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2500여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거리에 큰 통을 하나 두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자고, 탁발을 해 살았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가끔 조각상 앞에 서서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렸다. 조각상이 돈을 줄 리 만무했다. 친구들이 “그게 무슨 짓이냐”고 묻자, 디오게네스는 “거절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가장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 거절이다. 디오게네스는 최초의 세계대왕 알렉산더가 통 앞에 찾아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고 했을 때도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했을 만큼 자족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조차 구걸하며 내민 손을 외면당하는 것만큼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각상 앞에서까지 연습을 했을 까닭이 없다.
살면서 제일 곤혹스러운 것 중 하나가 입시나 입사 시험에서 원하는 학교나 직장으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에게 해줄 말을 찾을 때다. “너 같은 인재를 몰라보다니”란 위로도 낙방으로 훼손된 자존감을 되돌려주긴 쉽지 않아서다.
*로버트 드니로(왼쪽)와과 마윈.
할리우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최근 뉴욕대(NYU) 예술대 졸업식 축사에서 “여러분은 엿 됐다”며 “이제 거절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들은 취직 잘되는 간호대나 치대, 비즈니스스쿨, 명문 로스쿨, 회계학 전공자들이 아니니, (환영보다는) 거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배역을 따기 위해 7번이나 대본을 읽고 갔지만 오디션에 실패하고, 제작자가 원하는 배우를 찾을 때까지 시간 때우기용 존재였던 무명배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 손주들에게는 예술을 전공하지 말고 다른 실용적인 전공을 하라고 충고를 하겠지만, 다음엔 내가 한 말을 반박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열어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통스럽겠지만, 고통 없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에 거절당해도) 다음이 있지 않으냐”고 했다.
최근 방한한 알리바바 설립자 마윈도 삼수 끝에 겨우 항저우사범학원 영어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도 기업 입사 시험에 30번 이상 낙방했다고 한다. 또 알리바바를 설립한 뒤에도 잘난 동료들은 다른 기업에 스카우트됐고, 갈 곳 없는 이들이 남아 오늘의 알리바바를 일궜다고 고백했다.
세상에 실패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 누구나 서서 걷는 것도, 쓰러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일어서는 도전과 열정으로 이뤄낸 것이다.
더구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22개국 중 최악의 청년실업률을 보이는데도, 파이는 키우지 못한 채 더욱 피 튀기는 경쟁만을 부채질하는 정부 아래에서 생존해야 하는 곳이다. 4년제 졸업생 가운데 기업 입사 시험을 치른 100명 중 3명밖에 합격 통지를 받지 못하는 나라다. 이런 땅에서 몇 번 정도의 낙방에 좌절해 나가떨어져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면접을 마친 취업 응시생의 모습. 김태형 기자
거절은 청년 실업자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매일 지하철과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 광고물을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을 얼마나 많이 외면하는가. 거절은 적대적 보복이 아니라 현대인의 일상사다. 그러니 낙하해 떨어져도 무거운 돌이 되어 나뒹굴기보다는 가벼운 공이 되어 튀어오르는 ‘존재의 가벼움’을 정신건강법이나 생존법으로 익혀야 한다.
모든 교육과 실패의 목적과 의미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니 거절당한 경험을 실패라고 부르기보다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훈련이라고 해야 한다. 자꾸 넘어지는 것은 넘어지지 않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