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육체가 더이상 기능 못하면 죽음”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 ‘죽음이란 무엇인가’ 특강서
2013년 06월 03일 (월) 10:56:20 월간 <불교문화> mytrea70@gmail.com
지난 5월 9일, 예일대 교수이자 철학자인 셸리 케이건 교수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청중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강연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예일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끈 교양 철학 강좌 ‘Death’를 바탕으로 했으며, 죽음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케이건 교수의 철학적 태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일 오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300여 명의 청중들이 아침부터 기다려 케이건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케이건 교수는 강단에 들어서 짧게 자신을 소개한 뒤, ‘책상 교수님’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강단 위에 준비된 책상 위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논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케이건 교수는 말했다.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육체일 뿐인가 아니면 육체와 구별되는 무엇인가가 있을까? 다시 말해 내 육체가 죽은 후에도 영혼은 존재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케이건 교수는 단호하게 대답을 던지며 서두를 열었다.
▲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 ‘죽음이란 무엇인가’ 특강 @사진=월간 <불교문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혼’은 없다. 사람은 단지 육체적인 것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어도 사실이라 믿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다.”
“육체가 파괴돼 사라지면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후세계에 대한 부정을 명확하게 밝힌 케이건 교수는 그 어떤 종교적 입장도 벗어나 오로지 철학적 고찰로서 죽음이라는 난제를 풀어나갔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의 존재를 믿는 이유는 원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화학작용이나 물리적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인간에 대해 설명할 때 육체를 넘어선 것으로 보이는 어떤 특징들을 설명하기 위해 영혼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물질은 그렇지 않다. 또 사람은 생각할 수 있다.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전에 없던 창의적인 것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을 정말 어떤 기계도 할 수 없을까?”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주장을 이어갔다. 케이건 교수는 카메라가 사진을 찍는 기계이고, 자동차가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이듯, 사람은 다분히 많고 복잡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계라고 설명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부분적이지만 인공지능을 탑재한 컴퓨터가 발명되었고 기계는 예전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기계가 감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 역시 연구 개발 중이기에 두고 볼 일이라며 케이건 교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논지를 피력했다.
“우리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 다만, 훨씬 더 많은 것을 하는 기계다. 말하고, 소통하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매우 특별하고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는 특별하고 우리는 우리의 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단지 우리의 육체가 가졌던 능력을 상실했을 때를 말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그 어떤 불가사의한 점도 없다고 케이건 교수는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카메라를 떨어뜨렸을 때 박살이 나서 고장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으로 인해 나의 육체가 파괴되어 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케이건 교수는 이원론(dualism, 인간이 물질적 요소인 ‘육체’와 비물질적 요소인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관점)을 반박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와 예일대 공개 강좌 사이트에서 보다 자세하게 볼 수 있다.)
▲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 ‘죽음이란 무엇인가’ 특강 @사진=월간 <불교문화>
“삶이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이렇게 사람과 죽음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 케이건 교수는 그의 강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청중들을 안내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없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이번 생에서의 시간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생(一生)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케이건 교수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죽음을 직면하고, 비로소 삶이 소중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케이건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죽고 나면 그동안 가졌던 모든 좋은 것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지 않았다면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육체적 아픔에서 심한 고통을 받는 이에게 죽음이 과연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자연스레 자살이라는 문제로 이어졌다.
“자살하는 많은 사람들 중 특히 어린 학생들이 삶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 그들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 희망이 보이지 않고 더 이상 살아가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은 지나갈 것이며 미래는 분명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삶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도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죽음 앞에서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선물이라는 케이건 교수의 관점을 재확인하며 강연은 마무리되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흥미로웠던 강연만큼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중 한 여성은 하루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케이건 교수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들이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말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 ‘죽음이란 무엇인가’ 특강 @사진=월간 <불교문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얽매임도 고통”
“하루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는 사실 대답하기 쉽다.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내가 죽기까지 1년이 남았다면, 2년이 남았다면, 5년 혹은 10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쪽이 대답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간 동안에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생각해본다면 당신이 바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날의 강연과 그의 저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리고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때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진 질문에서는 한 청년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다면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을 인용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케이건 교수는 대답에 앞서, 불교에 조예가 깊지 않지만 크나큰 존경을 가지고 있으며 굉장히 좋아하는 종교 중 하나가 불교라 말했다. 불교의 측은지심, 즉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인류와 모든 생명의 고통에 연민을 가지라는 가르침이 마음에 든다고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고통의 근원이 욕망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동시에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 얽매이다 보면 그것이 또 하나의 고통이 될 것이다.”
비록 케이건 교수 스스로는 자신의 대답이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지만, 모든 것에서 진정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고통이 없다는 점은 불교 수행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언젠가는 끝날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허무주의나 쾌락주의로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케이건 교수의 주장 역시 인생의 집착을 버리고 정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 기사는 월간 <불교문화> 6월호에 게재된 사유와 성찰 1 시리즈『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셸리 케이건 교수 강연 원고입니다. 월간 <불교문화'의 허락을 얻어 <불교닷컴>에 전문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