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길
*장수마을의 어르신들. 한겨레 자료사진
얼마 전 모임에 갔더니 한 친구가 은퇴한 사람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고 얘기했다. 첫째, ‘옛날에 금잔디’ 노래하듯 자신이 살아왔던 고리타분한 소리를 유성기 틀어놓듯이 반복한다. 둘째, 모자를 눌러쓰고 완전한 늙은이 행세를 한다. 셋째, 평생 매너 없이 살아왔으면 지금이라도 매너를 좀 배워야 하는데 더 심해져서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표하자 그는 몇마디를 추가했다. 은퇴 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면 돈 버는 일은 하지 않더라도 할 일은 많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위한 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 먹고산다고 소홀히 했던 취미를 다시 시작하는 일처럼 의미있게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퇴한 사람들의 모임에 가보면 과거 자신이 어떤 일을 했다는 것만 얘기할 뿐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장래에는 무엇을 할 것이라는 소개가 없다. 보통 수인사를 나눈 뒤 전직을 묻거나 나이를 따져 서열이나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주재하는 모임에서는 자기소개를 할 때 방법을 달리했다. 지난 얘기는 하지 않고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 자신의 꿈에 대해 소개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대화가 잘 이뤄졌다. 생각 없이 참석한 사람도 자극을 받았다.
나이 든 걸 무슨 권리라도 되는 듯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보기 추하다. 지하철을 타면 이런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노약자석에서조차 나이로 서열을 따지려는 노인도 있다. 휴대폰을 사용할 때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것도 꼴불견이다. 물론 청력이 나빠져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그럴 테지만 공공장소에선 전화통화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노인이 되는 길, 또 하나는 어른이 되는 길이다. 노인은 자기만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나이 들수록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남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준다. 이런 어른의 주위엔 사람들이 모여든다.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젊어서부터 부단히 가꾸고 노력해야 한다. 노인이 될 것인가, 어른이 될 것인가.
백만기(63) 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한겨레> '시니어통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