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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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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는 아름다움 

2013년 06월 02일 <당당뉴스> 박평일BPARK7@COX.NET  

 
 

여든이 넘은 일본시인 사카무라 신민이 

쓴 시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늙는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몰랐다. 

늙는다는 것은 

수양버들처럼 

저절로 고개를 숙이는 것...." 

강진뉴시스.jpg
푸른 보리밭 사잇길로 7일 오전 전남 강진군 군동면 신평마을 들녘에서 노인들이 초록빛으로 물든 보리밭 사잇길로 산책을 나서고 있다. 강진/뉴시스


내일이면 5월 마지막 날이다. 

숲 속에 살다 보면 사업약속을 제외하고는 

달력이나 시계를 챙길 일들이 별로 없다. 



몇 해 전부터 인생을 "처음처럼"살지 말고 

"마지막처럼"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계절의 첫날은 못 챙겨도 

마지막 날 만큼은 가급적 챙기려고 

노력한다. 



이 코끝시린 짙은 프르름, 

벌써 봄이 가고 여름이 왔나 보다. 



지난 달에 내가 얼마나 아름다워졌을까? 

고개는 얼마나 숙여졌을까? 하며 

벽에 걸린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본다. 



예전 모습 그대로다. 



학처럼 목이 좀 길었으면 좋으련만, 

본시 짧고 두루뭉실한 자라목으로 

태어났으니 티가 나질 않는다. 

노인전용영화관한겨레.jpg
노인 전용관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젊은이들이 수양버들처럼 

고개가 축 늘어져 있으면 측은하고 추해 보인다. 

빳빳하게 선 젊은 고개가 아름답다. 



반면 늙은이들의 뻣뻣하게 선 고개는 

노추로 보인다. 오히려 수양버들처럼 축 늘어진 고개가 

후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귀거래사, 나이가 먹어갈 수록 머리를 

숙이며 고향인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창조의 섭리일까. 



인간들은 눈이 감긴 채로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난다. 

눈을 뜨면 몇 달 동안 하늘을 쳐다 보며 지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땅을 내려다 보며 기는 연습을 

시작한다. 

혼자서 걷기 위한 본능적 욕구에서 나온 

준비과정이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거의 평생 동안을 앞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가끔,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 보고 

희망에 부풀어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기도 한다. 

그것들은 잠시 스쳐가는 변덕일 뿐, 고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일반적으로 

고개의 모습은 세상적인 성공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고개가 뻣뻣하게 서 있는 사람일수록 

성공한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성공이 그 사람 삶의 아름다움과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개를 세운 모습이 숙인 모습보다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벼뿐 아니다. 

열매는 고개를 숙일줄 아는 식물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다. 

아름다운 생명은 죽음의 겸손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영어 HUMBLE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HUMUS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HUMAN, HUMANITY 와 동일한 

어원이다. 

HUMUS, 그 어원의 본래 의미는 

"흙냄새가 나다"라고 한다. 


이는 인간들이 흙처럼 겸손해질 때 비로소 

인간적인 사람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겸손한 삶이란 결국 흙처럼처럼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장수마을할머니들한겨레.jpg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할머니들. 한겨레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그래서 공자는 

나이 육십을 

귀로 들어오는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耳順 나이라고 했고, 

나이 칠십을 

마음가는 데로 사는 從心의 나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늙어 간다는 것은 

고개를 숙이며 인간적으로 아름다워지는 

과정이다. 



인간은 

겸손할수록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한국시인들 중에서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을 유독 좋아한다. 

같은 청록파 시인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세 분들의 시세계는 걷는 모습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세 시인들의 시와 고개에 얽힌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해 온다. 


박두진 시인은 

평소에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앞만 보고 걷고, 

박목월 시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내려다 보며 걸으며, 

조지훈 시인은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걷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까? 


박두진의 대표적인 시 "해"나, "꽃"들은 

지적이고 분석적으로 느껴지고, 

박목월의 시 "나그네""달"은 

목가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지며, 

조지훈의 시 "완화삼", "승무"는 

고매하고 도도하게 나에게 다가 오는 것은... 

나는 어떤 모습으로 걷고 있을까? 


거울 앞에 다가가 나를 다시 바라본다. 

고개가 아직 너무 뻣뻣이 서 있는 모습이 

왠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 

박평일
저는 1949년 생으로, 서울에 있는 경복고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 했습니다. 
미국에는 1977년에 이민와서 여러가지 사업을 하다가 
20년전 부터 위싱톤 지역에서 부동산감정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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