇 고목을 보기로 하자. 


독일에 있는 아주 특이한 모양을 한 ‘춤 보리수’ 는 유럽에서도 기이한 나무에 속한다. 이 고목에 대한 학자들의 추정 연도를 대략 800 ~1000년의 나이로 본다. 이 고목에는 땅에서부터 시작되는 22개의 돌계단이 나있어 나무 위로 올라 갈 수도 있다. 떡 벌어진 무성한 잎 속의 나무 둥치에는 자그마치 870 제 곱미터(약 270평)나 되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은 예로부터 추수감사절, 결혼식등등의 축제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1800년 초 이 마을에 주둔했던 프랑스 군인들이 나무 위에서 회의까지 했다고! 또 유명한 귀족의 가족들이 이 마을부근의 성(城)에 휴양 올 때마다 이 ‘춤 보리수’ 나무 위에서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식사했던 곳이기도 하다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휘영청 달이 밝으면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로 변모하기도 하고, 또 나무 위에서 음악회, 연극 공연은 물론 어떤 땐 90명이 모인 주민들 축제가 이 나무 위에서 열리기도 했다.


오랜 역사와 얽힌 전설을 가진 ‘에데기날 보리수’도 빠질 수 없다. 이 나무와 관련된 전설이 담긴 ‘에디기아와 에데기날’ 그림이 독일 남부 지방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074년 프랑스의 하인리히 1세의 딸 에디기아가 궁정에서 도망을 나와서 이 보리수나무에서 살았는데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준 남자와 결혼 하기 싫어서였단다. 이 나무에서 마치 은수자처럼 살았던 그녀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인생 상담은 물론 그들을 위해 기도까지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약초지식을 지녔던 그녀는 약초로 약을 만들어 많은 병자들까지 치료해주었다. 


이렇게 35년 간 이 보리수나무에서 살았던 그녀는 1109년 2월 26일에 죽었는데 정확한 날짜까지 명시되어 있으니, 어쩌면 전설이 아닌 실제의 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기념한 그림을 보면 보리수나무의 옴폭 파인 곳에 살았지만 사실은 보리수나무 옆에서 움막을 치고 살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이 보리수나무는 거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에디기아의 전설을 끌어안고 서있다.


그녀의 뼈를 근교 성당에 잠시 간직했다가 후에 주민들이 그녀를 기념하는 조그마한 경당을 지었다. 1995년 2월에 주민 약 50명이 모여서 이 보리수나무 아래서 에디기아의 일생을 연극으로도 공연했다. 에디기아와 이 고목이 있다 보니 이 마을엔 순례객들도 자주 찾아온다. 이렇게 온 방문객들이 에드기아에게 소망을 기원하는 글을 경당에 놓인 방명록에 남겨 놓기도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녀와 얽힌 얘기 때문에만 이 보리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고목이 늘 신선한 산소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주는 고마움도 잊지 않는다.


고목은 인류 문화사에서 주로 종교와의 연관성이 많은데 이 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고목이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고 생각했기에 에데기날 보리수 고목의 영험도 믿었다. 유럽에 기독교가 전래 되자, 이런 고목이 지닌 영험을 곧 바로 미신으로 치부 했다 보니 수많은 고목들이 잘려나가 버렸다. 


비록 고목들은 잘려 나갔지만 이런 종교성까지는 베어 낼 수는 없었다. 이런 종교성이 인간의 삶 속에 늘 깔려 있다가 대물림 되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마녀사냥의 배경도 이런 종교성의 의미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유럽인들의 고유한 종교뿌리가 일반인들의 생활 안에서 다시 살아난 시기였던 거다. 


이제 유럽인들은 이들의 고유 종교였던 ‘비카종교’ 등등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동양불교에 대한 관심도 끝이 없다. 지금 우리가 전통종교의 가치를 알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유사하다. 오랫동안 폄하하기만 했던 우리의 巫俗이 “巫敎”(문화인류학자 조흥윤)로 격상된 것이 그 한 예가 되지 않겠는가? 또한 유사한 예는 “풍수지리설”이 “풍수지리학”으로 변칭된 것이라 하겠다. 심지어 사주팔자가 이젠 ‘미래예측학’으로 격상되면서 대학의 정식학과로 개설될 정도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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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꿀밤나무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 이 나무의 이름은 한글로 번역하면 ‘신랑 떡갈나무’다. 이 고목도 인간의 원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결혼 문제다. 점 찍은 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지닌 여인이 있다면, 침묵하면서 이 나무 주위를 3번 돌아라! 1년 내에 점 찍은 남자와 결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오게 되었을까. 1890년경에 미나라는 여자와 초콜릿공장 집 아들이 서로 사랑했지만 집안 어른들의 강력한 반대로 결혼이 무산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들은 5 미터 높이에 있는 ‘나무 구멍 우체통’ 을 통해서 편지교환을 하면서 비밀스레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을 나누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어느 날 두 집안이 드디어 이들의 결혼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이 나무가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복덩어리의 상징물이 되자, 사람들은 개인적인 행운을 기원하는 편지를 이 나무 웅덩이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점점 더 유명해진 이 나무는 시로부터 ‘23701’이라는 우편번호까지 당당하게 받았다. 우편배달부도 있는데 그의 이름은 마르텐스인데 진짜 우체국 직원은 아니다. 그의 취재 기사를 잠깐 옮겨보면, 은퇴하고 난 후 18년 간 그는 이 일을 맡았다. 그는 매일 점심 때쯤 5 미터 (나무높이 25m / 500년 수)나 되는 나무 위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하루 50여 통의 편지를 나뭇가지 구덩이에 넣어 놓고서는 내려온다. 그 다음날 와 보면 편지가 거의 다 사라진다고 했다. 이 편지들은 누구나 꺼내 읽을 수 있고, 자기에게 해당 사항이 있으면 가져 갈 수도 있다. 


사실 그가 지금의 부인을 만난 것도 이 나무 덕분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이 나무 때문에 TV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이 기회를 이용한 그는 파트너를 찾는다는 한마디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 방송을 들은 한 여인이 정말 여기로 편지를 보냈다. 지금의 부인이 바로 그녀다. 이 마을엔 이 고목을 통해서 만난 인연이 5쌍이나 된다고 했다. 


마르텐스씨는 55센트(약 800원) 우표 한 장 값으로 커다란 사랑을 얻었다고! 묵묵하게 인간을 돕는 이 나무를 무지 고마워하면서 마치 사람을 칭찬하듯 치켜세웠다. 이 고목은 2009년 이래로 새로운 신부까지 생겼다. 늘 혼자 있던 이 ‘신랑고목’이 애처로워서 사람들이 한 참 떨어진 뒤셀도르프에 있는 밤나무와 상징적인 결혼을 시킨 것이다. 거리가 너무 떨어졌기에 늘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인간은 백 년도 다 채 못 채우는 삶을 살다 간다. 역사 속 사람들도 어디론가 모두 다 떠났듯이 우리 역시 언젠가 그렇게 또 떠난다. 그렇지만 수 백 년 전부터 살았던 이런 고목들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어쩜 먼저 간 이들의 희로애락을 다 듣고서 부둥켜안고 있을지도 모르는 고목들이다. 이 나무들이 벙어리가 아니었다면 먼저 간 인간들의 사연을 줄줄 풀어 헤쳐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고목들은 희로애락이 뒤섞여 살다 갔을 인간들의 얘기를 어디다 다 갈무리 했을까? 아니면 지금도 줄줄이 풀어 헤치고 있는데도 혹 우리가 이런 고목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도 고목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경상북도 어느 지방에서 도로 확장공사 중이었다. 근데 도로 중앙에 서 있는 나무 하나가 문제였다. 이 고목을 베어야만 확장공사 진행이 계속 될 판인데 아무도 그 나무를 베려 하지 않았다. 그 나무를 베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말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었던 터다. 도로를 닦는 이들도 다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데 누가 선뜻 나서서 목숨을 담보로 그 나무를 베겠는가? 


그 이후 그 나무를 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고목이 어찌 되었을까 하고 궁금하던 차에, 필자가 몇 년 전 그 도로를 지나가게 되었다. 세상에! 도로 중간에 그 고목이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당시 그 나무를 결국은 살려 두었던 것이다. 그 구전이 진짜이든 가짜이든지 간에 그 고목을 그대로 살린 도로의 운치가 더 아름다웠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 못하는 보리수 나무와 말 할 줄 아는 독일인들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면서 나누는 우정이 아름답기만 하다. 이런 아름다움이 바로 또한 자연보호의 한 측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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