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결
아주 가끔씩만 만나는 친구를 오늘 만났다. 밤목련을 함께 보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에 내가 약속을 어긴 이후 이제야 만난 것이니, 올해 들어 처음 얼굴을 본 셈이다. 가끔씩만 만나는 친구라서일까. 그녀가 내 앞에 있을 때면 처음 그녀를 알게 된 20년 전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내 한결같았고, 그러면서도 만날 때마다 달랐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면모가 돋보이는 사람은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자기 자신과 달라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알지 못한다. 과거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녀는 늘 내가 기억하던 그 사람이 번번이 아니다. 모습이야 나이가 들어 젊었던 시절처럼 반짝반짝할 리 없지만, 그녀는 새롭게 반짝이는 위성 하나를 머리 저편에 거느린 느낌을 준다.
어째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오늘에야 그 비결을 엿보았다. 그녀와 나는 대화 중에, 숱하게 함께했던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는다. 추억을 곱씹으며 즐거운 맞장구를 치지 않는다. 서로 익히 아는 오래된 상처를 꺼내어 내밀한 관계임을 새삼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대화를 이끈다. 대신, 다음달에 무얼 할지, 내년에 무얼 할지, 새롭게 꾸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는다. 그녀는 책임지던 것들을 계속 책임지며 살고 있고, 새로이 책임지고 싶은 것들을 무심하게 언급한다. 그녀의 이런 대화법은 그렇게나 가난했던 그녀가 하나도 가난하지 않게 보였던 유일한 비밀이었다.
김소연 시인 /한겨레 <김소연의 볼록렌즈>에서