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임제 선사의 사자후다.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어떤 권위에도 주눅 들지 말며 오직 자신의 주인으로 당당히 살 것을 권하는 대자유의 언설! 이런 도저한 자유의 강조는 초기불교부터 강력히 드러나는데 많이 회자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 게송의 출전은 최초의 불경 <숫타니파타>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초기불교 경전인 <법구경>보다도 앞선 숫타니파타는 ‘경집’이란 말뜻 그대로 70개의 경(숫타)들을 모아놓은(니파타) 책이다. 붓다가 사용한 다양한 비유와 방편들이 1149개 게송들로 읊어지는 경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번개처럼 심장을 가르고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비유들이 강력한 방편으로 마음과 정신을 일깨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 전체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일종의 후렴구다. 숫타니파타를 매우 사랑했던 법정 스님은 강원도 오두막 한쪽 벽에 213번 게송을 써붙여 두었다고 한다. 이 게송이 법정 스님의 심장 속에서 늘 뛰었으리라. 나 역시 이 게송을 ‘수처작주 입처개진’과 함께 책상 옆에 붙여두고 지낸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김선우 시인·소설가 /한겨레 연재 <김선우의 빨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