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이사람]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살레시오수녀와 마자렐로센터에서 김인숙 수녀. 사진 조현 기자
수도자의 삶에도 ‘첫사랑’이라 이름 지을 수 있는 사목의 순간이 있다. 꽃 같은 수녀 2년째에 마산교구 교육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교육국장 신은근 신부님은 경상도 분 같지 않게, 매사에 부드럽고 남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그런데 박식하고 말 잘하고 글까지 잘 쓰는 그분에겐 강의와 청탁이 쇄도했다. 그래서 본업인 교육국 일보다 밖의 일로 늘 분주했다. 어느 때는 겹치기 강의요청을 수락해놓고선 쩔쩔맸다.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수녀는 교육국 일로 눈코 뜰 새가 없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고 결전을 준비했다. 어느날 신부님이 아침 일찍 나갔다가 해 질 녘에야 돌아오자마자 따다 따다 쏘아붙였다. 당황한 신부님은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다음날 오후였다. 신부님이 찾는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말 뿐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지 않아 벌떡 먼저 일어나 돌아서는데 신부님이 불러세웠다.
“수녀님! 잠깐만요. 이렇게 끝내면 안 되죠…. 우리 기도하고 마칩시다.”
‘아니, 지금 이 판국에 기도를 하자고요?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억누르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신부님은 <주님의 기도>를 선창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그 구절을 되뇌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후에도 신부님은 여전히 다사다망했다. 그러나 서로의 한계를 좀 더 인정해 주고 존중해주게 됐다.
그로부터 벌써 22년이 흘렀다. 신부님은 지금은 미국 교포 사목을 하고 계신다. 흔히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에게 사목의 첫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년에 한두 번 연락을 드려도 변함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녀님, 지는 사람이 이기는 법입니다.”
김인숙 수녀 clara2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